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열등감에 선택한 잘못된 길
대학교 3학년정도 되면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현실적 고민이 생긴다. 바로 취업 고민이다. 학교 생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 취업이라는 현실은 그 당시 내게도 정말 무겁게 다가왔다. 디자인이라는 전공을 택했지만 진짜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해야 하는지 여전히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 자신만의 길을 닦아나가는 모습을 보는 동안, 나는 그런 친구들을 보며 조급한 마음만 더 키웠다.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난 여러 취업 사이트를 방황하며 채용 공고들을 뒤적거렸다. 채용 공고를 찾아 끝없이 내려가는 스크롤만큼이나 내 자존감도 한 없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당시 나는 지방대라는 배경 때문에 괜한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SNS를 열면 해외로 어학연수 간 친구들의 모습은 넘쳐났고, 그럴수록 나의 못난 열등감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 못난 구석은 나의 자존감마저 더 하락시키게 만들었다.
지나서 생각해 보면 내가 그토록 열등감을 느끼고 자존감이 하락했던 이유는 내게 맞지 않는 자리를 찾아 헤맸기 때문이었다. 당시 난 대기업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을 가진 기업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 이름이라도 익숙한 기업에 다닌다고 하면 내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나름 성실하게 보낸 나의 대학생활이 마치 증명이라도 될 것 같았다. 결국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첫 직장을 선택했던 기준은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보다 '어떤 회사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나를 인정할까'에 초점이 맞춰있었다.
취업 사이트를 수없이 들락거리며 이름 꽤나 알려진 회사의 공고만 살피던 와중 우연히 당시 내가 살고 있던 지역에 몇 번 지나친 적 있는 건축 설계 회사의 채용 공고가 내 시선을 끌었다. 그때 난 건축 설계 분야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인터넷으로 그 회사를 검색해 보니 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중견 기업이었고, 건축 전공자들 사이에선 꿈의 직장으로 꼽히고 있었다. 생소한 분야였지만 나름 네임 벨류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 관심을 끌었다. 직무는 '건축 편집 디자인'이라는 낯선 업무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분야여도, 내가 알지 못하는 직무여도, 어쨌든 네임벨류가 좀 있는 회사라는 것 하나가 나의 구미를 당겼다. 되든 안 되는 일단 넣고 보자 생각했다.
그런데 큰 문제가 있었다. 공고 마감까지 겨우 하루 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미리 준비해 둔 포트폴리오도, 자기소개서조차 없었다. 심지어 이력서에 필요한 증명사진조차 찍어둔 게 없었다. 하지만 왠지 모를 절박함이 나를 사로잡았고, 그저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급하게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학교에서 과제로 작업했던 디자인물을 짜깁기해 포트폴리오를 꾸몄다. 그리고 증명사진은 티셔츠 입고 찍었던 운전면허 용 증명사진에 구글링 하여 이름 모를 정장 입은 남성의 몸을 따서 합성시켰다. 그렇게 급조한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제출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준비 하나 없이 그저 철없는 행동이었지만 나름 간절한 도전이기도 했던 거 같다.
그렇게 제출한 허술한 이력서였지만, 이게 웬걸? 며칠 후 기적처럼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이게 된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면접 때 추가 포트폴리오를 다시 준비해 가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이어진 1차 면접과 2차 면접. 그리고 최종 합격! 합격이란다. 어안이 벙벙한 기쁨의 순간도 잠시, 무작정 찔러본 중견 기업에 합격은 했지만 그때 난 아직 대학과정이 2학기나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남은 학교 생활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직장을 다닌다는 결정이 나중에는 후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럼에도 내가 만든 기회, 일단 한 번 부딪혀보자 생각했다. 안되면 다시 학교로 돌아오면 된다고도 생각했다. 결국 난 학교에 취업계를 내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내 생애 마지막 MT도 포기하고 대학 캠퍼스가 푸릇푸릇했던 봄날, 나는 설렘과 불안을 안고 첫 출근을 했다.
