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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 Nov 28. 2023

나도 도전하고 시작하고 싶은데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시작하기에 대하여

게으른 완벽주의자에 대한 설명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많이 나오는 말들은 이렇다. 

쓸데없는 생각이 많다. 
최후의 순간까지 할 일을 미룬다.
사서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늘 시간에 쫓긴다.
새로운 일이 조금 무섭다. 

(GQ 매거진, 잘 하고 싶어서 미루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5가지 특징) 


퇴사를 하면 신나게 하고 싶은 일들을 벌리며 살 줄 알았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이랄까. 퇴사하면 평온하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생활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다. 퇴사 후, 대략 3개월간 칩거 생활을 하고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니까 다 겁이 났다. 꾸준히 해보고 싶었던 독립출판물을 만드는 일도, 재즈 피아노를 배우는 것도, 온라인상에서 알게 된 사람들을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일도,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도 어려웠다. 손으로 문장을 끄적거리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내 눈에 예쁜 메모지나 엽서를 모으기도 하고 마스킹테이프를 마구 사들였던 때도 있었던 것을 생각해서 문구를 만들어서 파는 일을 해볼까 싶어서 유튜브, 블로그 여기저기 문구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뒤적거렸다. 거기서 만나는 문구 사장님들은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캐릭터나 색이 뚜렷한 사람들이었다. 나처럼 무난하고 평범하고 눈에 안 띄는 것들을 만드는 사장은 찾기 어려웠다. 거기서부터 나의 생각은 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처럼 지속된다. 이 일을 하려면 이런 것도 할 줄 알아야 하고 저런 것도 알아야 하고, 그에 비해 나는 그림도 못 그리고 센스도 없고, 저런 부분은 관심이 없는데 어쩌지.. 그럼 무난한 문구를 만드는 브랜드를 찾고 디깅해보자고 방향성을 바꾸어 리서치를 했다. 나의 문구 사장 꿈꾸기는 리서치만 종류별로 해보다가 끝이 났다. 이때의 문구 탐방기는 흐르고 흘러 엽서북 만들기까지 이어졌다. 

문구 사장으로의 미래가 희미해질 무렵 활동하고 있는 커뮤니티에서 커뮤니티 소식을 전하는 잡지와 비슷한 어떤 것을 만들다고 했고, 에디터를 구한다는 소식에 자원했다. 함께 에디터를 자원한 사람들과 여러 가지 기획 회의와 행사들을 접하면서 ‘인터뷰’에 매력을 많이 느끼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주로 PPT로 작성해오던 보고서는 ‘why’와 ‘what’이 이미 정해진 경우가 많았다. ‘이런 걸 해야해.’라는 숙제가 떨어지면 ‘how’에 대한 것을 작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주어진 목적을 위해 일하는 것과 목적을 스스로 찾아내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점을 찍다 선을 그리다 길이 된다>


회사에서 정해진 방향, 정해진 기간이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해낼까를 고민하면서 해 내는 일은 많이 했지만, 이 일을 ‘왜’ 해야 하고,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지. 정말 하고 싶은 일인지.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투자해야 하는지, 내가 갖고 있는 자원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것들을 내가 결정해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가보지 않은 길이라 아는 것도 없었지만 그 길은 위험한 것만 가득 차 보였고 희망이나 미래는 전혀 보이지 않는 길이었다. 스스로가 기획력도 있고 실천력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내가 잘 아는 분야, 내가 이미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분야 그리고 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안전한 펜스가 있는 망해도 회사에서 어느 정도 커버해 줄 수 있는 상황에서만 가능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안전한 그곳에서 뛰어놀아봤자 거기가 거기다. 밖에서 무언가 발을 떼어보려니 바들바들 떨게 되고 걱정과 무서움과 두려움만 내 곁의 친구들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었다. 


