그냥 쓰는 단편소설
새벽 4시 30분 무거운 눈꺼풀에 힘을 주고 집을 나섰다. 약속 장소인 합정역 5번 출구까지 가려면 부지런히 서둘러야 된다.
지하철 입구를 나오자마자 비상등이 켜져 있는 포터 트럭 한 대를 보이길래 아 저 차가 내가 오늘 타고 갈 차 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반쯤 내려가 있는 창문으로 똑똑 노크를 하고
“아.. 안녕하세요. 오늘 이사일 하기로 한 사람인데요…”
“네 타이소. 쪼매 늦었네예.”
경상도 사람이란 걸 저 말 한마디로 알게 되었는데, 이상한 건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은 5시 30분이었는데 내 시계는 5시 25분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아.. 죄송합니다.”
대답도 하지 않고 시동을 걸고 나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트럭에 몸을 실었다.
“몇 살이라꼬예?”
나는 순간적으로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지만 몸쓰는 일을 하기에는 나이가 어린 게 유리할 것 같아서 구인사이트 이력서에 몇 살 어리게 냈던 기억이 났다.
“반말해도 되제?”
그 사장은 대답을 듣지도 않고 또 물어봤다.
“아 네네”
나는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기분으로 대답했다.
“너는 이삿짐 옮기는 일이 뭐라고 생각하노? 이건 말이다. 그냥 하는 막노동이 아이라. 버리지 않고 가져간다는 새로운 거처 말이다. 새로운 꿈이 될 수도 있는 그곳에 가져가는 세간살이는 말이다 애완동물 같기도 한 거고 고마 소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기지. 알긋나? 그니까네 니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에 임해야겠노?”
포터를 모는 사장의 말을 반은 알아듣고 반은 못 알아 들었지만 나는 대답했다.
“아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모 열심히 하는 건 기본이고 소중히 다뤄라 이 말이다.”
그리고 그의 옛 과거를 이야기를 했었 는데 자신이 어떻게 부산에서 서울로 왔고 이일을 얼마큼 했는지 이일에 대한 만족도라던가 나불나불 많은 말들을 했었지만 나는 무거운 눈꺼풀이 자꾸 내 앞을 가려 어떻게 대답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사할 오피스텔에 도착했고 이른 아침 시간에 이삿짐을 의뢰한 그녀는 도도한 깍쟁이 처럼 보이기만 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이삿짐 업체 대표 김춘배입니다. 포장이사 맞죠?”
“네 지금 시간도 이르니까 조용히 옮겨 주세요.”
그리고 나선 그녀는 가만히 소파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가만히 쳐다 보았다.
포장을 한참 하면서 이런 짐까지 싸야 되는지 몇 번 물어봤었는데 그녀는 고개만 까딱 거리고 귀찮은 듯 다 싸주면 된다고만 이야기했다.
사장은 놀라울 정도로 재빨랐고 저렇게 까지 해야 될 정도로 조심스러웠다. 포장 할 때는 신생아 다루듯이 소중히 상자에 차곡 차곡 쌓아 갔고 박스가 새로운 그녀의 보금자리에 어디로 가야할지 매직으로 써놨다.
나도 사장을 따라서 서두르려고 했지만 사장이 손짓으로 천천히 하라는 식으로 오른손의 손바닥을 펴서 아래위로 흔들었다. 왠지 안심이 되었다. 초보인 내가 고수의 가르침을 받는 순간 같았다.
이사짐을 싸던 와중 보이던 편지 몇장과 사진, 인형을 상자에 넣으려던 순간
“아저씨 잠깐 만요. 이건 제가 버릴게요. 다른 짐부터 싸주세요.”
소파에만 앉아있던 그녀가 드디어 일어나서 편지들과 사진을 모조리다 찢었고, 인형과 함께 종량제 봉투에 모조리다 넣어 꼬옥 싸맸다. 마치 부도난 회사의 사장이 비리문서를 볼까 봐 문서를 찢어 숨기는거 마냥 말이다.