나의 첫 직장은 일반 사람들은 생소할 수 있어도 업계에서는 꽤나 유명한 중견 기업이었다. 처음에는 그 자체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그저 TV 어디서 봤을 법한 그런 빌딩에 출근해서 사무실에 앉아 남들처럼 직장인 흉내를 내는 것만으로도 열등감에 자존감이 한없이 하락했던 나날들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내가 멀쩡해 보이는 그랄 싸한 중견 기업에서 내 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무언가를 해낸 기분이었다. 부끄럽게도 괜히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아직 학교에 있던 대학 동기들에게 우쭐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곧 차갑게 나를 맞이했다. 내가 맡은 업무는 설계 자료나 도면집, 건축 설명서 등을 편집 디자인하는 일이었다. 업무를 할수록 이 직무가 나와 맞지 않다는 사실을 깊이 알 수 있었다. 일에 열정을 느끼지 못했고, 반복된 현상 설계 프로젝트 업무로 인한 수많은 야근과 밤을 지새우는 철야에 지쳐갔다. 일 자체가 힘든 것은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시간이 점차 흘러 회사 생활도 익숙해졌지만 무엇보다 업무에 대한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매일이 고통스러웠다.
'직장 생활이 다 그렇지', '모두가 다 이렇게 일하고 사는 거지' 속으로 되뇌며 하루하루를 삼켰다. 회사 선배들과의 관계가 나쁘거나 하진 않았다. 하지만 진정으로 마음을 열지 못한 건 나였다. 언제나 딱딱하게 사람들을 대했고 일정한 거리를 두며 지냈다. 회사는 내가 구차하게 원했던 네임 벨류를 주었지만, 내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주진 못했다. 사실 그걸 회사가 찾아주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매일 아침 회사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웠고, 철야하고 아침에 퇴근해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몸은 피곤해도 자꾸 드는 잡생각을 멈추진 못했다.
학교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나름 잘한 게 하나 있다면 신입 1년 차 때 비록 학교에는 취업계를 냈지만 졸업장은 있어야 할 것 같아 아득바득 졸업 전시회까지 출품해 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이다. 밤 11시까지 야근하고 졸업작품 작업하겠다고 새벽까지 혼자 사무실에 남았던 적도 많았다. 혹시나 1년 차 사원이 자기 밥그릇만 챙긴다는 쓴소리라도 나올까 눈치껏 내 시간을 만들었다. 다행히 팀원분들과 학교 동기들의 도움으로 겨우 대학 졸업장을 얻을 수 있었고, 회사에서 얻지 못한 보람을 거기서 찾기도 했다.
그렇게 3년 차가 되었을 때, 비로소 이곳은 내게 맞지 않는 곳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었다. 나의 첫 직장 생활을 돌이켜보면 정말 나로 살아보지 못했던 거 같다. 내가 없이 그저 회사가 시키는 일, 프로젝트 일정에 나를 맞춰 살기 바빴다. 의미 없이 지나가는 나날들, 반복된 서류 작업과 내 몸 갈아 넣어 만든 결과물도 내 것 같지 않았다. 그것은 순전히 나의 잘못이었다.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일을 찾지 않은 채, 타인의 시선을 좇으며 직장을 선택한 어리숙함의 결과였다. 결국 열정 가득했어야 할 20대 젊은 시간만 아깝게 소진시켰다. 나의 첫 직장과 당시 내 맡았던 업무를 폄하할 생각은 절대 없다. 그저 내가 어리숙하게 내린 내 길이 나의 길이 아니었을 뿐이었다.
만족은 타인의 평가와 세상의 기준이 아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다. 어떤 네임 벨류나 주변의 기대가 아닌, 나 스스로 진심과 열정을 쏟을 수 있는 길을 선택해야지만 의미 있는 삶을 만든다. 이 소중한 교훈을 얻는 데, 정확히 만 2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때 다시 난 나에게 물었다. '나는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정말 무엇을 좋아하는가?'. 소중한 20대 중반의 시간을 태우며 겪은 시행착오와 미숙함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 더욱 간절하게 내게 물었다.
그리고 난,
내가 입사했던 그 계절, 푸릇푸릇한 봄날에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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