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텔라 Oct 22. 2022

무기력한 나에게

하루 12시간 이상 휠체어와 자동차 시트에 몸을 맡기는 일은 육체적으로 꽤 고단한 일이다. 병원에서 하루를 보내고 오는 날에는 긴장의 연속으로 신경까지 곤두서 있어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체력이 고갈 상태가 된다. 그런 하루를 보내고 온 다음 날이면 나는 잠에서 쉽사리 깨어나지 못한다. 하루, 이틀 정도는 잠에 취해 약을 먹기 위해 눈을 뜨는 일 말고는 눈이 좀처럼 떠지지 않아 침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잠이 들었던 기간이 지나고 나면 으레 의식처럼 지독한 무기력증이 온다.





 아무 흥미 없는 일상의 시작, 감흥 없는 시간들.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는 그런 날이 어느새 나에게 와있었다. 죽으면 잠만 잔다는데 살아 움직이기도 아까운 시간에 나는 잠을 택했다. 아빠는 온종일 장거리 운전을 하고 나와 함께 의사 선생님들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 똑같이 긴장을 했던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다음날 평소처럼 출근을 하셨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일상으로 돌아온 두 분은 평소처럼 출근을 하셨고 무기력함에 빠진 건 나뿐이었다. 아빠는 힘들 때면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살아있을 때 쉴 틈도 없이 움직이니 죽어서 잠이 든다면 깨우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움직이는 대로 돈이 되고, 시간이 곧 재산이라고 말하는 요즘 시대에 맞게 모두 치열하게 살아가는 세상 속에 오로지 나 혼자만 태평한 듯했다.


 담쟁이넝쿨이 되어 나를 에워싸는 무기력함에 점점 더 몸이 무거워진다. 푸르른 잎사귀가 시들해질 무렵 내 몸에서는 휴식이 필요하다고 아우성을 친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고, 내일까지 자고 싶다면 방해받지 않고 자보는 그런 일상을 무기력함을 핑계 삼아 해보았다. 풀리지 않은 고민으로 가득 차있는 뒤죽박죽인 머릿속도 잠시 안녕. 아무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이런 날은 무기력함이 주는 선물이 아닌가 싶었다. 

휴식이 필요한 이에게 소리 없이 다가와 선물 같은 휴식을 주는 무기력함이 나에게는 와서 활력을 찾아주려 한다. 나태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때 동생에게 연락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거 현실 도피성 무기력함이야.
아무것도 하기 싫지? 나도 그럴 때 무기력하게 잠만 자려고 하더라.”

나는 미처 몰랐다. 내가 현실을 도피할 만큼 힘들었던가? 아무것도 안 하는데 내가 무슨.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던 찰나 내가 고민하던 것들과 외면했던 현실이 뒤섞여 물밀듯이 몰아쳤다. 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지. 참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싫어 회피했던 현실 대신 정작 마주한 것은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는 무기력증 뒤에 숨어 잠드는 내가 있었다. 


 무엇이라도 해봐, 그게 뭐가 되었든 하는 게 중요해.


나에게는 계기가 필요했다. 나 혼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변하지 않는 삶에서 내가 움직일 수밖에 없는 그런 계기. 무기력증은 노크하듯 나를 툭툭툭 건드려 틈을 만들어 주었고, 그 안에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마음이 꿈틀거렸다.




언젠가부터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무의식 중에 피했었다. 나는 실패가 두려워 누군가의 의해 확인되고 확신이 있는 것만 정해진 틀 안에서 해왔었다. 나에게 도전이라는 것 자체가 모험이니깐. 하지만 무기력함 앞에서는 도전도 실패도 똑같이 귀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 하면 되는 아무것도 아닌 그런 존재가 되어 있었다. 무기력한 일상에서 벗어나야 하는 지금은 정해진 ‘어떤 것’이 아닌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실패와 성공이라는 결과가 아닌 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으니 더 이상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다. 때로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순간이 있었다는 걸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이전 07화 부러운 삶을 살아간다는 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