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생활 28년이 지나면서도 잊히지 않는 '음식 맛'이 있다. 바로 친정 엄마가 만들어 준 물김치!
어릴 적 별로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입이 궁금하면 나는 엄마 몰래 냉장고 문을 열고 그 속에서 잘 익고 있는 물김치를 손가락으로 조금 건저 내 입에 넣고 그 맛을 음미하기도 했다. 그렇게 먹는 물김치의 건더기는 그 어떤 군것질 거리보다 맛났다.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곧 숟가락채 국물을 떠먹게 만들기도 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엄마의 물김치는 그 어떤 것 보다 맛있었다.
집 옆에 조그마한 땅 모서리에 직접 씨 뿌려 키운 열무.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당시의 열무는 부드럽고 향기롭기까지 했다. 이 열무를 잘 키우기 위해 엄마는 거름도 직접 만들어 쓰썼는데 그것은 바로 '오줌'이었다. 오줌을 모아 '숙성'시켜 그것을 물에 희석시켜서 거름으로 주셨더랬다. 당시야 식비를 조금이라도 덜 쓸 요량으로 직접 키우신 것이지만, 요즘 말로는 완전한 '유기농 채소'인 것이다.
그렇게 정성 들여 키운 열무는 밀가루를 엷게 풀어 끓인 밀가루 물과 함께 갖은양념을 넣어 익혀준다. 실온에서 하루나 반나절 두었다가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먹으면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맛있는 '행복한 여름음식'이 된다.
그 당시엔 그저 좋아하는 반찬 중의 하나였을 뿐인데, 지나고 보니 그 이상이었나 보다. 독일로 유학 와 홀로 지낼 때, 집 생각이 나면 꼭 된장국을 끓여 먹었었다. 그래서 나의 '최애 음식'은 된장국으로 알았고 그렇게 이야기해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내가 첫 아이를 임신하고 임신성 당뇨로 먹는 것을 조절해야 했을 때 가장 먹고 싶었던 것은 바로 '엄마의 열무 물김치'뿐이었다. 보통 입덧이 심할 때 임부들은 '한겨울에 딸기가 먹고 싶다, 수박이 먹고 싶다'등 구하기 힘들 계절 음식들을 찾는다고 들었다. (사실 요즘은 딱히 계절 음식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지만. )
하지만 난 어떤 다른 맛난 음식보다도 이 열무물김치가 너무나 먹고 싶었다. 그 맛을 알리 없는 독일인 남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옆에서 안타까워만 했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 열무물김치가 가장 구하기 힘든 음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끝내 난 이 음식을 먹진 못 했다. 독일에서 임신한 딸이 먹기엔 엄마의 물김치는 너무나 먼 곳에 있었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얼마나 그 맛이 그리웠던지. 딱 한 젓가락만 먹었으면 소원이 없을 정도로 간절했다.
그래서였을까?
독일에서 나고 자란 독일 아이인 딸아이가 이 물김치를 정말 좋아한다. 난 김치를 따로 직접 담아먹질 않았다. 한국의 재료를 구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또 구해서 만들어도 노력 대비 그 결과물이 좋은 편이 아니라 한 두 번 시도하고는 포기했었다. 일반 김치도 그럴진대 물김치는 말할 나위도 없다. 생전 물김치라고는 먹어 본 적도 없던 6살 난 딸아이가 한국 방문에서 처음으로 먹어본 할머니의 물김치를 너무나 좋아하는 것이다. 맛있다며 그릇째 들고 국물을 마시기도 했다. 그것을 지켜보는 나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그리고 독일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딸아이가 '한국에서 먹었던 그 물김치가 먹고 싶다'라고 하는 것이다. 참~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입맛도 유전이 되는 것일까?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먹고 싶었던 것을 이제라도 실컷 먹겠다는 보상심리일까? 참으로 신기했다!
원래 딸아이가 다른 사람들보다 '신맛'을 좋아하긴 한다. 난 셔서 먹지 못하는 레몬도 아주 맛나게 잘 먹는 아이였기에 시큼한 물김치 맛을 좋아하는 것이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다. '할머니의 물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또 먹고 싶으니 엄마인 나에게 만들어 달라고 한 것이다.
그때부터 거의 해마다 여름엔 물김치를 담근다. 친정 올케언니에게 부탁해서 열무 씨앗을 공수받아 열무를 직접 키워 딸아이가 좋아하는 열무물김치를 담아 먹었다. 그때 받았던 열무의 씨가 아직 남아있지만, 유감스럽게도 더 이상 발아를 하지 않는다. 해마다 심어는 보는데, 최근 2~3년은 수확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고 이곳 독일에서 봄, 여름이면 너무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래디쉬로 김치를 담아먹기 시작했다. 처음엔 반신반의로 일단 담아봤다. 여기 사람들은 래디쉬의 붉은 뿌리 부분만 먹고 초록 이파리는 버린다. 부드럽고 연한 이파리로 충분히 김치가 가능할 것 같았다. 예전 엄마가 물김치를 담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았던 기억을 쫓아 만들어 보았다. 열무로 담은 물김치만은 못하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은 했다. 해서 해마다 이 래디쉬로 물김치를 만들며 '여름 시즌'을 준비한다.
친정엄마에게서 물려받은 '물김치 맛'이 딸아이에게까지 전해졌나 보다. 아이가 좀 더 크면 만드는 법을 가르쳐줘야겠다. 나에게 이 물김치는 시간과 거리를 뛰어넘어 '엄마와 딸'이라는 세대를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 같은 존재다. 28년째 독일에서만 생활하고 있기에, 이 기간 동안 친정엄마와 함께한 시간과 경험이 많이 부족하다. 간혹 몇 년에 한 번씩 한국을 잠깐 다녀오긴 했지만, 이전과 같은 경험을 나누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예전의 기억처럼 그런 '끈끈한' 정은 많이 쌓지 못했다. 지금은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안 계신다.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퍼져 항공길이 막혔을 때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많이 아프셨다.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고 영양분만 공급받으며 생명을 유지하고 계셨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죽음이라 처음엔 망연자실했었다. 전화기를 통해 전해 들은 내용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많이 아프셨기에 돌아가실 것을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 갑작스러웠다. 하필이면 이동도 하지 못하는 시기라니. 이때 독일은 집밖으로 이동도 금지되던 시기였다.
역시나 지난봄에 물김치를 담글 때 친정엄마 생각이 더 났었다. 딸아이가 원해서 함께 만들었는데 할머니 이야기를 계속했었다. 외할머니와의 만남도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지난 방문 때의 할머니 모습이 자꾸 생각난다고 한다. 할머니의 물김치 레시피를 따라서 자기도 물김치를 직접 만들어 먹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