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낯선 나이
40살이 될 줄 몰랐다. 2022년이 되었을 때 '2022' 숫자는 가지런히 예쁘다 생각했지만 앞자리가 바뀐 내 나이는 와 닿지 않았다. 새해가 밝고 한 달 가까이 되어가는 동안 떡국을 몇 그릇이나 먹었다. 설날에 떡국을 먹으면 한 살을 먹는다고 해서 피하고 싶었지만 맛있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30년 넘게 살아왔어도 매년 새로 더해진 나이에 대한 익숙함은 6개월은 지나야 하지 않던가. 하물며 앞자리가 바뀌었으니 더할 수밖에.
아직 40살이 많이 낯설고 거부하고 싶기도 하다. ‘만으로 38살이고 아직 30대야.’라고 주문을 외우면서 말이다. 1월 어느 아침, 눈을 뜨기 전까지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정도였다. 아침에 눈을 반쯤 감고 뜬 듯 만 듯한 눈으로 핸드폰이 어디 있는지 팔을 뻗어 얼굴 가까이에 가져갔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알림을 보내주는 구직사이트 앱의 알림이다. 구직사이트는 참 부지런하고 친절하다. ‘회원님에게 꼭 맞는 채용 정보가 도착했어요’ ‘회원님에게 딱 맞는 회사는?’ ‘회원님의 키워드 신규 공고를 확인해보세요’ 등 알림만 보면 세상에는 당장에라도 내가 일할 자리가 많아 보인다. 최근에는 직장과 관련한 고민들을 풀어놓은 커뮤니티 글도 알림으로 자주 온다. 구직사이트 앱 안에만 있어도 시간은 훌쩍 간다. 시간이 안 간다고 느낀다면 구직사이트를 추천한다.
누구 마음대로 40이 와버린걸까
마침 1월부터 백수라 긴장감 제로의 아침을 맞을 수 있었는데 이상하게 두 눈이 번뜩 뜨였다. 신기하게 그날 아침 ‘40’이라는 숫자가 40살이 된 이래 가장 선명하게 밀려왔다. 핸드폰 화면에는 [.....40살 평균 연봉.....] 이라는 알림의 글자가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미련스럽게도 아직 30대를 보내주지 못했고, 아니 아직 제대로 30대가 오지도 않은 것 같은데, 왜 벌써 40이 왔는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하네. 누구 마음대로 40이 와버린걸까.
30살이 될 때는 어서 30대로 진입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29살에 유독 회사 일이 많았고, 이래저래 지쳐있었다. 이게 아홉수인가보다 하며 쉬고 싶었고 차라리 30살이 되어 안정감을 찾고 싶었다. 지친 20대 따위 필요 없다며 ‘30이여 어서 내게 오라’를 외쳤다. 다만 그때는 몰랐던 사실. 30대가 되면 안정감이 있다고 누가 그랬는가. 30대가 되어도 고민과 힘듦은 끝나지 않는다. 다른 개념의 걱정이 더 늘어나기도 하고 말이다.
소심함은 늘고 피부 탄력과 용기는 줄고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소심함은 커지고 자신감과 용기는 반비례에 가까워진다. 피부의 탄력은 가속도를 내는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거침없이 떨어져 슬프다. 2030세대로 묶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청년에서 중년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39살까지도 나이 먹음에 크게 개의치 않았는데,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40이 뭐라고 또 아침부터 기분이 이러나 싶었다.
'새삼스레 호들갑이야' 하면서도 아침부터 마음이 급해진다. 나 이대로 백수생활을 해도 괜찮은가. 주변 친구들처럼 남편도 자식도 없고, 방이 2-3개 달린 아파트가 아닌 복층 오피스텔에서 지내는 나는 이대로 괜찮을까. 아무것도 이뤄놓은 것 없는 40대의 시작인데 괜찮은 걸까.
식탐이 소화력을 따라가지 못할 때
급해진 마음만큼이나 때마침 허기짐도 급하다. 40이라고 놀라며 일어난게 불과 몇분 전 아니었던가. 번뜩 떠진 눈에 민망하게 내 배꼽시계는 참 일관된다. 뭐 먹을지 생각하느라 머리가 다시 바빠진다. 뭐 먹지? 다시 신나진다. 단순해서 좋은건가. 10대부터 40대가 된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식탐이겠지.
평소 위가 작아 소식하는 엄마가 누룽지를 주시며 “입맛 없을 때 끓여 먹어”라고 했을 때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말했다. “엄마, 나는 입맛이 없었던 적이 없는데?”라며 항상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고 덧붙였다. 아직 입맛은 살아 있지만 예전에 한 참 잘 먹던 내가, ‘질보다 양’을 외치던 나의 식탐이 내 소화력을 점점 따라가지 못할 땐 안타까움을 느끼며 이게 나이 먹는 건가 싶기도 하다.
세상이 덤비면 어떡하지
‘나혼자 산다’ 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배우 온주완이 나왔다. 40살이 된 그는 30살이 되었을 때와 비교해서 말해준다. “30대 때는 ‘30대 덤벼라!’ 였다면 40대는 ‘세상이 덤비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든다고. 듣자마자 와 이렇게 적절한 비유를 하다니. 손예진이 ‘유퀴즈 온더블럭’이라는 예능에 나와 자신이 마흔이 될 거라고 생각을 못했다고 상상해 본적이 없었다고 했다. 누구나 그렇구나. 50이 되면 또 그러겠지. 진짜 40대 될 때와는 느낌이 다르다고, 내가 정말 50이 될 줄 몰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