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인생을 바꾼 책 한 권
적성에 맞지 않았던 첫 직장을 퇴사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내 머릿속은 수많은 생각으로 뒤엉켰다. 정말 퇴사를 해도 될까하는 부담감과 퇴사가 정말 답일까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일에 열정을 쏟고 싶지 않았다는 것. 만 2년이란 첫 직장 생활동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얻은 교훈 덕분에 생각은 점차 단순해져갔다.
'그래 이제 정말 내가 좋아 하는 일을 찾자!'
그렇게 난 퇴사를 준비하며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그래도 배운 게 디자인 계열이라 관련 된 업에서 찾기로 했다. 짧은 직장 생활이었고, 경험이 많지 않았던 나는 대학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내가 좋아했던 게 무엇인지 되짚었다. 나는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산업디자인 학과로 입학했다. 제품 디자인이나 인테리어 디자인처럼 실체화된 디자인을 배우는 학과였다. 하지만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했을 때, 학과는 시각디자인학과와 통폐합이 되어있었다. 당시 지방대에서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때는 황당하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오히려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학과가 통폐합되면서 나는 산업디자인 관련 수업뿐만 아니라 시각디자인 수업도 수강할 수 있었고, 나의 대학생활을 더 다채롭게 만들어주었다.
당시 난 산업디자인 계열의 제품 디자인, 인테리어 디자인, 3D 그래픽스 뿐아니라 시각디자인 계열의 광고 커뮤니케이션, 타이포그래피, 모션 그래픽, UI/UX 디자인까지 다양한 전공 수업을 수강하며 두루 접했다. 과도한 전공 수업 욕심에 말도 안되는 과제량을 소화하기 벅찼지만, 두루뭉실했던 디자인 실무에 대해서 보다 면밀하게 알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어떤 날은 공방에서 밤새 나무를 깎아 가구를 만들기도 했고, 또 어떤날은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니며 직접 영상을 편집해 뮤직비디오를 완성하기도 했다. 그렇게 난 산업디자인부터 시각디자인까지 다양한 간접적인 경험을 쌓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의 폭을 넓혔다.
하지만 뭘 단순히 많이 해봤다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결정장애가 오듯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상황이었다. '단순히 디자인 업에서 특정 계열을 꼽아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맞을까?' 생각했다. 솔직히 학교다니면서 해본 경험들은 그저 장에 손가락 담궈 찍어 먹어본 수준이지, 내가 특정 업을 선택할 만큼 풍부한 경험이 되진 못했다. 난 다시 과거를 되짚어보기로 했다.
대학교 생활에서 가장 특별했던 기억은 창업 동아리 활동이었다. 솔직히 창업에 대해서는 진지한 관심은 없었다. 그저 친했던 학과 선배의 부탁에 동아리 회장 자리를 덜컥 맡아버린 것이 계기였다. 그런데 동아리 회장직을 맡은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교내 창업지원센터에서 창업 경진대회에 참여하라고 통보를 받았다. 당시에는 각 대학교마다 창업지원센터라는 시설들이 있어 창업 동아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교내 사업들이 많았다. 당황스러웠지만 이미 무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급하게 주변 몇몇 동기와 후배들을 모아 팀을 꾸렸다.
2박 3일간 이뤄지는 창업 경진 대회는 지방 자치도내에 있는 대학에서 대표 동아리들이 참가해 자신들의 창업 아이템을 프리젠테이션하고 순위를 가리는 말 그래도 대회였다. 당연히 급조된 우린 준비된 아이템도 없었고, 급하게 학교 과제로 낸 아이디어로 승부를 보기로 했다. 창업 경진 대회는 학생들이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멘토들을 섭외해 컨펌을 해줬다. 우린 변리사부터 회계사, 경영 컨설턴트와 실제 창업자까지 다양한 분야의 멘토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당시 멘토들은 우리가 어색하게 내민 아이디어를 보고 당연한 몇 가지의 질문들을 던졌다.
'이 제품의 타겟은 누구인가요?', '우리의 경쟁사는 누구고, 시장의 규모는 어떻게 되나요?', '우리 제품만의 차별성은 무엇인가요?'와 같은 질문들이었다. 당시 우린 기껏 디자인학과 대학교 2학년생, 그런 기본적인 질문들 앞에서 제대로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때 난 처음으로 '기획'이란 것을 접하게 되었다. 대학생들의 창업 경진 대회이니만큼 사실 현실적인 사업 아이템은 전무했다. 그럼에도 학생들이 어떻게 사업성을 보고 아이디어를 내었는지, 그리고 어떤 사업 기획으로 이 시장을 해석했는지를 가늠하는 대회였다. 그저 예쁜 디자인과 그럴싸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다 될거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뒤통수를 때리는 순간이었다.
그때 2박 3일동안 경영 컨설턴트 멘토에게는 마케팅의 기본 분석 방법인 4P분석과 STP분석을 배웠고, 변리사 멘토에게는 우리 제품이 다른 사람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는지 알 수 있도록 키프리스를 검색을 배웠다. 또 회계사 멘토에게는 우리 제품의 시장 현황을 측정하고 창업을 하는데 들어갈 비용 책정을 하는 방법을 배웠다. 짧은 시간동안 멘토들의 가르침으로 어설펐던 우리 프리젠테이션의 완성도는 높아져갔고, 우린 처음 참여한 창업 경진 대회에서 당당히 대상을 거머쥐었다.
