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백번만 만나줘 >
"아빠 여름휴가 받았어."
은퇴 후 재 취업을 하신 아빠가 6년 만에 공식 여름휴가를 얻으셨다. 적지 않는 연세에 다시 일하는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우려를 표하면, “아냐! 나는 일해서 너무 신나. 젊은 사람들하고 이야기도 맘껏 나눌 수 있고, 집에 있는 것보다 훨씬 나아. 그러니 아무 걱정 말아.”하시며 일갈하셨다.
명절과 일요일만 쉬던 아빠에게 모처럼 사흘간의 휴가가 주어졌다는 소식을 엄마에게 듣자마자 바로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그 시절 곧 둘째 출산이 임박한 여동생도 부모님과의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산부인과로 달려갔다. 비행기를 타도 괜찮다는 서류를 받고 단숨에 제주로 날아왔다.
목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오전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3박 4일! 그 시간 동안 제주도민은 상상할 수 없는 동선으로 이곳저곳을 다녔다. 함덕 서우봉에서 아침 산책을 했다가, 이호테우 해수욕장을 가고, 노형동에서 열리는 농민장터에 갔다가 다시 탑동 해변공연장으로 왔다.
이 분주한 제주 일정의 식사는 연잎밥으로 시작해서 갈치와 고등어회로 대미를 장식했다. 덩달아 나의 주방도 바삐 움직였다. 엄마 아빠를 위해 얼마 전 배워둔 멕시칸 비건 요리를 직접 선보이니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드시는 모습이 새삼 아이 같아 보였다. 덕분에 진한 추억 하나가 소환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친구들과 이곳저곳을 다니며 맛있는 식당을 알게 되었다. 그중 같은 곳을 여러 번 가게 되자 매일 비슷한 반찬만 먹던 엄마 아빠 생각이 절로 났다. 그래서 엄마 아빠와 맛집 기행을 시작했다. 삼청동 'Sorento'라는 스파게티 집이 첫 시작이었다. 그곳에서 아빠는 하얀 스파게티 소스를 입술에 묻힌 채 말했다.
“아빠는 너희들이 번 돈으로 맛있는 거 사줄 때가 제일 좋아!”
해처럼 웃던 그 얼굴을 또렷이 기억하기에 이번 제주 일정 중에도 맛있는 식사를 꼭 챙겨드리고 싶었다. 자식이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면 부모님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는 곱절로 배가 부르고 가슴 저리게 뿌듯하다. 엄마 아빠의 '맛있다 맛있어'라는 말을 '행복하다 행복해'로 들으며 내 안의 만족과 기쁨의 환청을 즐겼다.
오랜만에 가족과 보낸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부모님이 다시 육지로 돌아가는 날이 되었다. 일찍 눈을 뜬 엄마가 조용히 나를 깨운다.
“민정아 있잖아. 화단에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그 작은 잎 식물 좀 잡아줘 볼래?”
잠옷 바람으로 전정가위를 들고 현관문을 나선다. 엄마는 동글동글 예쁘게 자라고 있는 트리안 한 뿌리를 작은 화분에 담아 집으로 가져가고 싶다고 했다.
“이 작은 잎사귀들이 다른 집과는 다르게 너희 집에서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더라고. 그래서 한 뿌리 가져가서 키우고 싶어. 너희 생각하면서 잘 키워볼게.”
그런 엄마에게 그간 공들여 가꾼 나의 화단에서 무엇이든 못 뽑아주리!
마지막 날 아침은 함께 농민장터에서 산 늙은 호박으로 된장국을 끓이고, 나의 작은 우영팟(제주어:텃밭)에서 키운 방아 잎을 뜯어다가 부추전을 만들었다. 아침이라서 전은 안 먹는다며 엄마 아빠가 손사래를 쳤는데 전 부치기 힘들까 봐 그러는 걸 다 안다. 깨끗이 씻은 방아 잎에 밀가루 대신 쌀가루를 넣고 전을 부쳤다. 한 입 먹자마자 엄마 아빠는 “음! 맛있다!” 하고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별하는 날 아침이지만, 호호 불며 바삐 먹느라 그나마 아쉬움이 덜 했다.
별거 아닌 솜씨에 감탄사를 연발했던 엄마 아빠도 어쩌면 코 끝이 찡해질 법한 순간에 감탄을 자아냈는지도 모른다.
지난 삼박 사일. 우리는 정말 많이 돌아다녔고, 많은 음식을 함께 먹었다. 평소에는 집에서 보내는 것을 좋아하지만 말도 안 되는 동선으로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우리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것 잔뜩 먹으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그러니까 멀리 이사 왔다고 걱정 말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러니 엄마 아빠도 아빠의 직장 때문에 살게 된 그곳, 충남을 맘껏 즐기며 행복하게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제주 공항에서 헤어질 때 늘 울먹였던 엄마가 처음으로 울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내가 울 차례가 되었나 보다. 헤어질 때 더는 울지 않는 엄마의 모습을 보자 울컥 눈물이 났다. 그동안 수없이 했던 말, 엄마 나 여기 제주에서 잘살고 있어. 정말 잘 지내니까 아무 걱정 말라고 했던 그 말이 드디어 엄마에게 전해진 것 같았다.
한 손에 트리안이 담긴 화분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바쁘게 손을 흔들며 공항 검색대를 통과한 엄마. 우리는 그렇게 이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어디에서든 잘 자라는 트리안, 사시사철 싱그러운 트리안이 엄마와 동행해서 다행이다. 엄마의 집 화분에서도 제주에서처럼 무탈하게 싱싱하게 잘 자라줄 테니. 덕분에 엄마의 주변도 늘 싱그러워질 테니.
점점 멀어져 가는 엄마를 보며 영영 엄마가 모를 눈물을 닦았다.
엄마 잘 가.
다음에는 내가 갈게.
백번 같은 열 번을 가득 채우며
우리 만나면 또 맛있는 거 먹자.
호호 불며 슬픔도 미루고 먹었던
그날의 우리를 기억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엄마는 영영 모를 그 말을 마음속으로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