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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 Nov 21. 2023

오늘도 배려하다가 끝이 났네, 나는 누가 배려해주지

남들 말고 나부터 알아주자

일을 할 때 늘 염두에 두는 것이 있다. 상대가 이해하기 쉽게, 알아듣기 쉽게, 조금이나마 편하게 일할 수 있게 만들자. 회의를 준비할 때 참여자들이 회의 안건을 알기 쉽게 요약 정리해서 사전에 공유하거나 자주 먼 거리에서 회의를 참여하러 오시는 분이 있다면 한두 번 정도는 외부로 나가서 중간에서 만나기도 하고, 메일 하나 쓸 때에도 혹시나 상대가 오해할 여지가 있는 부분이나 잘못된 정보가 있지는 않을까 여러 번 읽어보고 확인하고 메일을 보낸다. 전화통화할 때에도 가능한 계속 들어준다. 초점과 중심은 상대에게 있다. 물론 업무의 유연성이나 향후 업무의 원활함을 위한 자연스러운 태도이자 자원 만들기가 될 수도 있지만, 늘 그런 식의 일을 해오다 보니 그냥 삶에서도 나보다 다른 사람 중심으로 생각했다. 약속을 잡을 때는 네가 먹고 싶은 거, 네가 편한 장소, 네가 좋아하는 걸 하러 가자. 그러다 보니 저 사람이 좋아하는 게 뭐였지를 먼저 생각하고, 내가 조금 불편해도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방법을 찾고 행동하는 게 당연해졌다. 작은 배려들로 인해 우선순위에서 나 자신을 아래로 밀어내렸고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고, 알아주고, 격려하면서 나에 대한 배려는 없이 살다 보니 나 스스로가 흐릿해져 갔다. 그마저도 대가를 치르기 전까지는 알아채지 못했다.


이직하고 4-5개월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직하자마자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일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졌었다. 아니, 일의 콘텐츠적인 부분은 알지만 이전 조직에서 참여자로만 있었던 프로젝트들을 기획하고 진행해야 하는 역할을 해야 하니 공부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뿐 아니라 다음 해에 있을 프로그램 공모 준비도 동시에 해야 했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함께 일했던 직장 후배가 “내년에는 밖에서 점심을 먹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 것과 “작년은 너무 바빴어서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라고 했던 것. 나도 어떻게 일했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때도 나보다 일을 중요시했다는 것이었고 나를 소중이 하지 못한 대가를 치렀다는 것이다. 


나는 기관지가 썩 건강한 편은 아니다. 감기가 걸리면 목부터 아파오는 편이라 그날도 감기가 오는가 보다 했었다. 한쪽 귀가 먹먹한 느낌이라 감기약을 먹고 잠을 많이 자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이틀정도를 약과 함께 생활했는데 3일째 되는 날 이건 아닌 것 같았다. 무슨 감기가 귀만 먹먹하고 다른 증상이 없지? 하면서 병원을 갔는데 돌발성 난청 진단을 받았다. 원인은 스트레스. 일단 약을 먹으면서 진행경과를 보고 정 안되면 귀에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했었다. 그리고 돌발성 난청의 대부분은 앓고 나면 청력이 이전처럼 잘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에 매일 인터넷에서 돌발성 난청 치료기를 하루종일 검색하면서 두려움과 함께 쉬어보려 노력했다. 감사하게도 약물치료가 효과가 있었고 대략 일주일정도의 휴가를 끝내고 다시 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거기서 완치되고 끝났다는 아름다운 질병 치료 후기가 되면 좋을 텐데 치료가 끝나고 나서 이명이 찾아왔다. 이 시간을 잊지 말라는 상흔 같았다. 내 몸을 챙기지 않고 나를 배려하지 않고 무리해서 쓴 결과니 제발 나부터 챙기고 돌아보라고 내 몸이 나에게 준, 눈에 보이진 않지만 계속해서 그때를 기억할 수 있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상흔이었다. 한두 달을 이명을 없애보려고 여러 노력을 했었지만 결국 이명과의 동거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이명과의 동거가 지속되면서 나쁘지만은 않다고 느낀 것은 이명이 나의 컨디션 바로미터 같은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잠을 잘 못 자거나 몸이 너무 피곤하거나 하면 평소에는 집중해야 들릴까 말까 한 소리가 가만히 있어도 꽤 큰 소리로 들린다. 상상해 보라. 회의 중에 나한테만 삐——- 소리가 계속 나는 거다. 남들과 대화할 때도, 일할 때도, 밥 먹을 때도, 혼자 화장실에 앉아있을 때도 소리가 나를 떠나지 않는다. 다들 한 번씩 경험해 본 어지럽거나 앉았다가 갑자기 일어났을 때 순간적으로 삐—- 소리가 나고 금방 괜찮아지는 그 소리와 같다. 처음 소리가 다시 커지는 경험을 했을 때에는 무서워서 병원에 갔다. 약 처방과 함께 들려오는 말은 "무리하지 말고 쉬세요. 스트레스를 받지 마세요.”였다. 의사 선생님.. 저라고 안 쉬고 싶나요, 저라고 스트레스를 받고 싶어서 모으고 다녔을까요. 저도 여기 오기 싫었어요!!!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며 기운 없이 약을 받아 나왔다. 


