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평범한기적 Oct 18. 2022

하늘나라 가는 길, 새별오름

< 엄마 백번만 만나줘>


"죽을 때도 못 잊겠어!"


새별오름을 오르던 엄마가 말했다. 아름다운 풍경을 이보다 더 잘 묘사할 이가 또 있을까? 가파른 능선을 오르다 몸을 돌렸을 때, 발 끝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엄마는 말했다. 역시 직설화법의 대가, 정 여사님 다운 방식으로.


처음 제주에 왔을 때 살았던 동네 유수암리.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오름이 새별오름이었다. 유치원을 다니지 않던 두 아이와 수십 번을 오르며 매번 감탄했기 때문에 엄마·아빠가 처음 제주 여행을 왔을 때, 자신 있게 함께 올랐다. 


그러나 새별오름에는 난코스가 있다. 바로 오름 왼편으로 들어서자마자 바로 시작되는 오르막길이었다.


엄마도 엄마이지만, 아빠가 걱정되었다. 어린 나에게 솔담배부터 팔팔까지 무수히 많은 담배 심부름을 시켰던 아빠는 칠순을 앞둔 어느 해에 폐에 무리가 생겼다. 어쩐지 자꾸 가래가 끼는 것 같았다. 


별일 아니라 생각하고 따뜻한 차를 자주 마셨던 아빠였는데 기침이 심해졌다.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았다. 만성 폐색성 폐질환이라고 했다. 속으로만 진행되는 병이기에 가족 모두가 당황했었다. 곧 장애인증이 발급되었다.


그 무렵 제주로 이사를 왔기에 아빠의 병세를 실감할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새별오름의 오르막에서 아빠의 상태를 보게 되었다. 한때 대한민국의 모든 명산을 누볐던 아빠에게 이 정도 경사가 무리라니. 칠순이 넘은 지금도 내 키의 두 배가 넘는 중장비차를 운전하는 아빠가 달리 보였다. 그러나 아빠는 평소 성격대로 침착하게 말했다. 


"먼저 가. 괜찮아. 

아빠는 조금 천천히 오르면 돼" 


남들보다 빨리 숨이 차는 아빠는 우리 보고 먼저 가라고 손짓했다. 아빠의 말이 끝나자마자 휘리릭 날다람쥐처럼 움직이는 두 아이를 놓칠까 봐 덩달아 움직이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빠는 숨 고르고 한 발, 숨 고르고 다음 한 발을 내디디며 아빠만의 속도로 새별오름을 오르고 있었다.


문득 아빠를 기다리고 싶었다. 새별오름은 길이 하나뿐이니 먼저 간 아이들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마도 정상에 오른 후, 늘 돗자리를 펴고 앉았던 표지석 앞에 앉아 나를 기다릴 것 같았다. 자리에 서서 아빠를 기다렸다. 한 발 한 발 가까워지는 아빠의 걸음을 응원했다. 마음속으로 아낌없는 응원을. 


나보다 더 높이 올라있던 엄마도 오르막 중간에서 아빠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와 함께 엄마가 있는 곳까지 오르니 엄마는 말했다. 부지런히 오름을 오르다 아빠가 어디쯤 오는지 보려고 몸을 돌렸다고. 그러다 처음 바라본 풍경에 그만 입이 딱 벌어졌다고 말했다. 


긴장했던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그때 엄마에게 펼쳐진 풍경을 엄마는 죽는 순간에도 잊지 못할 만큼 아름답다고 했으니 그 보다 더 좋을 칭찬이 내겐 없었다. 봉긋 솟아있는 금오름과 두 개의 뾰족한 이달 오름, 저 멀리 큰 바리메 오름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제주에서 엄마 아빠와 처음 오른 새별오름. 나무 하나 없어 시원한 그늘도 없고,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하지만 일단 오르고 나면 초록빛 장관이 기다리는 곳. 봉우리와 등성이 사이, 부드럽게 이어진 능선의 고운 퍼레이드를 보고 또 볼 수 있는 곳. 


