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주재원으로 가 있는 오빠의 짓 이렸다. 엄마 팔뚝에 더는 촌스러울 수 없는 금팔찌를 걸어둔 놈이.
곁에 있던 동생이 거든다.
"아, 언니 그거 오빠가 전에
엄마한테 장난으로 채워준 거야.
팔아서 호떡 사 먹으라고."
"장난?"
"응, 오빠가 중국에서 잠깐 왔을 때 짝퉁 시장에 다녀온 이야기 들려주면서 채워줬어. 나한테도 몽클레어 입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하라던데?"
나 참 기가 막혀서. 그래도 그렇지 엄마 팔에 짝퉁 금 팔지라니. 유치한 건 여전하구나 정말.
나와 연년생인 오빠는 애증의 관계이다. 어릴 때 하도 나를 곰순이라고 놀려서 이골이 나기도 했고, 겨우 한 살 차이에 키는 나랑 똑같으면서 첫째라서 또는 아들이라는 이유로 온갖 혜택을 누렸기 때문이다.
아니, 엄연히 말하면 경쟁자였다. 먹는 일에 관심이 없던 동생과 달리, 오빠와 나는 밥상 위에서 수없이 많은 쟁탈전을 벌였다. 지금도 분한 추억 하나가 절로 떠오른다. 삼십 년도 지난 일을 엄마에게 다시 일러바친다.
"엄마, 우리 미도 아파트 살 때 말이야.
엄마가 버스 정류장에서 500원 주고
바나나 한송이를 사줬거든.
작은 바나나였는데 말이야.
너무 귀해서 나는 애기가 먹는 것처럼 베어 먹고 있었어.
그런데 오빠는 홀랑 자기 꺼를 먹더니
나한테 딱 한 입만 달라고 통사정을 하는 거야.
내가 또 착하잖아.
고개를 끄덕였더니 글쎄 오빠가
악어처럼 입을 쫙 벌려서
바나나 2/3를 순식간에 먹어 버렸어.
아 진짜 그때 내가뒤통수를 날렸어야 했는데.
아, 분해!"
껄껄껄 아빠는 웃고 엄마는 애틋해한다. 그때 너희 바나나 좀 넉넉히 사줄걸. 삼 남매 키우며 무조건 아껴야 하는 줄 알았다며 알뜰히 살던 시절을 떠올린다.
아니 엄마 내 이야기의 요점은 그게 아니잖아. 오빠가 정말 그랬었다고 말해봐야 소용없다. 엄마는 이미 이억만 리에 살고 있는 오빠를 그리워 하기 시작했으니.
경쟁심이 발동된다. 가만있을 순 없지. 오빠가 그깟 짝퉁 금 팔지라면 나는 구찌로 엄마에게 한 벌 쫙 뽑아주겠어.
마침, 송악산 근처에서 식사를 마친 후였다. 차로 15분 거리에 제주 영어마을이 있었다. 옷 사러 가자는 말에 엄마 눈은 토끼눈이 되고 아빠는 손 차례를 쳤다.
호기심 많은 두 분의 발걸음을 떼게 하는 마법의 문장이 나에게는 있다. 그것은 바로 이것이다.
"엄마 거기 빈티지 샵이야.
옷 한 벌에 9천 원.
그런데 남대문 시장보다
보물이 더 많아."
마법의 문장은 동생과 아이들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오 거기 딱 좋은데"
누가 벼룩시장의 큰 손 아니랄까 봐 동생은 곧장 현금이 얼마 있는지를 파악하고,
"엄마 나는 불 들어오는 구두 사줘야 해."
멋 부리기 좋아하는 평화는 냉큼 쇼핑의 기회를 포착 했다. 다 들었으면서 못 들은 척하고 있는 솔방울의 입가엔 웬 미소? 여하튼 오늘 오전과 점심은 엄마 아빠를 위한 장소로 다녔으니 오후만큼은 운전대 잡은 사람 마음이다. 시동을 걸고 제주 영어마을로 향했다.
"여기야?"
초록빛 농협 간판 아래 '제주 구제 클럽'이라는 현수막이 펄럭였다. 그 현수막 아래에 선 동생이 묻는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제주에 살며 아쉬운 게 있다면 바로 그럴듯한 벼룩시장이 없는 거였다. 자주 오름을 가고 늘 땅바닥에 털썩 앉는 솔방울과 평화라서 새 옷을 사 입히기 아까운 제주살이는 육지에 두고 온 중고샵을 종종 그립게 했다. 그러다 제주 살이 4년 만에 발견한 맘에 쏙 드는 곳이 바로 제주 구제 클럽이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그런 곳이 아니란 말이다.
