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첫 만남

by 슬그머니

장렬하게 타오르는 태양아래로 바깥을 돌아다니는 이를 찾아볼 수 없었다. 건물의 그림자 그늘아래 선 이주현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르름을 잃은 하늘은 회색빛으로 미세먼지를 가득 머금고 열기만을 내뿜고 있었다.


“뭐 해. 갈 준비 하자.”


마스크와 보안경을 끼고 보호복을 입은 윤지우가 이주현을 툭툭 쳤다. 그러자 똑같은 복장을 한 주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태블릿을 들었다.


“사회보장정보시스템”


화면이 켜지자 대상자들의 이름이 나타났다. 오늘 조사해야 할 대상자들이었다.


“김하율 54세 생계·의료·주거급여 수급자.”


주현은 첫 번째 방문 대상자의 이력을 눈으로 빠르게 읽었다.


“위험등급인 C등급. 3번의 기회 중 2번 실패. 마지막 탈수급 실패 시 폐기.”


알콜리즘과 우울에피소드, 그리고 간헐적으로 나오는 폭력성으로 행정복지센터에 폭행과 업무집행방해의 이력들 사이로 과거의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자영업자로 모범시민이었다…..”


“이 사람. 결국. 그렇게 될 줄 알았지.”


지우는 고개를 저으며 손짓을 했다. 주현은 지우를 바라보았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주사님.”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도 어쩌면 괜찮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지우는 주현의 질문에 답을 해주지 않았다. 태블릿을 넣으며 주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보면 알아. 가자.”


지우가 앞장서서 걸어갔다.


“전산이 모든 걸 알 수는 없으니까.”


그 뒤를 주현도 따라 걸었다. 걸음을 옮기는 주현의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도 무거웠다.


**


허름한 빌라 앞. 낡아서 폐허나 다름없는 그곳에 누가 살까 싶은 이곳이 김하율씨의 주소지였다. 빌라의 입구에서부터 악취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 지하인 그의 집에서 나는 냄새는 안 봐도 뻔했다.


주현은 마스크를 끼고 있었지만, 코를 막고 싶은 생각을 참았다. 윤지우는 익숙한지 아무렇지도 않게 앞장서서 지하로 내려갔다. 그 뒤를 주현도 그의 집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B03호”


주현은 태블릿을 꺼내 스캔을 했다.


“김하율 54세 집 방문 확인 되었습니다.”


알림이 나오자 주현은 초인종을 누르려 손을 뻗었다. 그러다 문득 고장 난 것 같아 보이는 초인종의 상태에 문을 두들겼다.


“김하율씨. 하늘동 행정복지센터입니다. 안에 계십니까.”


몇 번을 두들기자 그제야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지우가 멈추라는 손짓을 하자 주현은 멈추고 문을 바라보았다. 지우는 잠시 안에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알았어 기다려! 시끄럽게 쯧.”


안에서 쿠당탕하는 무언가 쏟아지는 소리와 함께 김하율이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그 틈으로 강한 악취와 술냄새가 한순간에 몰아쳤다.


주현의 마스크를 뚫는 냄새에 살짝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왜! 왜 왔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한순간도 먼저 말한 틈을 주지 않았다. 술에 절어 코가 빨개진 그는 또래보다 더 늙어 보이는 외모였다. 화가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살짝 풀린 눈에는 지친 기색도 역력했다.


“어떻게 지내시는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다른 공무원들과 다른 주현의 부드러움에 살짝 경계가 풀린 것 같았다. 하율은 한걸음 물러서며 주현을 올려다보았다. 지우는 말없이 주현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있었다.


“요새도. 술 드세요? 오늘도 드신 거예요?”


하율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의 뒤 바닥에 술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하율은 몸으로 그 술병을 가리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아까 쏟아진 소리가 술병 때문인 것 같았다.


“술 안 드시기로 하셨잖아요. 그래도 금주 상담 한 달 동안 참여하셔 놓고.”


하율은 주현의 시선을 피했다.


“술. 안 먹어.”


“더 드시면 안돼요. 위험해요.”


