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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Oct 28. 2022

시간의 공백

이상한 일이다. 딱히 할 것은 없지만 부산스럽게 무언가를 잔뜩 하는 하루가 지나고 나면 무엇을 했는지 모를 만큼 빠르게 지나가는 또 다른 하루, 이틀을 보내면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있었다. 그러다 또 열흘, 보름, 어느덧 한 달이 훌쩍 지나가고 있는 달력의 날짜들이 보인다. 매일 비슷비슷한 하루를 보내더라도 나의 하루정돈 알자는 마음에 다이어리는 꼬박꼬박 적기 위해 노력했지만 단조로운 일상에 적을 게 없다 보니 매일같이 쓰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변함없는 일상의 단조로움은 가끔 시간의 오류를 만들어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또는 ‘며칠이었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문득 시간을 되짚어보는 순간들이 있다. 

당시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참 좋았어.’하고 나도 모르게 미소 짓는 일들이 생각이 나곤 한다. 이를테면 차 타고 멀거니 창밖을 내다보다가 가족끼리 여행을 갔을 때 좋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를 때가 있다. 그렇다고 생각이 나는 날들이 꼭 특별한 날만 있는 건 아니었다. 처음 해보았던 게임이 재미있었다든지, 엄마랑 새로 생긴 음식점에 단 둘이 방문하여 맛있는 걸 먹었던 기억이라든지. 그런 소소한 기억들이 일상 속에서 갑자기 떠오른다. 어릴 때는 딱히 그런 기억을 떠올릴 시간이 없던 건지, 추억이 없던 건지 시간이 지날수록 떠오르는 횟수가 잦아지는 것 같다. 살아가는 것이 무료해질 때쯤, 힘들고 지칠 때 드는 행복했던 추억으로 다시 살아가는 힘을 낸다고 한다. 요즘 들어 그만큼 예전 생각이 자주 떠오른다면 지금 내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시기가 아닐까 싶었다.


아무 일 없어, 걱정 마.

난 괜찮아.


습관처럼 아니라고 부정해도 나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내 마음이 힘들다고 말할 때 나에게 힘을 주는 추억을 나는 얼마나 가지고 있는 사람일까? 


 되돌아볼 추억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 순간이 추억이 된다는 것을 그때는 모른다. 그렇다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모든 순간이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는 건 아니었다. 세상에 가장 공평한 것이 있다면 모두에게 똑같이 흘러가는 시간일 것이다. 다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은 여러 상황을 통해 한 사람의 삶을 좌지우지할 만큼 어떻게 시간을 보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누워서 핸드폰만 가지고 놀아도 한 두 시간이 뚝딱 지나갔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훌쩍 지나가버린 시간에 잠자는 시간마저 놓쳐버릴 때도 많았다. 


 시간이 많은 사람일수록 시간을 관리하는 방법을 모른다. 

할 게 없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시간이 많으니깐 나중에 하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보냈던 하루, 이틀이 모여 몇 년이 지났을까? 그때를 돌이켜보니 머릿속에 남는 게 없었다. 분명 웃으면서 즐기고, 봤던 것들조차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삶의 일부를 그렇게 기억도 하지 못하고 잃어버렸다. 아직 내 인생에서 얼마 살지 않았지만 조금 과장해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1/3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비중이었다. 멀리 본다면 그렇게 큰 부분은 아니라고 해도 지금 현재로서는 엄청난 시간 낭비로 느껴졌다. 

 그 뒤로 생각하게 된 한 가지가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몇 년 후에도 기억에 남을만한 일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할 일 없이 보내던 시간에 무엇인가 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누워서 핸드폰만 보던 시간에 책도 읽고 게임을 한다고 놀아주지 않았던 반려견 꽃순이와 놀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꽃순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후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더 많이 놀아줄걸, 이라는 생각이었다. 만약 진작에 되돌아봤을 때 허망한 시간의 공백 대신 기억에 남을 만한 시간을 보내는 걸 택했다면 조금 더 후회가 없지 않았을까.

 누구에게나 똑같이 흘러가는 시간을 조금 더 가치 있게 만드는 건 나의 선택이었다. 많은 추억을 남겼다면 앞으로 힘들 때 힘이 되어주는 행복은 얻은 것이고, 자기 계발에 투자했다면 더 나은 미래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을 것이다. 지금도 흘러가고 있는 시간을 잡을 수 없지만 가치 있는 시간을 보냈다면 내 안에 남아 있다. 시간을 기억해 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더 행복해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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