이후 나는 동아리 규모를 더욱 키워 창업 경진 대회란 경진 대회는 모두 참가해 상을 쓸어담았다. 이 때의 경험은 나의 대학 생활의 방향을 크게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동아리 활동 뿐만아니라 학교 수업에서도 디자인 프로세스의 앞단계인 기획에 더 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단순한 디자인 과제에도 나는 내가 디자인 하는 제품의 시장이나, 내가 타겟으로 하는 고객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결과를 도출해 나름의 논리를 만들어 설득력을 더하는 과정에 몰두했다. 그래, '기획'이었다. 나는 디자인을 할 때도 전반적인 프로세스 앞단의 디자인 기획을 하는 것을 좋아했었다. 내 나름의 인사이트를 도출하여 방향성을 정립하고 디자인 결과물에 설득을 더하는 과정이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기획만 하는' 직업이 존재하는가였다. 막연히 기획이 좋다고 회사에 입사해 '저 기획만 할래요'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첫 직장에서 난 대학교때 그토록 좋아했던 기획이란 업무와는 거리가 먼 직무를 맡았다. 설계부서에 내려오는 막대한 양의 도면 데이터를 받아 도면 라인을 일일히 정리하고, 설계 설명서를 이해하기 쉽도록 그림(삽도)을 그려주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시장을 조사하고, 고객을 탐구하여 얻은 자료를 분석하는 '기획' 업무는 경험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렇게 과거를 되짚으며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를 찾았지만 당장 기획이 좋다고 해서 어떤 길을 개척할 수 있을지는 막연하기만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고민하던 중, 내 인생을 바꿀 책 한 권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자본론>. 일본 유명 츠타야 서점을 운영하는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CCC)의 설립자 마스다 무네아키의 책. 책 제목은 어렵게 느껴지지만 책 안의 내용은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들을 전해주었다. 특히 책의 서두는 내 마음을 강력하게 사로잡았다. 마스다는 이제 디자인이 단순한 미적 요소가 아니라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가치를 부여하는 기획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디자이너, 즉 기획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지적 자본의 핵심이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의 주장은 마치 내가 그때 가진 고민을 정확히 이해하고 위로하는 듯했다. '그래, 네가 생각하는 방향이 맞아. 그 길을 가도 돼!'라고 말하는 듯 했다. 난 <지적자본론>의 서두를 수십번 읽었다. 읽을수록 책 속의 문장들이 계속해서 나를 다독였다.
당시 난 첫 직장이었던 건축 설계 회사에서 편집 디자인 업무를 하며 느꼈던 위기감이 있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업무, 디자인 툴만 다루는 기술로는 언제든 나란 존재가 대체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었다. 예전에는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션, 인디자인, 에프터이펙 같은 디자인 툴을 잘 다루는 것 만으로도 쉽게 취업이 가능했다. 나름이 기술이라 인정받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 수록 디자인 툴의 접근성은 낮아지고 굳이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도 쉽게 툴을 다루기 시작했다. 변별력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툴을 다루는 디자이너는 언제든 교체 가능한 부품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지적자본론>이 강조한 '기획력'은 나의 마음에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기획과 관련된 직업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연히 브랜드 컬설팅 회사 '플러스엑스(Plus X)'의 인터뷰 기사를 읽게 되었다. 당시 그 기사는 방탄소년단의 리브랜딩 프로젝트에 대한 기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 기사에서 소개되는 브랜딩 과정들을 읽으며 완전히 매료되었다. 브랜드의 특성과 시장의 상황, 고객의 니즈를 분석해 브랜드의 컨셉을 도출해내는 과정을 보고 내가 그토록 원했던 기획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바로 나는 플러스엑스 홈페이지에 방문해 그들이 작업한 포트폴리오를 하나 둘씩 뜯어봤다. 알면 알수록 브랜딩이라는 작업 자체가 8할은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가슴을 더 두근거리게 했던 단어. 바로 BX(Brand Experience)'를 마주하게 되었다.
BX는 쉽게 브랜드를 경험하는 고객들의 접점을 설계하는 일이었다. 고객이 브랜드를 접하는 접점은 무수히 많다. 브랜드 네임부터 로고, 슬로건과 브랜드스토리부터 시작해 브랜드가 운영하는 온오프라인 매장에서의 경험과 광고 커뮤니케이션까지 모든 접점을 아우르는 개념처럼 느껴졌다. 마치 군 복학 후 학과과 통합되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듯, BX라는 직무를 하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거란 막연한 기대감이 들었다. 브랜딩이라는 것은 결국 고객에게 브랜드의 정체성을 인식시키는 과정이었고, 브랜드 경험은 그런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다양한 영역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대학 시절 산업디자인부터 시각디자인까지 넓은 영역을 두루 다뤄보았던 내겐 탁월한 직무 같았다. 고객이 브랜드를 경험하는 모든 접점을 설계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 생각했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보다는 간절하게 이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그날부터 난 브랜딩에 대한 다양한 책과 기사를 탐독하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가까웠을 이 새로운 세계는 알면 알수록 나를 설레게 했다. 왜 진작 이 길을 찾지 못했는지 아쉬움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라도 분명한 나의 방향을 찾은 것 같다는 마음에 감사했다.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걸 찾는 과정이었다. 좋아하지도 않는 일에, 열정을 다하지도 못할 일에 내 인생의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넘어 결국 깊은 후회로 되돌아오는 시간마저 뺏긴다. 만약 누군가 내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말한다면, 먼 곳에서 찾지말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짚으며 찾는 것을 추천하겠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한 의심이 든다면, 내가 좋아하는 일에서 성공한 사람의 조언을 찾아보라 말하고 싶다.
결국 나의 미래를 위해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한 여정의 끝은 나의 과거를 되짚는 길이었다. 이제 정답을 찾은 난 사직서와 함께 새로운 도전을 개척해나갈 준비를했다. 하지만 그 신나고 부푼 마음도 잠시, 나의 발목을 잡는 게 하나 있었다. 바로 다시 피어오르는 내 열등감이었다.
©Ope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