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영웅이 된 아빠
난 한국 의사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직, 간접적인 경험이 없다. 단지 TV 드라마를 통해 보이는 것과 최근엔 유튜브를 통해 의사들이 직접 올리는 Vlog에서 접하는 정도이다. 그래서 한국 의사와 독일 의사를 비교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내가 옆에서 지켜보고 듣고 경험한 것만이 전부이다. 독일 의대는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 대학병원, 종합병원, 개인병원과 상관없이 어느 병원이든 그곳에 취직을 해서 현장에서 전공의 과정을 밟는다. 수련 내용에 따라 이 것을 제공해 줄 수 있는 큰 병원을 거쳐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전공의 수련 과정 6년을 보내고 난 뒤 전공의 시험을 쳐 합격을 하면 Facharzt(전문의)가 된다. 이 전공의 수련 과정에는 병원 근무도 있지만, 추가적으로 들어야 하는 여러 가지 세미나, 학회 등등 모두 점수화되어 마지막 시험과 함께 최종적으로 합격이 결정된다.
남편의 전공은 한국의 많은 전공의들이 회피한다는 외과다. 의학 드라마를 통해서 본 외과의 현실은 심각해 보인다. 소위 말하는 "3D" 중의 하나라고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드라마에서 보이는 것은 어느 정도의 과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큰 틀에는 그렇게 벗어나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사정은 이곳도 크게 다르진 않다. 아니 더 자세히 말한다면, 중도에 의사 되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요즘 들어 더 많다고 한다. 이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평생 직업으로써의 매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힘들게 공부하고 의대를 졸업해 취직을 해도 일하는 조건이나 연봉이 다른 직업군과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굳이 어렵게 공부해서 위험부담이 큰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더욱이 현직의 의사들도 외국으로 이민을 가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노동 시간과 연봉 때문이다. 특히 일하는 시간은 유럽의 다른 선진국, 예를 들면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에 비해 정말 열악하다. 물론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그것을 정확히 지키지는 못한다. 그리고 밤샘 응급실 당직을 하는 날에는 더 힘들다.
아침에 보통(남편은 6시 15~20분쯤 집을 나간다) 때와 같이 출근하여 오후 4시까지 당일 업무를 보고 4시 이후부터 익일 오전 8시까지 밤을 새워 당직을 본다. 이때 운이 좋으면 한두 시간 세우 잠을 잘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이렇게 밤샘 당직을 하고 난 뒤에는 나머지 남은 일들을 정리하고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평균 12-1시 사이이다. 이렇게 집에 도착하면 곧바로 잠자리에 든다. 이 것도 그나마 많이 좋아진 것이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당직근무를 하고 난 뒤 바로 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도 평일처럼 근무를 했다. 결국 34~36시간을 연속적으로 업무를 보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 특성상 엄청난 스트레스와 피로가 누적되는 근무환경이었다.
세금이 많다 보니 이 것 또한 큰 부담이다. 특히 미혼인 경우에는 월급의 거의 반 정도가 세금으로 나간다고 보면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결혼하여 아이가 있다면 미혼보다는 훨씬 적은 세금을 낸다. 그러나 이것도 다른 나라에 비해서 많이 부족하다. 어떤 이의 말로는 북유럽의 의사들은 많게는 3-4배 정도 더 받는다고도 한다. 이 것이 사실인지는 직접 확인을 못해 알 수는 없지만, 이곳보다 많이 받기는 하나보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외과를 선택한 것은 '좋아서'이다. 남편은 자신의 일을 즐거워한다. 때론 수술 때문에 몇 시간 동안 화장실도 못 가고 서 있어야 하고, 때론 계속되는 수술로 점심도 제때에 먹을 수 없는 것이 일상이다. 그래도 이 일을 하는 것은 '이 일이 좋고 즐거워서'란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스트레스와 불규칙한 식습관 때문에 건강을 해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환자들의 병을 고치고 관리도 해주는 의사들이 정작 자신의 몸을 너무 혹사시킨다. 누구나 하는 정기검진도 거의 안 받는다. 남편에게 계속 주의도 주고 협박도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마음 같지 않나 보다. 결코 쉽지 않은 직업인 것은 확실하다.
