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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기적 Oct 25. 2022

83%의 성공

< 엄마 백번만 만나줘 >

무더웠던 여름, 김녕 바닷가에서의 일이었어요.


피곤해하는 막내가 제 무릎을 베고 누워있었고, 큰 아이는 물속에서 첨벙이고 있었죠. 아이의 안전을 살피기 위해 시선은 계속 바다를 향해 두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시야가 조금 가려지는 거예요. 저 보다 열 살 정도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한 남매가 제가 앉은 곳 바로 앞에 돗자리를 깔고 앉더라고요. 저의 부모님보다 더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김녕 바다를 보러 온 것 같았어요.


최대한 바다 가까이 돗자리를 깔았을 그 남매의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별말 없이 저의 돗자리를 옆으로 옮겼어요. 그래도 여전히 매우 가깝게 앉게 되어서, 그 남매 가족의 이야기를 절로 듣게 되었어요.


드디어 바다를 보러 왔지만 바닷물에 발은 담그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실시간 바다 풍경을 보여줬지만 심드렁했다는 이야기,

그래도 바다를 보고 있음에 기분은 좋다는 이야기.

 

말하는 이만 계속 말하고 나머지는 조용한 가족의 모습도 왠지 친근하게 느껴졌어요. 몇 년 후 저의 시간을 보는 것 같았거든요.


혼자 상상을 이어갔어요. 그 가족의 여행에 여러 의미를 담으면서요.   


아이들이 훌쩍 자라서 더 이상 가족여행에 따라오지 않는 시기, 부모님과 나는 시간이 넘쳐나는 시기, 칠순 또는 팔순처럼 그냥 넘기기는 아쉬운 시기, 형제자매끼리만 부모님을 모시고 떠나온 제주, 어색하고 낯설지만 그래도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여행


어쩌면 그 여행을

저도 떠나게 되지 않을까요?


어쩌면 그 여행을

여러분도 한 번쯤은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요?


부모님과 제주 여행 다녀올까? 하는 그 마음이요.


그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적어보았습니다. 부모님과 갔던 곳은 훨씬 많고 하고픈 이야기도 쌓여있지만 일단 시작해보았어요. 저의 시작이 누군가의 시작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부모님의 발병 이후 저는 늘 소멸, 죽음이라는 단어를 지니고 다닙니다. 슬퍼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괜한 분노가 일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찾고 싶었어요. 슬픔과 분노 외에 부모님의 질병이 지닌 다른 의미를요.


어느덧 14년, 아픈 몸을 살게 된 부모님 곁에서 저는 조금씩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었어요. 그것은 민망할 정도로 너무 뻔한, 그래서 하찮게 여겼던 진실이더라고요. 그러나 부모님이 저에게 준 가장 큰 유산이 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현재의 삶을 껴안으며 충실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그것만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 주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덕분에 저는 조금 더 용감해지고 조금 더 명랑해졌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있는 시간에는 하고픈 일을 하기 위해 돌진하고,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에는 따뜻한 밥을 먹고 이야기 나누며 명랑하게 일상을 채웁니다.


더불어 제 삶의 모습도 더욱 단단해져 가는 중입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제가 바라는 삶의 모습에 더 다가가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삶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기에 여러분의 삶에도 저와 같거나 전혀 다른 아픔이 존재할 것입니다. 그 아픔과 함께 여러분도 조금 용감해지고 명랑해진다면 좋겠습니다. 보고픈 사람에게 전화를 하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가고픈 길을 담담히 걸으면서요.  


살다 보면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백번만 만날 수 있는 날이 존재하지만 어떤 모습으로 만날지는 우리가 정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만나러 가기를. 그럴 수 있기를 바라며 연재를 마칩니다.


제주 여행 마지막 날 아빠는 이런 말을 하셨어요. 90살까지만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면 그게 바로 성공이라고. 그러나 100% 성공이 아니어도 괜찮다고요. 삶에 늘 100% 성공만 있는 건 아니라고요.  


어느덧 칠순 하고 몇 해가 더 된 아빠는 올해로 83%의 성공을 이뤘다 말합니다.


자신의 성공을 셈하던 아빠의 눈빛에 만족감과 뿌듯함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삶에 대한 단단한 자신감도 보였습니다. 아빠의 성공을 인정하고 축하하며 남은 시간도 벅찬 마음으로 응원할 것입니다.


비록 질병이 있어도 저희 가족은 이토록 잘 지냅니다. 


아마도 다음 추석이면 또 왁자지껄하게 제주를 누비며 이곳저곳을 다닐 것입니다. 그런 저희 가족의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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