의아했지만 나는 그냥 1일 용역직이었기에 그냥 다시 무식하지만 소중하게 짐을 싸고 있었다.
혼자 사는 집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짐은 생각보다 단출해서 우리는 1시간 만에 짐을 다 싸고 포터 트럭에 짐을 하나 둘씩 옮기기 시작했다.
“아저씨 TV는 비싼 거니까 조심히 옮기세요. 파손되면 이거 이삿짐 보험처리되는 거 맞죠?”
“아 네네!! 물론이죠. 걱정 말고 푹 쉬고 계시면 됩니데이. 그라믄 이사할 집에서 뵙겠습니더.”
그녀가 앉았던 소파를 마지막으로 짐을 다 싣고 우리는 포터 트럭으로 이사 갈 집으로 그녀는 그녀의 차로 향했다.
차안에서는 내가 짐을 쌀 때 어떻게 해야 쉽고 빠르게 쌀수 있는지 그의 강연이 이어졌고 아침의 졸리던 내눈은 또렸해지고 귀도 활짝 열려 그의 말을 흡수하려고 했다.
그녀의 새로운 보금자리에 도착하여 일을 시작했는데, 짐을 싸는 것보다 짐을 푸는 일은 더 간단했다. 그녀가 친절히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다가 가구들을 채워 넣기 시작했고 정성스럽게 짐을 두는 사장을 보고 참 대단하다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녀는 이삿짐을 쌀 때와는 확연히 다른 태도로 우리가 가구를 두면 하얀 손걸레로 가구들을 닦으면서 순간 순간 희미한 미소 같은 것이 반질해진 가구에 비쳐 보이기도 했다. 내 기분 탓인지 몰라도 그녀의 뒷모습만 봐도 그녀의 홀가분함이 느껴졌다.
대충 짐을 다 정리하고 나서 옷가지와 그릇들도 꺼내서 넣으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는 그녀의 말에 왠지 안심이 되었다.
“시원한 음료수 좀 드시고 돌아가세요.”
그녀가 주는 시원한 콜라를 마시며 한숨 돌리고 있는 와중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지난번 집은 너무 터가 안 좋았어요. 그래서 다 안됐어요. 냄새나는 곳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똥파리 같은것들만 꼬이고 말이죠. 이번 이사한 집은 깨끗하고 냄새도 없을 것 같으니 좋은 기운 나눠 드릴 게요. 사장님도 번창하세요.”
외간 남자 둘이 자신의 세간살이를 옮길 때는 날카롭던 그녀가 이사하고 난 뒤에 이게 사기가 아니고 생각보다 꼼꼼한 사장의 일처리에 반쯤은 감동한 듯 보였다.
“네 아가씨. 그 기운 저희한테 줄 필요 없어예. 지난번 이사짐 옮겨 드렸던게 벌써 2년전이네예. 또 저희 업체를 사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더. 이 청년이 처음 일하는데 생각보다 잘해 기운이 좋아 이 기운 전부다 아가씨가 가져가이소”.
“사장님 그걸 다 기억하세요? 2년전 이사할때도 너무 꼼꼼히 이사짐 옮겨주셔서 또 연락드렸었는데. 감사합니다. 너무 고생하셨어요. 다음이 언제가 될지 몰라도 이사하게되면 또 연락드릴께요”
그녀의 인사를 뒤로 하고 우리는 다시 포터에 몸을 실었다.
점심시간이 곧 지난 시간에 끝이나서 이거 생각보다 할만하다고 생각했고 한강대교를 지나면서 아침에 사장이 말했던 이삿짐 옮기는 일은 그냥 막노동이 아니란 말이 떠올랐다. 몸은 힘들었지만 개운한 마음에 마스크 안의 내 입가가 조금 올라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고생했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삼겹살이나 꾸버 묵자.”
이삿짐 센터 사장의 제안에 사장의 이사짐 강연과 과거가 궁금해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그러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