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라 불리고 싶었던 연하의 남편

내 영혼의 반쪽

by 메아스텔라meastella

보통 독일의 직장인들은 '칼퇴근'을 한다. 퇴근 안 한 상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정해진 시간 외에 직장에 오래 있을 이유도 없다. 응급 상황이 아니면 남편도 칼퇴근을 한다. 전날 밤에 입원한 환자들의 정보를 미리 체크해야 하는 아침 회진 담당이 아니면 보통 6시 15분에 집을 나가 오후 4시 30분쯤엔 돌아온다. 원래는 3시 30분이 퇴근 시간이지만, 수술 등으로 마무리 못한 서류가 있으면 퇴근시간이 조금 늦어지기도 한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칼퇴근이다. 그런 날은 한식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이것저것 음식을 한다. 그날도 남편이 좀 일찍 퇴근했다. 마침 저녁을 준비하고 있던 중이라 남편을 부엌으로 불렀다. "자기가 좋아하는 된장국 끓일 건데, 채소를 좀 다듬어줘~" 라며 일을 시켰다. 가능하면 남편에게 부엌일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 아니, 다시 말하자면 함께 음식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거다. 그동안 상 차리는 것은 도와줬었지만, 직접 부엌에서 음식은 하지 않았다. 우리의 역할분담은, '서로 잘하는 것을 하자'이다. 신혼 초엔 가끔 스파게티도 직접 만들어 보고 했었는데, 나중엔 내가 못 하게 했다. 말이 날 돕는 거지, 음식 한 번 하면 온 부엌을 전쟁터로 만들어 놓았다. 그 뒷정리를 하는 게 음식을 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내 일이 더 많아졌고, 음식은 맛이 없었다. 그래서 정중히 거절했다. 차라리 밥 먹고 난 뒷정리를 하라 했다. 그래서일까? 아이들 사이에 '엄마는 의례 항상 밥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다. 특히, 아들 녀석에게 '여자는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남겨 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모든 것을 함께 하려고 한다. 음식도 함께 만들고, 상도 함께 차리고, 뒷정리도 함께 하고.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남자가 할 일, 여자가 할 일' 구분 짓지 않고 할 수 있도록 그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 노력의 결과물인지 아들녀석도 간단한 것은 스스로 챙겨먹는다.




신혼 초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서로의 하루를 물으며 함께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야채를 다듬다 말고 무슨 생각이 났는지, 남편이 핸드폰을 켰다. 그리고 곧 인터넷 라디오에서 한국음악이 흘러나왔다. '한국 방송을 들으면서 음식을 만들면 더 맛있을 것 같다'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열심히 감자를 깎았다. 잠시 후 음악이 끝나고 라디오 DJ가 청취자의 사연을 읽어 준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이 뭔가 생각이 났는지,


"자기야, 근데 자긴 왜 나한테 오빠라고 안 불러? 다른 한국 사람들은 다 남자 파트너에게 오빠라고 하잖아?"
엥? 뭔 소리?
"아니~ 한국 여자들은 남편이나 남자 친구에게 오빠라고 하잖아~. 근데, 넌 왜 나에게 오빠라고 안 하냐고~? 오빠~ 해봐!
"여보세요, 아저씨? 내가 댁보다 나이가 많거든요~! 오빠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오히려 아저씨가 나 보고 '누나~' 해야 되거든요! "


