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lust.08
'분수에 맞게 살라'하는 말이있다. '안분지족'이라는 고사성어에서 나온 말이다. 근데 이 말을 원래 의도하던 바와 다른 의도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안분지족'이라는 말은 절대로 사람을 기분 나쁘게 만들기 위해서 나온 말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고 방법중의 하나이다. 사람의 능력은 끝이 있고, 사람의 자유도 끝이 있다. 우리는 유한한 세상에서 살고 있고, 무한인 것은 결코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자유'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정말로 무한히 자유롭게 능력을 펼칠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 사람은 역사상 결단코 자유로웠던 적이 없다. 지금이 옛날의 신분제 시대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는가? 과연, 근본적으로 어떤면에서 달라졌는가? 이것은 현재를 사는 우리 모두가 한번쯤 생각해볼 가치있는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의 능력에 안맞는 꿈을 계속 꾸고, 넘치는 욕심을 부려라 미안하지만 계속 그렇게 하면 사람은 결단코 아무것에서도 자유롭거나 행복해질수 없을것이다. '분수에 맞게 살라'라는 말의 첫번째 의미는 넘치는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뜻이다. 넘치는 욕심을 부리는 순간, 사람은 편안한 상태에 이를 수 없다. 사람은 어느때든 순응해야 할 떄가 온다. 사람은 어느때든 현실과 마주해야 할 때가 온다. 사람은 누구나 현실에 만족하지 않지만, 만족할 수 밖에 없는 때가 온다. 그것이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느끼는 것이든, 자신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일에서 느꼈던 좌절감이든, 그것을 깨달을때가 살면서 한번 쯤은 온다. 하지만, 순응하지 않고 계속 맞서려고 하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이 엄습해온다. 나는 많은 사람들의 일탈이나 자살이 이런 심한 괴리감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현대의 미디어는 무엇이 성공한 삶인지 어떤 것이 행복한 삶인지에 관한 뒤틀려진 청사진을 제시한다. 괴리감은 점점 깊어가고, 어두운 생각들이 어두운 방안에 스며든다. 이럴 때 필요한 말이 나는 '안분지족'이라고 생각한다, 한번쯤은 그런생각들과 자신의 변태에 실패한 껍데기들을 훌훌 털어버려야 할 때가 있다.
세르반테스의 명작 '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가 58살이 되던해에 세상에 나왔다. 이 작품에서 돈키호테의 종자 산초판사가 통치직을 그만두면서 한 유명한 대사를 여기에 인용하고 싶다. "여러분, 길을 비켜 주시오. 그리고 내가 옛날의 자유로운 몸으로 돌아가도록 놔두시오. 현재의 이 죽음과 같은 생활에서 되살아나도록 지난 삶을 찾으러 가게 해주시오. 나는 통치자가 되려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오...나는 법을 만들고 땅이나 왕국을 지키는 일보다 밭을 일구고 땅을 파고 포도나무를 베로 가지를 치는 일에 대해 훨씬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오. 성 베드로는 로마에 있을 때 제일 편안하다는 말처럼, 사람마다 각자 타고난 일을 하는 것이 제일 어울린다는 얘기요. 손에 통치자의 권위를 나타내는 표상인 왕홀보다 낫 한 자루 쥐고 있는게 내게는 더 잘 어울린다오."(열린책들, 안영옥역) 작가 세르반테스 자신이 누구보다도 자유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세르반테스는 5년동안 노예생활을 하였고, 살아 생전 세 번이나 감옥에 갇혔었다. 1600년대에 지어져 400여년을 거슬러 들려오는 산초판사의 말이 내게는 '안분지족'이라는 옛말과 겹쳐지고, 이것이 '분수에 맞게 살라'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