주현이 하는 말이 어떤 말인지 하율도 알고 있는 눈치였다. 더 이상의 갱생의 여지가 없으면 폐기된다. 그게 지금 현실의 법이었다.


“치료 프로그램이랑, 취업 프로그램. 참여하셔야 아는 거 아시죠.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면, 저도 도와드릴 수 없어요.”


폐기된다는 건 죽는다는 거였으니까. 주현은 어떻게든 돕고 싶었다. 사람이 가치가 없다면 제거하는 이런 세상에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시작한 사회복지 공무원 일이었으니까. 매번 간절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바뀔 수 있을 거라 믿으니까.


“아시다시피. 김하율씨 지금 당신은 C등급입니다. 마지막 기회이니까 협조하도록 하세요.”


대화가 길어질 것 같자 지우가 차갑게 파고들었다. 지우의 말에 하율은 그대로 멈춰버렸다. 굳어버린 것처럼 금세 얼굴이 울그락푸르락 변하고 있었다.


“아. 그래도 선생님. 이번 프로그램을 성실히 받으시면 반려될 수도 있어요. 우리 같이 해봐요. 할 수 있어요.”


“알았어요.”


주현의 호소에 하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현은 태블릿 상에 상담과 치료 프로그램 참여 연계 버튼을 눌렀다.


“재판정 3개월 유예.”


자동으로 결과가 화면에 나왔다. 주현은 태블릿을 넣고 하율에게 말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봬요.”


“그….. 잘 부탁합니다.”


하율이 고개 숙여 인사하며 주현을 배웅했다. 지우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잠시나마 돌아온 하율의 눈빛이 주현의 눈앞에 아른 거렸다.


**


주현은 보호경과 보호복, 마스크를 벗고 소독을 끝낸 후에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 할당량을 해내고는 사무실의자에 몸을 던지듯이 앉은 주현은 기지개를 켰다.


‘그 잘 부탁합니다….’


하율의 눈빛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 조금 화가 나있지만, 본성은 선해 보이는 그가 왜 그렇게 된 건지. 그게 궁금했다. 주현은 사무실 컴퓨터로 김하율의 정보를 조회했다.


평범한 청년이었던 그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왔고, 평범하게 학교를 나와 사업을 하고 사랑을 했으며, 아이도 낳아 행복한 삶을 꾸려왔었다. 그런데, 사업이 문제가 생겼고 문제가 해결이 안 되자 알코올에 손을 댔고 그렇게 그의 일상과 그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 ”


주현은 마른세수를 하고는 마저 읽어나갔다.


술 때문에 각종 병을 얻고, 수급자가 된 이후로는 행정복지센터 내 난동과 사람들에게 시비걸기 등 걷잡을 수 없을 만큼의 이력들이 적혀 있었다.


“술 때문이었을 텐데. 술만 끊으면. 변할 수 있었을까.”


“과연. 그럴까?”


그 뒤에서 윤지우가 나타나며 말했다. 소독을 끝내고 안으로 들어온 윤지우는 지친 얼굴이 가득한 지우는 가방을 옆 책상에 올려두었다. 보안경으로 가려져있어서 안 보였던 그녀의 얼굴은 40대 정도로 보였다. 지우는 사무실에 들어와 책상 위에 있는 텀블러 속 물을 들이켰다.


“주사님…. 오셨어요?”


짧은 단발머리에 하얀 피부를 가진 지우는 컵을 내려놓고는 의자에 기대어 주현을 보았다.


“주현아. 그 사람 안 변한다.”


크고 쌍꺼풀 짙은 눈으로 또렷하게 주현을 바라보며 강하게 지우가 말했다.


“그래도.”


주현이 머뭇거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바뀔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한 명이라도 구하자는 마음에서 입직했으니까.


“굳이 사람들에게 마음 주지 마. 너만 힘들다. 어차피 사람은 쉽게 안 바뀌어. 우리는 그냥 우리 할 일을 할 뿐이야.”


지우는 매정하게 말했다.


“그래도. 김하율 씨를 믿어보려고요.”


주현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한번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지. 그게 더 빠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