남편이 나보다 7살이나 어린데, 날 보고 '오빠~'라 부르라 하니 참 어이가 없다. 뜬금없이 '오빠 타령'을 하기에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라디오 청취자의 편지 내용 중 '오빠'라는 말이 나 온 거였다. 신랑은 그 말의 어감이 좋다고 했다. 그땐, 오빠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저 '여보~'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렇게 오빠 소리를 듣고 싶었던, 내 남자는 지금 '드라마 아저씨'가 다 됐다. 이전 내가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드라마 아줌마'라고 놀리더니 이젠 자기도 '드라마 아저씨'가 다 됐다고 농담을 한다. 사실, 어떤 면으로는 맞는 말이다. 한국어에 노출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이전의 한국어 실력보다 더 나빠진 자신의 실력에 한탄을 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더빙되어있지 않은 원작을 자막과 함께 본다. 그럼, 말의 메로디를 더 잘 익일수 있다며 시간 나는 대로 열심히 보고 듣고 있다. 한국의 일상생활과 일상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트렌디한 드라마보다는 일일극을 선호하는데, 난 재미가 없어서 잘 보지 않는다. 나와 함께 보길 원하는 남편을 위해 네플 릭스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골라서 잘 보고 있다. 최근에는 '미스터 선샤인', '아스달 연대기', '별에서 온 그대', '괴물'등을 잘 봤다. 한국어 실력 향상을 위해 일주일 중 '하루는 오로지 한국말만 하자'고 제안을 했는데, 잘 되지 않고 있다. 어휘가 딸려서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말하기 연습을 시키고 싶은데, 생각같이 잘 되진 않고있다. 아이들이 크다보니 모두 생활패턴이 달라서 좀 힘들다. 하지만 딸아이와는 가능한한 한국말로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남편이 좀 더 자극받기를 바라면서.


남편은 부산 사투리를 유난히 좋아한다. 네플릭스에서 함께 본 '응답하라 1994'년. 이전 유튜브를 통해 토막으로만 봤어도 재밌었는데, 이 번 기회에 함께 봤다. 한때 '응사'의 매력에 빠져 옛 추억에 빠져있었다. 내 기억 속의 1994년은 아직도 색이 바래지 않은 천연색 그대로다. 많은 사람들이 '응답하라 1994'년에 빠지게 된 이유는 아마도 이 드라마에서 구사되고 있는 찰~지고 걸쭈~욱한 사투리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 시대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많은 소품과 청춘들의 순수한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이 걸쭉한 사투리의 매력에 빠진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라 남편도 마찬가지다. 이전 한국어 과외(내가 남편의 한글 선생님이었다)할 때, 수업 중 부산 남자와 서울남자의 차이점을 재미 삼아 얘기해 준 적이 있다. 꼭, 드라마 속의 쓰레기와 칠봉이의 차이점과 같다고나 할까! 그때 남편은 부산 남자의 그 무뚝뚝한 매력에 푸~욱 빠졌었다. 그리고 부산 사람들의 '언어의 경제성'이 독일 북부 지방과 많이 닮았다고 신기해하기도 했다.


'가~가 가~가?'
(그 아이가 네가 이전에 말한 그 아이니?)
'가~가 가가라카는 가~가?'
(그 아이가 가씨 성을 가진 그 아이니?)
'가~가 가가라카는 가가~, 자~가 가가라카는 가가?'
(그 아이가 가씨 성을 가졌다는 그 아이니? 아님, 저 아이가 가씨 성을 가졌다는 그 아이니?)


특히, 이 문장을 너무나 재밌어했다. 이 문장을 들을 때마다, 깔깔깔 넘어갔다. 워낙 유명한 문장이라 경상도 출신이 아니라도 다들 이해할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긴 말을 (독일어로 번역을 하자면 더 길다.) 이렇게 짧게 말할 수 있는지, 너무나 신기해했다. 그러다, 최근에 이 드라마를 함께 보다, 남편이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낸 거다. 결국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한 마디 한다.


"아빠~ 한국말 잘해~ 너희들은 아마 못 알아들을 걸?"


그러면서, 위의 문장들을 쭈~욱 읊어댔다. 근데, 억양이 좀 어색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의 아이들의 표정이, '에~엥~? 뭔 소리?라는 묻는 듯했다. 사실, 이 부산 사투리는 억양이 정말 중요하다. 제대로 된 억양이 아니면, 그 뜻을 그대로 전달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남편은 그 어색한 억양으로 너무나 정성껏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자신이 먼저 선창하고 아이들이 따라 하길 원했다. 내 귀에는 정말 이상한 부산 사투리였다.