이런 증상이 반복되면서 소리가 조금이라도 커지면 고슴도치가 자기 몸을 웅크리며 숨기듯이 나를 보호했다. 일이 쌓여있어도 그냥 퇴근하거나 점심시간에 혼자 밥을 먹고 산책을 하면서 나 자신이 편히 있을 시간을 마련했다. 귀에서 큰 이명소리가 들리면 예민해진다. 그 예민함으로 누군가에게 짜증을 낼 수도 있고 좋은 말이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평소보다 배로 집중해야 하는 등의 상황들이 벌어지기에 최대한 더 예민해지는 상황을 피해 다녔다. 정말 심해지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나를 쉬게 해 주면 심해진 이명은 소리가 줄어들어서 일상생활에선 거의 들리지 않게 작아졌다. 자가치유 방법을 깨닫고 난 뒤에는 다른 어떤 때보다 남들보다 나를 보살피며 지내려 노력했다. 사람들과의 약속을 갑자기 취소하는 것은 민폐여서 절대 못했던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다음에 만나자고 약속을 취소하거나 미루고, 해야 할 일들이 있지만 지금 안 한다고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미뤄두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수준으로만 일을 했다. 일을 우선순위에 두었던 나는 그제야 우선순위에 나를 올려두었다. 


이명과의 동거를 시작했을 때에는 나라는 사람에게 결함이 생긴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을 만든 나 자신이 너무 싫었고 미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몸이 많이 아파야 아, 내가 힘들었었구나 깨닫는 사람인 나에게 조금만 상태가 흔들려도 조심하라고 알려주는 바로미터인 이명이 함께하고 나서는 오히려 좋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명이 커진 상태가 오래가면 꽤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다. 일단 조용하면 이명에 집중하게 되어서 늘 음악을 틀거나 무언가 작은 소음이 필요해서 그마저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알아차린 나의 상태가 좋아지기 위해 잠을 많이 자거나 산책을 가거나 운동을 하거나 끼니를 잘 챙겨 먹는 등의 시간으로 충전을 하면 스스로가 느낀다. 아, 좋다. 이런 게 나에게 필요했구나. 


내가 나를 배려하지 않았던 대가는 무서운 결과였지만 나를 더 건강하게 돌보고 살필 수 있게 되었으니 더 좋은 일일수도 있겠다 싶다. 무리하지 말자. 일보다 꼭, 나를 우선순위에 올려두자. 나처럼 당신도 일을 망치게 두고 볼 사람이 아닌 책임감이 있고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인 것을 안다. 그러니 무리하지 말고 쉬어가도 괜찮다. 


[오늘의 응원]

나에게 하는 행동을 나의 형제, 자매 혹은 가족에게 한다고 생각해 보자. 타인만 배려하고 가족이 힘들어도 무심한 나라니.. 너무한 것 같다. 아프기 전에, 어딘가 상처받기 전에 나를 배려하자. 내가 남을 배려하는 것을 줄이고 나를 배려한다는 것은 나 밖에 몰라서 아무도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오늘도 나를 배려하느라 애쓰는 당신을 마음 가득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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