'명품 브랜드만 판매하는 빈티지샵'이라는 현수막이 걸린 곳으로들어선다. 제주 구제 클럽답게 옷, 신발, 가방, 각종 스포츠 장비가 진열되어 있다. 화수목 10시부터 6시까지 오픈하고, 금토 일월은 새 상품을 준비하는 나름 체계를 갖춘 샵이다.
무엇보다 장소가 진정 빈티지다. 그럴듯한 인테리어가 아닌 농협창고로 사용되던 공간에 행거를 둘렀다. 그 행거 위 아이 옷부터 어른 옷까지, 요가복부터 일상복까지 몽땅 걸려있었다.
물론 그 옆에 수북한 옷 산이 두 어개쯤 존재한다. 자고로 벼룩시장하면 옷 산에서 보물 찾기라는 걸 사장님은 찰떡같이 아는 것이다.
옷이 걸린 행거의 반대편에는 신발과 가방이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맘에 드는 신발이 있다면 바로 신어보면 되는그야말로 유니버설 디자인, 직관적인 디스플레이로 완성된 곳이다.
"오! 언니, 이 옷 세련인데?
아마도 연주회에서 입었을법한 어깨가 봉긋한 세미 드레스를 가리키며 동생이 장난을 건다. 역시나 동생은 그새 자기를 위한 보물을 찾아냈다. 반대편 손에 들린 민트색 원피스가 딱 내 스타일이라서 빼앗아 오고 싶어진다.
엄마 아빠는 등산복 코너에 서서 보물 찾기를 중이시다. 나 역시도 매의 눈으로 요가복을 샅샅이 뒤지는데 아이들은 더 바빴다. 8살 평화와 6살 맑음이는 프라다 구두와 버버리 가방을 들고 서로 경쟁하듯 캣 워크를 걷는 중이다. 11살 솔방울은 웬 도복을 입어보고 있고, 막 걸음마를 뗀 2살 아가 밝음이는 일단 무엇이든 목에 다 건다. 가방도, 옷도, 바지도, 다른 손님이 가져온 시장바구니도.
"보물이 여기있네!"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엄마가 말한다. 아이들 사진을 카메라에 담으며 깔깔깔 웃고 또 웃는다. 어느새 엄마 곁에 다가선 사장님도 함께 웃는다. 엄마는 사장님에게 검은 봉지 하나를 달라고 하더니 찾아낸 보물을 담는다. 손잡이를 야무지게 묶고 금팔찌 위에 껴둔다. 그러곤 다시 휴대폰 카메라를 켠다.
그 분주함 속에서 나는 부모님을, 여동생을, 조카와 아이들을 더욱 다정히 바라본다. 어쩌면 이 순간을 그리워할 것이다. 익숙한 가족과 낯선 곳에서, 새 물건이지만 실은 아주 오래된 물건을 고르며 웃고 또 웃었던 순간을.
손에 들고 있는 물건 덕분에 웃고 있지만 꼭 그 물건이 있어서만 웃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외려 각자의 집에는 이미 물건이 넘치도록 있다. 그래도 하나씩 골라 담으며 추억을 넘치도록 담는다. 이제 며칠 후에는 서로 멀리 떨어져 살 텐데 그 물건을 만지작 거릴 때, 그 순간만큼은 한 뼘 더 가까이 있는 느낌이 들도록.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엄마의 휴대폰이 울린다. 엄마가 답한다.
"아고, 민수야."
부모님이 제주에 와있는 동안 오빠에게서 처음 걸려온 전화이다. 여행 잘 다니고 계신지 며칠 내내 전화했는데, 접속이 잘 안 돼서 못하다가 이제 겨우 닿았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카카오톡 사용이 금지되어 서 IP 주소를 우회해서 연락을 하는데 연락이 안 될때도 많다)
"어 그래 민수야, 엄마 이제 잘 들려. 다시 말해봐"
엄마는 오빠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뭐지 이 타이밍은.
역시 경쟁자의 촉도 여전하구먼.
뭐지 뭔가 샘이나는 이 감정은.
그렇지만 어른이 된 나는 안다. 오빠가 농담으로 한 이야기라도, 집에 예쁜 팔지가 수두룩해도, 아들이 주고 간 팔찌를 차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어릴 때는 내가 용을 써도 결코 채울 수 없다고 생각했던 오빠를 향한 엄마의 사랑은 연년생인 첫 째에게 쌓인 미안함 이라는 걸 지금은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