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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Oct 28. 2022

마음을 드려요

첫사랑, 단어만으로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는 마법의 단어. 진정으로 첫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 감정은 무엇일까. 누군가에게 호감을 처음 갖는 그 순간? 보기만 해도 설레는 그 감정? 아니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지는 걸까. 그런 감정들이 첫사랑이라면,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릴 적에 나에게도 있던 거 같다.


 유난히도 수줍음이 많았던 그때 나는 그 아이의 손짓과 인사에도 부끄러워 눈도 못 마주치고 함께 웃으며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늘 피하기만 했었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첫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 감정을 느꼈던 순간들이었다. 첫사랑, 살아간다면 누군가에게나 언젠간 찾아오는 감정이다. 대부분 어린 시절에 찾아와 스치듯 몽글몽글한 감정을 일깨워주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남자가 여자에게 사탕을 주는 화이트 데이. 아침부터 온 교실에는 아이들이 사탕을 나눠가지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주는 건 놀림거리가 된다는 사실 때문에 아이들은 사탕을 주면서도 “이건 우정 사탕이야”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기 바빴었다. 그런 아이들을 재미있게 보던 나에게도 불쑥 사탕 하나가 나타났었다. 어떤 불필요한 말도 없는 간결한 “가져” 한마디뿐. 그 아이는 놀랍게도 나와 별다른 말을 나눠본 적도 없고 늘 친구들과 장난치기 바빴던 장난기 많은 반 아이 중 하나였다. 짧은 머리칼은 장난기 많았던 아이를 더욱 짓궂게 보이게 했었다. 사탕 하나를 내밀고는 자신의 자리에 돌아간 그 아이를 향해 아이들의 놀림 섞인 목소리에도 그는 평소처럼 웃기는 했지만 특별한 대꾸를 하지 않았었다. 그 후에도 학년이 올라가 반이 달라지기 전까지는 그 아이가 나를 좋아한다는 소문은 반에서는 공공연하게 퍼져있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몽글몽글한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준 그 아이가 시간이 지나고 문득 생각날 때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마음을 전하는 건 언제나 어떤 누구라도 용기가 필요한 법이니깐. 내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받는 것이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고 마음을 숨겨야 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는 어린 시절이라고 생각하니 마냥 어릴 때 사랑이라는 감정을 잘 몰랐던 게 아쉽게 느껴졌다. 상황과 현실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그때뿐, 순수하게 마음만 생각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접전선이 없던 우리는 마주칠 시간조차 없었다. 아주 우연히 마지막에 보았던 그때를 빼면 말이다. 

마지막으로 마주쳤을 때는 내가 엄마에게 업혀 집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우리 집과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학원으로 향하던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인사를 할 만큼 살가운 사이도 말을 섞는 사이도 아니었기에 흔한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지나쳤다. 딱 맞는 교복을 입고 나아가는 아이와 달리 여전히 엄마 등에 업혀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 나는 엄마의 등에 고개를 파묻어 버렸었다.


 모든 것에 거리낌이 없는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마음을 받는 것도, 전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된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상황과 현실에서는 사랑이라는 그 자체의 감정을 느끼기는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순수하게 마음을 가질 수 있던 시절을 그렇게 그리워하는 모양이었다. 


어려운 건 사랑, 어려웠던 건 전하는 마음, 

슬픈 건 전하지 못한 사랑, 후회되는 건 받지 못한 마음.


세상을 견디고 현실을 이겨내야 비로소 내비칠 수 있는 마음. 나에게 마음을 전한다는 건 그런 거다. 나의 마음을 드려요. 내 용기를 보아요. 내가 내민 손을 잡아주세요. 부디 나의 용기에 응답해주세요. 언젠간 나에게 용기가 생긴다면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겠지. 그때의 내가 당신의 용기 또한 모른 척 밀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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