그곳이 우리 집 근처라니. 서울에선 아파트가 빼곡한 곳에 살던 내가 마치 제주에 와서 큰 출세라도 한 느낌이 들었다.


"엄마! 우리 동네 예술이지?" 


엄마의 또 다른 직설화법이 담긴 대답을 내심 기대하며 물었다. 그런 내게 엄마가 외려 되묻는다. 새별오름에서 보이는 풍경 속에 엄마의 눈이 머물러 있던 곳. 바로 무덤이 만든 장관을 가리키며. 


"민정아 저게 뭐니? 다 무덤이니"

"응, 엄마 그런가 봐."


"무덤도 모이니 장관이네. 

어쩜 죽은 후에도 아름답구나."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어느덧 새별오름 정상을 찍고 다시 쪼르르 달려온 나의  딸, 평화가 말했다.


"엄마 구름 좀 봐. 

하늘나라로 가는 길이 있을 것 같아."

"하늘나라?"

"응, 하늘나라"


당황하는 나와 달리 엄마는 천천히 평화에게 물었다. 하늘나라로 가는 길이 어떻게 생겼느냐고. 조마조마한 내 맘 따위 알 리 없는 다섯 살 평화가 말했다. 미끄럼틀이라고. 미끄럼틀 타고 숑 내려왔으니까, 다시 돌아갈 때는 미끄럼틀 위를 기어 올라가면 된다고.


안 되는데. 하늘로 돌아갈 때 그렇게 힘들게 가면 안 되는데. 이쁜 손주 녀석들 두고 가는 게 힘들어서 미끄럼을 기어오르듯 힘들게 하늘나라로 가는 걸까. 어머 주책이야. 이 타이밍에서 우는 건 정말 아닌 것 같아. 재빨리 몸을 돌려 눈물을 훔쳤다.  


곁에서 평화의 이야기를 듣던 아들, 솔방울이 말했다. 미끄럼틀이 아니고 계단이라고 하늘나라로 가는 투명 계단이 저 구름까지 연결되어 있는 거라고. 


그래 여덟 살이 낫네. 솔방울의 대답을 정답이라고 해두자. 미끄럼이 아닌 계단을 한 칸씩 오르는 일이라고. 오늘도 내일도.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지금 새별오름에 오른 모든 사람도 어쩌면 그 투명 계단을 날마다 천천히 오르며 살고 있을 거라고.  


새별오름은 다섯 개의 봉우리가 별 모양을 이룬다고 해서 새별오름이라고 하던데, 같은 장소에서 각자 다른 생각을 하던 우리. 내가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턱이 없는 엄마는 앞 뒤 맥락 없이 말을 한다.


"그래도 나중에 무덤 말고 화장해. 

너희 안 힘들게."


평소라면 엄마 그게 무슨 소리야. 왜 지금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난 아무것도 못 들었다며 크게 호들갑을 떨었겠지만 그날 새별오름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등 뒤에서 엄마를 꼭 안아주는 대신 엄마가 보고 있는 그 풍경을 말없이 바라만 보았다. 


+ 새별오름 가는 길에 부모님과 함께 들르면 좋을 곳으로 추천합니다.


1. 성 이시돌목장 우유부단 (카페) 

: 성 이시돌 목장에서 운영하는 카페입니다. 목장의 유기농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생각하면 기쁘게 오를 수 있습니다. 진한 아이스크림 맛도 일품이고, 부모님 드시기 좋은 따뜻한 차와 커피도 있습니다. 

카페 야외에 너른 목장이 있어 어린아이와 함께 가기도 좋은 곳입니다.



2. 서황 돈가스 (식당) 

: <효리네 민박>에 소개될 만큼 두툼한 안심 카츠와 생선 카츠의 맛이 일품입니다.    

이전 04화 용감하게 명랑하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