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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Oct 22. 2022

마음의 표현

살아가다 보면 생각처럼 마음을 쉽게 표현하기가 어려워진다. 부모와 자식, 연인, 친구든 가까운 관계일수록 표현하기보단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이 우리의 마음을 더욱 가둬 놓는 역할을 한다.


감정 표현이 서투른 나 역시 마음을 표현하는 건 늘 어렵다. 살가운 표현은 둘째치고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친구에게 조차 안부를 묻는 전화를 거는 것도 낯간지러워 잘하지 않게 된다. SNS를 통해 언제나 행복하게 꾸며진 사진과 우스갯소리로 남기는 짧은 글들이 ‘나는 잘 지내고 있다’, ‘너는 어때?’ 정도가 되는 세상이 되어버렸고 나는 오히려 그게 마음이 편했다. 먼저 다가가지도 너무 멀어지지도 않는 딱 그 정도의 거리. 상처받기 싫은 내가 정한 타인에게 두는 나만의 거리인 셈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스치듯 지나가는 타인과 인연들이 쌓이는 속도와 비례하게 내가 마음에 쌓아놓는 담장이 높아지고 있었다. 어느새 올려다본 담장은 너무 높아져 정작 쌓아 올린 본인조차 넘지 못하게 되었다. 


 아팠던 기억이 많은 나는 유쾌한 감정보다는 그렇지 못한 감정들을 더 많이 느껴왔다. 그래서인지 나는 타인에 의한 불필요한 감정 소모가 싫었다. 불필요한 감정을 제외할수록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폭과 함께 마음이 줄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음을 전하고 싶어도 전해지지 않는, 혹은 새삼스레 마음을 전하기가 무서워 포기하고 마는 날들의 반복이 어느덧 나를 표현에 인색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온전히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적당한 거리, 적당한 마음의 표현은 타인으로부터 나를 완벽하게 방어해주는 보호막이 되어주었다. 예컨대 날마다 뿌옇게 하늘을 뒤덮고 기관지 건강을 위협하는 미세먼지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미세먼지 차단율이 좋은 KF지수가 높은 KF94 이상의 마스크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KF지수가 높을수록 호흡하기가 쉽지 않아 호흡곤란과 두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유해물질을 필터 해주는 과정에서 산소의 원활한 공급까지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쌓아 올린 담장도 마찬가지였다. 완벽하게 타인으로부터 나를 지켜주지만 그만큼 나를 완벽하게 고립시켰다. 고립되어 황폐해진 마음은 가루가 되어 작은 바람에도 휘날렸고 다가오는 새하얀 마음을 탁하게 만들며 멀어졌다. 날카로운 가루 알갱이는 다가오는 마음을 밀어내고 바람을 타고 도망가며 수많은 마음에 쓰라린 상처를 남겼다. 내가 쌓아 올린 마음의 벽은 나와 타인을 모두 아프게 만들었다.


중국어를 배울 무렵이었다. 흰 종이와 연필 한 자루를 중국어 선생님이 내밀었다. 지금까지 배웠던 단어를 응용하여 편지를 써보자고 하셨는데 그 당시 내가 배웠던 거라고는 고작 초급 단계의 인사말과 감정을 표현하는 동사 몇 가지뿐이었다. 어버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부모님에게 보내는 편지가 되었다. 흔한 쪽지도 써본 적 없던 내가 막상 편지를 쓰려니 하얀 편지지가 좀처럼 채워지지 않았다. 그 순간 손보다 약간 컸던 하얀 편지지는 세상에서 가장 넓은 도화지처럼 느껴졌다. 배운 중국어 단어를 하나씩 머릿속에 나열해가며 편지지에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하얀 종이에는 검은색 글자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 배운 중국어 단어를 응용해야 했기에 문장도 내용도 흡사 어린아이가 썼을 법한 편지였다. 내용도 간결하고 짧았다. 중국어를 한글로 번역한 글자를 함께 적다 보니 넓던 편지지 공간이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처음 부모님에게 쓰는 편지는 이미 편지보다는 특별한 것 없는 쪽지에 가까웠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건강하세요.’


일상을 말하는 문구를 끝으로 마지막에 남긴 문장이었다. 배웠던 가장 기초적이지만 어버이날 부모님에게 쓰기 가장 적절했던 말이었다. 어버이날 식탁에 놓인 작은 선물과 편지를 확인한 그날 밤, 아빠는 웃으며 이런 말을 하셨다.


“이렇게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듣네.”


그때 나는 미처 몰랐던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부모님에게조차 한 번도 사랑한다고 말한 적도 써본 적도 없었다는 걸. 작은 편지지에 써져있는 글자만으로도 웃음을 짓을 수 있는 단어 한 마디를 말하지 못했다는 것에 새삼 놀라웠다. 


 한글을 막 배우기 시작할 때 많은 글자와 단어들을 배우게 된다. 그중 ‘사랑’이란 단어 또한 많이 듣고, 많이 쓰고 말하는 과정을 거치며 온전한 내 것이 되었지만 정작 지금의 나는 쓰지 않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마음을 표현하는 단어에 조차 인색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찰나의 감정들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제와 되돌아보면 그간 꽁꽁 숨겨놓은 나의 마음과 전하지 않았던 감정들이 아깝고 아쉬웠다. 보이지 않는 마음이 표현하지 않아도 전해질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은 마음을 전할 용기가 없는 스스로가 갖는 희망사항이었다.  순간이 지난다면 필요하지 않은 감정들. 시간이 지나면 ‘왜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남기는 건 후회뿐. 내가 애써 표현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은 나의 흘러가는 감정들이 상대를 하여금 웃음 짓게 만드는 감정이 아닌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마음이다. 


사람은 저마다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은 누구나 용기가 필요하다. 쉽게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다만 보는 사람에게 쉽게 보일뿐.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에게 마음을 건네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었다. 나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다면 먼저 나부터 용기를 내야 하는 게 순서에 맞았다. 짧은 순간이 지나고 후회가 남지 않도록 이제라도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아까운 감정들이 덧없이 갈 길을 잃기 전 마음의 소리를 밖으로 꺼내는 연습을 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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