이런 모습을 보아서 그럴까? 아들 녀석은 절대 의사는 되지 않겠다고 한다. 하지만 딸아이는 '그 사건'을 계기로 이때부터 아빠와 함께 수술하는 것이 꿈이었다. 딸아이가 두 살 때쯤이었다. 남편은 학회로 다른 지방으로 출장을 갔고 집엔 갓 태어난 아들 녀석과 두 살 된 딸아이와 함께 있었다.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데 거실에서 놀고 있던 딸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놀라 뛰어가 보니, 소파에서 놀다가 넘어졌는데 팔이 너무나 아프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아파하던지 손도 못 대게 했다. 남편도 없고 일단 갓난아이를 유모차에 싣고 딸아이를 보드에 태워 남편이 일하는 병원의 응급실로 달려갔다. 다행히 병원 가까운 곳에서 살아서 금방 도착했다.
그날 응급실 당직의사는 아픈 곳을 정확하게 찾는다며 딸아이의 팔을 이리저리 만져보았고 그때마다 딸아이는 아픔으로 소리를 질렀다. 듣고 있는데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 제법 긴 시간 동안 딸아이의 팔을 만져보았지만 아픈 곳을 찾지 못했고,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살펴본 결과 부러진 곳은 없다고 했다. 팔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밴드끈으로 고정만 하고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아이는 아프다고 하는데, 의사는 다친 곳이 없다고 하니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그 사이 아이는 지긴 맥진했고 울다 지쳐서 잠들었다. 두 살 난 아이가 아파서 우는데 너무나 건조하게 대하는 그 의사의 태도에 화도 났고, 원인을 찾지 못한 그의 능력에 실망했다. 울며 잠든 딸아이를 억지로 깨워서 다시 보드에 태워 유모차를 밀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어찌나 서럽던지. 남편의 부재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프다며 계속 우는 아이를 겨우 잠들여 놓고 눈물을 흘리며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다행히 학회가 마무리가 되고 저녁식사 중간 휴식시간이 되어서 전화연결이 되었다.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가능한 한 빨리 오라고 부탁했다. 몇 시간 후 새벽녘이 되어서 남편이 집에 왔다. 곧장 잠든 아이를 깨워 아픈 곳을 물어보고 팔을 만져보더니, 몇 번 이리저리 움직여 팔을 맞췄다. 바로 안 아프다고 했다. 팔을 흔들어 보며 이젠 안 아프다고 웃으며 좋아했다. 원인은 팔이 빠졌던 거였다. '당케 파파'를 몇 번이고 되뇌며 아빠품에 안겼다. 이때부터 아빠는 딸아이의 영웅이 되었다. 아빠처럼 의사가 되겠다고 했다. 다음 날 퇴근한 남편에게 들은 이야기론 그날 당직 섰던 의사는 페이닥터로 남편이 다니는 병원의 의사는 아니었다고, 또 왜 그가 그것을 발견 못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도 했다.
아빠 같은 의사가 되겠다는 딸아이의 장래희망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보통 크면서 장래희망이 자주 바뀌는 게 일반적일 텐데, 딸아이는 처음부터 한결같았다. 그러던 딸아이가 올 가을에 의대에 합격해서 대학생이 되었다. 원하던 대학에 합격해서 지난주부터 수업을 듣고 있다. 열심히 잘 배워서 미래의 훌륭한 의사가 되기를 기도한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라서 미리 이사도 갔다. 이 번 주말에 집에 온다. 그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일은 매일같이 화상통화를 통해 듣고 있었지만 집에 오면 먼저 꼭 안아줘야겠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음식도 많이 준비했다. 설렁탕이 먹고 싶다고 해서 이틀 전부터 뼈를 푹 고아 맛이게 준비해 뒀다. 음식을 해서 먹을 시간이 없을 테니, 엄마표 밑반찬도 넉넉히 준비해 뒀고 간편식도 많이 사 뒀다. 이제 딸이 오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