"에이~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하며, 내가 아주 '멋지게' 부산 사투리 원어민 발음으로 들려줬다. 음악처럼 들리는 사투리의 멜로디에 아이들은 재밌어하며 금방 따라 했다. 역시, 아이들은 뭐든 배우는 게 빠르다. 내친김에 어려운 한국 발음도 함께 가르쳤다. 물론, 이전 남편에게도 가르쳐 줬었는데, 다 잊어먹었다. '간장공장 공장장은 공장장이 아니고 된장공장 공장장은 공장장이다' 우리에겐 너무나 쉬운 발음이지만, 아이들과 남편의 혀엔 쥐가 났다. 독일어에도 이런 문장이 많은데, 이 것을 '충엔브레혀(Zungenbrecher)'라고 한다. 잠깐 소개를 하자면,


1. Fischers Fritze fischte frische Fische, frische Fische fischte Fischers Fritze.
2. Hätte Hänschen Hans Holz hacken hören, hätte Hänschen Hans Holz hacken helfen.


이 문장은 나도 발음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천천히 읽으면 그렇게 어렵진 않지만, 우리말의 '간장공장 공장장'처럼 빨리 읽다 보면 발음이 꼬이기 마련이다. 이렇게 온 가족이 사투리와 발음으로 한바탕 크게 웃었다. 아이들과 남편 왈, 이젠 부산 사투리로 한국말 많이 해 달란다, 재밌다고. 그래서 대답했다.


'여보세요~ 평소에 엄마가 쓰는 말이 부산 사투리예요~'






난 기념일을 잘 기억 못 한다. 부산여자라서 그렇다고 항상 변명 아닌 변명을 하긴 하는데, 남편에게 미안한 경우가 종종 있다. 예전에 기념일을 기억 못 한 나에게 남편이 화가 단단히 났었더랬다. 아무리 달래도 좀처럼 풀리지가 않았다.


"자기야~ 다음 주 토요일에 뭐 할 거야?"
"응~? 다음 주 토요일? 아무 일도 없는데...."
"아~ 맞다! 한글학교에서 행사가 있어. 뮨스터에 있는 한국 교수가 이 곳에서 강의를 하는데, 그것 같이 듣기로 했는데~ 그러니까 그 날 아무 계획도 잡지 마~"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편의 표정이 평소와는 다르게 굳어졌다. 그때까지 아무것도 모르던 난 왜 얼굴이 굳어지냐며? 같이 가기 싫냐며? 물었다. 신랑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아니라고만 했다. 아이참~ 답답해. '도대체 왜 그러냐고' 아무리 물어도 대답을 안 했다. 이유를 말하지 않는 남편에게 나도 점점 화가 났다. 급기야, 부산여자의 기질이 나오며,


'아니할 말이 있으며 하라고! 그렇게 화난 아이처럼 뚱하게 하고 있지 말고!'
'정말 다음 주 토요일이 무슨 날인지 몰라?'
'다음 주 토요일이, 뭐? 그 날이 무슨 날인데?'
'다음 주 토요일이 며칠이야?'


달력을 보았다. '11월 5....... 일....' 아뿔싸 11월 5일! 내가 그만 또 잊어 먹은 거다. 우리의 결혼기념일!!!

잊지 않고 내가 먼저 기억했다가 남편을 놀래 주려고 했었는데, 여지없이 또 잊고 있었던 거다. '기억하고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남편이 물었는데, 엉뚱한 대답을 하니 화가 났던 거였다. 정말 미안했다. 할 말이 없었다. 친구들이나 주변의 지인들로부터, '남편이 기억을 못 해서 아내들이 서운해한다'라는 말은 가끔 들었었는데, 우리 집은 그 반대가 되어버렸다. 사실, 난 생일이다, 기념일이다, 이런 것 잘 기억을 못 한다. 아이들 생일은 안 잊는데 남편의 생일이라든지 심지어 내 생일은 더 잘 잊어먹는다. 아무리 달력에 표시를 해뒀어도 막상 당일엔 잊어 먹기 일수다. 그래서 핸드폰에 이중 삼중으로 알람을 맞춰놨다. 며칠 있으면 결혼 19주년이 된다. 이번에는 절대로 잊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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