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는 처음인데요;; #6
정신과 병동, 특히 보호병동에서는 시간이 정말, 정말, 정말 잘 가지 않습니다. 정신과 병동의 하루 일과를 살짝 소개해드릴게요. ㅂ병원 기준입니다.
아침 7시, 쿨쿨 자다가 “ㅇㅇ님 아침식사 하세요.”라는 말이 잠결에 들립니다. 보호사분이 침대에 책상을 펴서 그 위에 식판을 두고 떠나죠. 좀 더 자고 싶어 뒤척이다 아침은 먹고 자야지 하며 일어나 집밥보다 조금 더 맛없는 밥을 꾸역꾸역 먹습니다. 복도에 식판을 담아왔던 기계에 다시 자기 식판을 넣고서 조금 더 침대에서 뒹굴어 봅니다.
한 시간쯤 더 잤을까 보호사님이 병실을 다니며 “프로그램 참여하실래요?”하고 묻습니다. 오전 10시에 시작할 프로그램이 요리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침대에서 뒤척이다 일어나 거실로 향합니다. 오늘의 메뉴는 카나페. 보호사분이 청포도, 방울 토마토를 잘 손질해 토핑으로 얹을 수 있게 했네요.
그렇게 11시까지 시간을 때우고 복도를 걷기 시작합니다. 옆방 친구와 대화를 나누며 걷다보면 12시가 됩니다. 점심은 삼계죽이네요. 좀 밍밍하지만 먹을 만합니다. 밥을 먹은 뒤 병실에서 홀로 끄적끄적 글을 씁니다.
1시간 넘게 지나자 또 프로그램을 한다고 부르네요. 이번엔 사회기술훈련입니다. 프로그램은 2시에 시작해 3시에 끝납니다. 오늘은 아이스브레이크 시간이라 선생님이 갖고 온 게임을 1시간이나 했어요. 1등 상으로 밤양갱을 받았어요!
6시까지 뭐 하고 보낼까 고민하다 이번엔 보드게임을 할 사람을 모집해봅니다. 네 명 정도 모여 루미큐브, 다빈치코드를 합니다. 보드게임도 질릴 무렵에는 또 복도를 걸어봅니다. 짧은 복도를 몇 바퀴씩 돌아봅니다. 살이 빠질 수 있을까요?
앗, 그렇게 복도를 걷고 있는데 의사 선생님이 보이네요. 깜짝 선물을 받은 듯 기쁩니다. 의사 선생님은 자상한 표정으로 잘 지내고 있느냐고 묻습니다. 증상이 어느 정도 안정화됐으니 다음주 월요일까지 상태를 보고 퇴원을 결정하자고 하십니다. 드디어 퇴원이네요!
선생님과 짧게 이야기를 나눈 후 산책을 하러 잠깐 병동 밖으로 나갑니다. 보호사 선생님이 조심스레 열어준 문으로 나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닙니다. 빵집, 2층 산책로, 편의점 등등.
앗, 1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빨리 병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니면 다음엔 산책이 제한될 수도 있어요. 마침 6시가 되어 저녁을 먹게 됐네요. 제 병실에 앉아 밥을 맛있게 먹습니다. 엄마가 어제 물품으로 넣어주셨던 바나나 우유를 미니냉장고에서 꺼내 빨대로 쪽쪽 마십니다.
다시 시간이 나서 이번에도 침대에 앉아 컴퓨터로 글을 씁니다. 집중해서 쓰다보니 어느새 9시가 다 되었네요. 볼펜, 핸드폰, 컴퓨터, 블루투스 이어폰 등을 반납하고 침대로 돌아옵니다.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저녁 약을 주시네요. 한 번에 꿀꺽 삼킨 후 입을 벌립니다. 약을 혹여나 안 먹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꼭 입을 벌리게 해서 검사를 하십니다.
불은 9시 정각에 꺼지고 침대에서 뒤척입니다. 잠이 안 와서 기도를 합니다. 감사 기도하다가 지인들을 위해 기도하다가 나를 위해 기도하다가, 그래도 잠이 안 와서 창문으로 간호사실에 달린 시계를 보니 대충 10시가 넘은 것 같네요.
냉장고에서 먹을 거를 꺼내다가 부스럭대며 조금 먹은 후 다시 잠을 청해봅니다. 배가 차서 그런지 이제야 잠이 오네요. 쿨쿨 자는 동안 보호사, 혹은 간호사 선생님이 매 시간마다 병실에 들어와 잘 자는지 체크를 하십니다.
이게 병동에서의 하루 일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