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유미
내 꿈은 퇴사다. 직장 생활을 20년 가까이 했지만, 아직도 일요일 밤이 오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럼에도 해가 뜨면 이불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건 ‘월급’이라는 현실적인 이유와 한 가지 더, 내 곁에 있는 대리님들 덕분이다.
운이 좋은 나는, 전쟁터 속에서도 함께 커피를 마시며 마음을 나눌 동료들이 있다. 어설픈 사수 시절에 고생시켰던 대리님부터 이제는 까다로운 부서장 노릇을 하며 자꾸 찾게 되는 대리님까지. 세월이 흘러 팀장이 되었거나 대표가 된 대리님도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예전 호칭으로 서로를 부르며 의지한다. 한 사무실 안에서, 혹은 단톡방에서 그 인연을 이어 나간다. 수많은 세월 동안 월급은 스쳐 갔지만, 내 사람들은 내 삶 깊숙이 자리 잡았다.
가끔 대리님들이 힘들다며 나를 찾을 때가 있다. 나 역시 출근길에 사고라도 나면 좋겠다고 소원하던 김 대리 시절이 있었기에 그들의 하소연이 남 일 같지 않다. 당시 상사의 눈빛과 말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밤잠을 설치기도 했었다.
지금 그런 스트레스가 아예 없어진 건 아니지만, 이젠 근무 시간과 개인 시간을 꽤 잘 구분한다. 퇴근하면 되도록 낮의 일을 떠올리지 않고, 화가가 되어 작업에만 몰입하려고 한다. 소심하던 김 대리가 단호한 김 과장이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언젠가 매출이 좋지 않던 시기, 대표님은 갑자기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우리는 답답한 마음에 술자리로 옮겨 늦은 밤까지 회사의 앞날을 걱정했다. 그런데 다음 날, 그는 어제 저녁 가족과 찾은 맛집 정보를 신이 나서 전했다. 전날의 비장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조직의 주인도 일과가 끝나면 자신을 돌보는데, 나는 왜 그렇게 쓸데없이 남 걱정만 하며 시간을 보냈을까. 그 일을 계기로 결심했다. 퇴근 후 시간은 온전히 내 것으로 채우기로.
얼마 전, 같이 일하다 이직한 후배에게 카톡이 왔다. 새로 출근한 사무실 분위기에 적응하기 어렵다며, 텃세가 심한 탓에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억울해했다. 나는 공감 대신 사실로 답했다.
“에이, 이미 연봉으로 인정받고 있잖아요.” 그리고 어디선가 읽은 문장을 덧붙였다. “벌받을 사람은 언젠가는 벌받게 돼요. 어쩌면 이미 받고 있을지도 모르고.” 계속해서 눈물 이모티콘을 보내는 후배에게, 나만의 위로법을 꺼내 들었다.
“우리 맛있는 거 먹으면서 수다해요!”
그렇게 다시 만난 후배는 그동안 겪은 서러움을 마저 털어놓았다. 각자 업무하기도 정신없을 텐데 다른 일로 서로의 에너지를 소진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예전 내 모습이 겹쳐 떠올랐다. 그녀의 남은 기운을 지켜주고 싶어, 조심스레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대리님, 그분들은 지금 각자 재미난 일을 하고 있을 거예요. 우리도 일 말고 다른 얘기 해요. 요즘 퇴근하고 뭐 해요?”
“팀장님, 저 지난달부터 PT 받기 시작했어요. 연말에 바프(바디프로필)도 찍으려고요!”
유튜브도 다시 시작했고, 내년에는 대학원 진학도 계획 중이라며 좀 전과 다른 밝은 표정으로 재잘거렸다. 그녀의 일상을 듣다 보니 확실히 요즘 대리님들은 나 때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일과 개인 생활 모두에 열정적인 그들은 유튜브, 글쓰기, 캠핑 등 각자 사이드 프로젝트를 이미 즐기고 있었다. 반면 나는 수년 동안 사무실에만 갇혀 있다가 뒤늦게 퇴근 후 그림을 시작했다. 그때의 기쁨은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것 같았다. 늦게라도 열정을 쏟을 무언가를 찾아서 다행이었다. 그 이후,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퇴사를 꿈꾸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 나에게 가장 하기 싫은 일은 출근이다. 오롯이 화가로서 주말을 보내려면 주중을 버텨야 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하기에, 스스로 ‘최고 시급 알바생’이라고 최면을 건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진다. 근무 시간에 집중하고 쿨하게 퇴근하게 된다. 퇴직금과 4대 보험, 점심까지 챙겨주는 아르바이트 자리가 어디 있겠는가. 사장님이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이 ‘최고 시급 알바’는 내 꿈을 위한 소중한 후원자다. 그러니 진심을 다할 수밖에 없다.
회사는 내가 없어도 망하지 않겠지만, 나는 회사가 없으면 굶을 수도 있다. 예술은 밥을 먹여 주지 않지만, 밥은 먹으면서 예술을 해야 한다. 고기도 먹어야 하는 나는 월급을 쉽게 포기할 수가 없다. 일단 출근하면 점심이 나오고 커피도 공짜다. 주말 동안 그림 작업만 하다 보면 유행을 놓치기도 하는데, 팀원들이 틈틈이 재미있는 밈을 알려준다.
직장은 내 시간을 갉아먹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나를 지탱해 주는 최선의 스폰서였다. 일하다 무기력해진 덕분에 그림을 시작할 수 있었고, 월급으로 매달 좋은 물감도 사고 있다. 오늘은 이 모든 경험을 바탕으로 글도 쓰고 있으니 ‘슬기로운 직장 생활 백서’라도 내야 할 판이다.
누군가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인 도움을 넘어 정신적으로도 큰 힘이 된다. 주디에게 키다리 아저씨가 있었듯, 나에게는 월급을 주는 회사라는 든든한 스폰서와 힘이 되어 주는 대리님들이 있다. 그들의 지원 덕분에 나는 스스로를 지지하며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결국, 인생의 진정한 후원자는 이러한 도움을 발판 삼아 나아가는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그림이 새로운 후원자가 되는 순간이 오면, 미련 없이 품고 있던 사직서를 던질 것이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도 기꺼이 받아들이려 한다.
정신 승리한 맑은 눈의 직장인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아침마다 이불 속에서 울며 일어나 출근한다. 월급과 동료들, 그리고 꿈이 나를 이끌어낸다. 어떻게 출근까지 사랑할 수 있겠는가. 그저 돌아올 월급날과 사람들로, 삶을 단단히 쌓아가는 나 자신을 사랑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