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집밥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잠시 저의 집밥 이야기에 대해 나누어 볼까 합니다.
나의 집밥 이야기
저희 엄마는 작은 밭을 빌려 콩을 심어 직접 메주를 빚고 고추장, 된장, 간장까지 다 만드실 정도로 집밥에 열과 성을 다하셨던 분이었습니다. 삼시세끼 아침부터 밥을 항상 차려 주셨고, 심지어 피자, 치킨, 도넛 같은 음식까지 집에서 직접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엄마의 건강한 집밥을 먹고 자랐던 저는 스무 살부터 기숙사와 자취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후로는 삼각김밥, 컵라면, 시리얼 같이 간편하지만 환경 호르몬과 식품 첨가물로 가득한 음식들로 제 몸을 채우게 되었어요. 밤에는 매운 떡볶이와 기름진 치킨들로 마음을 달래고 말이죠.
흔히 식품영양학과를 나왔다고 하면 요리를 잘하겠다,라는 오해를 받고는 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저는 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라면 끓이기, 계란 프라이 정도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대학에서 배운 것들은 대부분 생리학, 생화학 같은 자연과학이었습니다. 조리학과가 아니기 때문에 조리 관련된 수업은 단 하나뿐이었고요. (친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라 심지어 태어나 칼질을 처음 해본다는 친구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자취 생활도 잠시 했고, 레스토랑과 케이터링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심지어 급식 회사에 입사하면서 주방과 조금 친숙해지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집밥은 소홀히 했죠. 엄마가 보내주시는 반찬들도 미처 다 못 먹고 버리는 일이 잦았어요. 맛있는 것을 좋아했지만, 제가 배운 지식들은 지식으로만 머물렀습니다. 한마디로 그냥 별생각 없이 먹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 의사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남들은 하나도 걸리기 어렵다는 여러 개의 희귀 난치 질환들도 얻게 되었습니다. 류마티스, 쇼그렌, 루푸스, 쿠싱증후군, 부신 종양… 누군가는 평생 모르고 살았을 드문 질병이기도 합니다. 돌이켜보니 제 몸을 혹사시키고 돌보지 않으면서 달려왔더군요.
You are what you eat.
제가 그동안 먹었던 음식들이 저를 만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로 저는 제 생활을 조금씩 바꾸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먼저 신경 쓰기 시작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집밥입니다.
집밥을 먹어야 하는 이유
집밥, 좋다고는 하는데 왜 좋을까요?
집밥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 저처럼 희귀질환에 걸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먹는 모든 것들이 몸에 쌓이고 남는다고 생각하면 더욱 집밥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한 번 집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1. 영양 밸런스를 맞출 수 있다.
밖에서 흔히 사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의 특징은 고당분, 고지방, 고염분입니다. 열량은 높으면서 단백질, 비타민, 무기질은 낮기 일쑤입니다. 초가공식품의 특징과 유사합니다.
집에서 먹게 될 경우, 같은 음식을 먹어도 채소를 더 많이 넣어 먹을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제육볶음을 먹어도 집에서는 양파, 양배추, 당근을 풍성하게 넣어 요리할 수 있고, 상추쌈도 마음껏 곁들일 수 있죠.
라면을 먹어도 집에서는 계란 프라이나 해산물을 추가해 단백질을 더하고, 콩나물과 대파를 넣어 채소를 더해 먹을 수 있습니다. 인스턴트도 근사한 요리처럼 변할 수 있는 경험을 집밥을 통해 할 수 있어요.
심지어 치킨을 배달시켜 먹더라도 집에서 먹는다면, 샐러드를 곁들여 먹을 수 있습니다. 당분이 가득 들어 있는 콜라 대신 가게에서 팔지 않는 탄산수나 무알콜 맥주를 함께 마실 수도 있고요. 이렇게 내가 ‘식사의 질을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을 집밥은 허락해 줍니다.
2. 입맛이 순해진다.
외식은 보통 어떤 맛인가요? 맵고, 짜고, 달큼합니다. 이렇게 자극적인 맛은 식욕을 자극하게 됩니다. 먹고 분명 배는 부른 것 같은데, 또 다른 음식에 대한 욕구가 일어나죠. 느끼한 파스타를 먹고 나면 매콤한 음식이 끌리고, 매운 떡볶이를 먹고 나면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당기는 그런 고리를 한 번쯤 경험해 보셨을 거예요.
집에서는 아무래도 외식처럼 맛을 강하게 내기 어렵습니다. 왜냐고요? 실제로 음식을 만들다 보면 아무래도 조미료를 많이 넣기 힘들거든요. 직접 베이킹 한 번 해보시면 버터나 설탕의 양에 놀라서 주저주저하게 될 겁니다. 이렇게나 많이 들어간다고? 눈에 보이지 않던 달고 짜고 기름진 맛을 내는 재료들의 양을 내 눈으로 보게 되며 알게 됩니다.
간단한 김치찌개만 해도 집밥과 외식의 맛은 확연하게 다릅니다. 설탕과 식초를 가득 넣은 백반집 김치찌개와, 양파와 김치, 돼지고기를 뭉근하게 끓여 단맛과 감칠맛이 저절로 우러난 집 김치찌개를 생각해 봅시다. 집밥을 먹으면 먹을수록, 외식의 자극적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 입맛은 더 순하게 변합니다.
3. 음식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진짜 음식이란 때 되면 알아서뚝딱 식탁에 차려져 있는 것이 아니고, 전자레인지에 돌려 데우기만 하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주문하면 10분 안에 나오는 것이 당연한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 요리를 해보지 않는다면 이 사실을 잊고 지내기 쉽습니다.
그 때문에 편식하는 아이에게 권하는 방법 중 하나가 요리 활동입니다. 낯선 재료도 내가 직접 만들고 요리하면서 그 과정을 알게 되면 친밀감이 생깁니다. 싫어하던 재료라 할지라도 자연스레 간이라도 보게 됩니다. 힘들게 만드는 수고를 알게 되고, 음식에 애정도 함께 생기는 것이죠.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소한 반찬 만들기도 처음에는 막막합니다. 작은 재료 손질부터 마무리 설거지까지 번거롭고 귀찮은 것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식사 준비를 위해 재료를 살 때부터 고민은 시작됩니다. 간장 하나만 고르려고 해도 종류는 왜 이리 많을까요? 게다가 다양한 선택지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유기농? 친환경? 동물복지? 어떤 것이 더 좋은 건지? 여러 가지를 알아보며 식재료에 대해 알게 되고, 우리가 사는 지구와 자연까지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 간단해 보이는 콩나물 무침조차 콩나물을 데치는 방법을 알아야 하고, 양념의 미세한 비율과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의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마칠 때까지는 크고 작은 수고들이 필요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주어진 음식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도 점차 자라납니다.
이렇게 좋은 집밥, 우리는 왜 하기 어려울까요?
다음 글에서 우리의 집밥 실태와 집밥을 가로막는 흔한 원인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