이럴 때 계속 미루던 나를 멱살잡이를 해서 엽서북 만들기 클래스에 밀어 넣었다. 클래스를 신청한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클래스를 완강하면 내 손에 엽서북이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엽서북 기획뿐 아니라 사진을 편집하고 표지를 만들고 인쇄소에 보내는 파일을 정리해서 실물을 받아보는 경험은 다음에 다른 것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불러주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클라우드 펀딩으로 나의 사진을 누군가에게 가 닿게 할 수 있다는 현실 가능성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꾸준히 아침 모닝페이지를 쓰면서 건져낸 나의 문장이다. 이 문장을 지지대로 삼아 기회가 생기면 손을 들어보았다. 해보겠다고 손을 들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보고, 타인에게 무언가 같이해보자며 손을 내밀어보고, 누군가가 내민 손을 잡아보기도 했다. 그렇게 밑미의 ‘나도 나를 잘 몰라’ 파티가 진행되는 서울역 RTO 공간에서 7개월간 작성한 문장일기와 엽서북을 전시하게 되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일기인데 정말 읽어도 괜찮아요?”라고 물었고, “그럼요, 편하게 마음껏 보세요.”라고 답했다. 이미 리추얼 메이트들은 나의 문장일기를 다 읽어보았기에 누군가가 나의 글을 읽는 것에 대한 걱정이나 부담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게 나의 것을 내어놓았을 때 사진을 찍어가도 되는지, 좋은 문장을 만나고 간다는 인사와 글이 좋다는 사람들이 건네는 말들은 용기 내어 시작하길 잘했다는 칭찬 같았다. 비록 떨어졌지만 전시를 함께 참여하며 각자의 글을 들고 나온 친구들과 함께 독립출판 페어인 퍼블리셔스에 급히 팀을 조직해서 신청서도 제출했었다. 가만히 겁만 내고 있었다면 경험해보지 못했을 일들이 두려움을 보지 않겠다 눈을 감고 움직이고 발을 떼어 벌어진 일들이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 모임은 4개월 차를 향해가고 있고, 그동안 써 내려간 글이 11편이 되었다. 


갑자기 그냥 시작은 어렵다. 어렵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꾸준히 모닝페이지를 쓰며 알아차린 나의 욕구 중 하나는 글 쓰는 것을 어떻게든 지속하고 싶고 사람들 앞에 내어놓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가서 닿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쓴 글이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막연히 하고 싶은 것이 모닝페이지에 조금씩 글로 쓰여지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과 아이디어들이 밖으로 나오다보니, 꾸준히 쌓아놓았던 문장으로 시작하는 일기를 썼던 리추얼의 결과로 좋은 기회가 왔을 때 내밀어보기라도 할 수 있었던 거였다. 얼마나 준비가 되어야 하고 퀄리티가 좋아야 하며, 어떤 작가의 글에 비하면 나는 너무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 등등을 따지다 보면 눈앞에 다가온 기회가 물에 씻은 솜사탕처럼 사라져 버릴 거다. (물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도 맞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문장에 기대어 최근 독립서점에서 일하는 사람이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묻지도 않았는데 일하고 싶다고 먼저 이야기를 건넸고 월에 3-4일씩 일하게 되었다. 꽤 오랫동안 서점에서 일하고 싶어 하던 나의 바람 중 하나가 또 이렇게 이루어졌다. 


생각을 멈추고 무어라도 하자. 하지 않아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거다. 


[오늘의 응원]

하고 싶은 일을 그냥 막 써본다. 스스로가 그냥 시작하기 어렵다면 가르쳐줄 선생님, 같이 할 동료를 찾아보자. 요즘 널린 게 커뮤니티 모임이다. 글쓰기, 영화 보기, 책 읽기, 와인 공부, 음악, 가사, 전시 등등 어디든 나 자신을 그 안에 집어넣어 보자. 그곳에서의 경험과 재미가 다음 스텝으로 나를 자연스레 끌어줄 거다. 생각을 많이 하지 말자. 당신은 지금 잘하는 단계가 아니라 시작.하는 단계다. 이제 벽을 잡고 한 걸음 떼는 걸음마 단계이니 시작부터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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