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다 함께 차를 탄다. 집에서 59분 거리. 이런저런 걱정일랑 잊고 다시 완벽한 즐거움과 순수한 기쁨을 향해 출발할 시간!
마음 같아서는 아빠가 좋아하는 '최진희의 미로'를 오늘 여행의 BGM으로 깔아주고 싶지만 역시나 나의 아빠는 손주 녀석이 좋아하는 '하나언니의 동화나라'를 선택했다. 하나언니가 직접 만들었다는 창작동화, '위험한 젤리 도시의 밤'을 들으며 눈부신 하늘 아래 우리는 군산오름으로 향했다.
군산오름은 솔방울과 평화의 생애 첫 오름이었다. 솔방울은 7개월 무렵에, 평화는 15개월 무렵에 나와 남편의 품에 안겨 올랐던 곳이다.
오름의 순수 높이는 280미터로, 100미터 전후의 주변 오름에 비하면 거의 두 배이상 높은 오름이다. 그만큼 한라산은 물론 서귀포 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오름인데 차로 5분이면 정상에 닿을 수 있는 매우 훌륭한 곳이다.
앗, 그렇게 자주 왔으면서 군산오름의 입구를 지나쳐버렸다. 오름 입구가 공사 중이라 입구 표시가 가려져 있던 까닭이다. 그래도 진행 중인 공사가 반가웠다. 군산오름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매우 좁은 길이라서 운전 중 반대 방향의 차를 마주하면 그야말로 진땀이 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구의 일부만 넓혀졌을 뿐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여전히 좁아 보였다.
자, 그럼 다 같이 성호경 그을 시간.
지금부터는 오로지 직진만이 살길이다.
"엄마, 반대쪽에서 차가 올까 봐
가슴이 벌렁거려."
평화가 말했다.
"가슴이 콧구멍이냐? 벌렁거리게!"
솔방울이 참견한다.
"가슴도 냄새 맡아!
내가 좋아하는 거,
싫어하는 거 다 찾아내!"
평화야! 엄마도 사실 지금 가슴이 마구 벌렁거려. 가슴도 냄새 맡는 거 맞아. 그래도 엄마가 떨면 외 할머니, 외 할아버지 걱정할 테니까 덤덤한 척하며 운전하는 거야. 맘 속으로 말하며 직진 또 직진을 했다.
"아고, 도착이다!"
도착과 함께 제일 먼저 소리친 사람은 다름 아닌 아빠였다. 보조석에 앉았던 아빠가 어쩌면 우리 중 가장 가슴을 졸였나 보다. 근래 들어 이렇게 심장이 떨렸던 적이 또 언제였는지 모르겠다며, 이제 숨 좀 쉬겠다고 아빠가 말한다. 쿵쾅거렸던 나의 마음도 이제 한숨을 돌린다.
"어쩜! 공짜네 공짜!
이렇게 차로 올라서 눈에 다 담네!"
저 멀리 우뚝 솟아있는 신비스러운 산방산을 보며 엄마가 말한다. 아빠의 얼굴에도 어느새 함박웃음이 가득하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표정이 어떤지 알 것 같다. 두 사람이 지금 웃고 있으니까.
차로 오르면 뭐 어때. 몸이 전과 같지 않으면 뭐 어때. 눈앞의 산방산과 저 멀리 마라도까지 오늘은 다 우리꺼지 뭐. 함께 보내는 이 시간, 눈과 마음에 다 담으면 되는 거지 뭐. 복잡한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 대뜸 솔방울이 말한다.
"그러니까 내가 그랬잖아요.
정상에 오르면 다 똑같다고요!"
역시 내 아들! 역시 베리 나이스!
엄마 손을 잡고 군산오름의 능선을 함께 걷는다. 약을 먹어도 미세하게 떨리는 손, 그렇지만 나에게는 늘 한결같이 고운 손. 흔들리는 엄마의 몸을 느낄 때면 잘 다독여 둔 내 마음도 함께 흔들린다. 울컥, 울고 싶지만 과연 엄마 모르게 울 수 있을까? 속였다고 생각했지만, 속일 수 없었던 지난 많은 일들처럼.
그렇다면, 어차피 엄마가 다 알 거라면 얼른 한 방울의 눈물만 흘려보내고 홀가분해지는 걸 선택한다. 눈물을 흘린 후에는 언제나 새로운 힘이 샘솟기 마련이니까. 그 힘은 마치 이제 막 싹을 틔운 새싹의 힘과 같다. 얇고 연약하지만 두터운 흙을 뚫어낸 단단한 힘.
새싹이 지닌 그 힘을 갖고 싶다.
오로지 하나. 빛이 있는 밝음을 향해서만 나아가는 단순하지만 단단한 그 힘을.
삶을 사랑하고 껴안으며, 오로지 밝음을 향해서만 함께 엄마와 함께 오래도록 걸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