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하 Nov 14. 2023

결국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나

예민내향러의 모든 것을 나를 향한 비난으로 귀결되는 자세에 대해

글쓰기 모임에서 “저는 돌아보는 것을 잘해요.”라고 이야기를 했다. 모두가 회고를 잘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라고 애써도 안 되는 사람이 있는데 자연스레 할 수 있다면 좋은 것이라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는 회고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잘했는지 못했는지 평가하는 것을 잘하는 것이었다. 


이직 후 처음 해보는 업무가 많았다. 교육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 간담회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 실무자들을 모아서 책자를 만드는 일 등등, 늘 현장과 한국의 후원사 사이에서의 가교 역할을 하던 사람이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맡았어야 했다. 연차가 8년 차 정도가 되다 보니 처음 하는 일이어도 실수하고 싶지 않았고 몰라서 그랬다고 핑계를 대고 싶지 않았다. 쏟아지는 업무 속에서 내가 잘 아는 부분과 모르는 부분이 비슷한 비중으로 차지하다 보니  늘 높은 곳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혹 행여나 잘못될까 봐 여러 번 확인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매번 일의 폭풍우 속에서 대피할 곳 하나 없이 거센 바람과 차가운 비를 맞고 있는 듯했다. 이직하고 최소 3개월은 적응하느라 바빠 다른 팀원들이 하듯이 업무를 해내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음에도 스스로가 용납되지 않았다. 그래도 경력직인데, 처음이었어도 잘 해냈어야지. 아직도 너는 왜 이 정도밖에 못하는 거니.라고 나를 나무라고 있었다. 


퇴사하고 받았던 첫 상담 때 충격받은 말이 있었다. “일을 너무 열심히 하다가 몸이 아파서 지금 쉬고 있잖아요. 그런데 왜 쉬는 것도 열심히 쉬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난 내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 몰랐다. 늘 부족하면 안 된다, 열심히 해야 한다, 나는 이런 것이 부족한 사람이니까 이것을 다른 곳에서 메꾸기 위해서는 이것도 저것도 해야만 한다의 사고는 일하는 내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 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몸이 아파와 쉬는 때에도 쉬면서 운동도 안 하고 누워만 있는 내가 한심하다고 말하면서 이런 것도 안 한다, 저런 것도 안 한다고 말했던 것이었다. 사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냥 누워서 쉬는 것이었기에 몸이 그렇게 신호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해야 한다(should)”는 말은
자신이나 타인에게 도덕적인 비난을 할 때 매우 유용한 표현이다.
<센서티브>


돌아보는 것을 잘한다는 나는 회고가 아닌 자기 검열, 평가, 비난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오늘 내가 무슨 말을 했을 때 그 사람의 표정이 안 좋았는데, 내가 한 말 때문일까 기분이 나빴을까, 내가 너무 막말을 했었나. 말을 더 조심하자. 내가 하려고 했던 것보다 충분히 준비하지 못하고 회의에 들어가서 불안했는데 너는 왜 그렇게 사냐. 조금만 더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준비할 시간을 더 벌었어야지. 네가 만족 못할 거면서 왜 일을 그렇게 하니 계속 그렇게 할 거니 등등의 나의 부족함을 지적하고 나무라는 나를 향한 날 선 말들로 하루의 일과를 곱씹는 것. 그게 돌아보는 것을 잘한다는 나의 돌아보기였다. 


우리는 특히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또 잘못될 수 있는 결과를 미리 예측하고 대비한다. 그리고 그 원인을 행동의 결점에서 찾으려고 한다. 예상하지 못했던 남들의 비난을 받는 불쾌한 경험보다 차라리 자기 자신을 탓하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센서티브>


민감한 사람의 어떤 부분은 늘 화살이 자기에게 향한다. 이게 나 자신을 계속 갉아먹는 게 아니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라 생각했었고, 나는 나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니까 자기 관리를 잘한다고 착각하고 살아왔었다. 그래서 결론은 나는 늘 부족한 사람이고 더 잘해야 한다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상담 선생님과의 충격적인 첫 대면 이후, 나에게 너그러워지기로 했다. 일단 그냥 쉴 만큼 쉴 것. 그간 충분히 내년, 내후년의 에너지까지 끌어오는 듯이 일해 왔던 나의 시간들이 있으니 까짓것 일 년 정도는 쉬면서 나를 잘 돌보기로 마음먹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배가 고플 때 먹고 배가 고프지 않으면 먹지 않는 생활을 하다 보니 소화불량도 없어지고 두통도 사라졌다. 무엇보다도 나에 대한 평가를 안 하려 노력하는데 일을 해온 시간 내내 자연스럽게 하던 생각이 하루아침에 고쳐지기는 어려웠다. 기존의 생각을 스스로 바꿀 수 없다면 새로운 인풋으로 덮어보자는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 속의 인물에 나와 비슷한 부분을 비추어보기도 했고, 산책을 하면서 나는 아직도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는구나 알아차리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필요한 인풋들을 살펴보면 아니나 다를까, 나 자신을 긍정하는 문장들과 위로하는 문장들에 밑줄을 긋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고유한 존재다. 독특하고 특별하고 유일하다. 우리의 인생에는 세상에 담겨있다. 모든 인생은 소중하고, 신성하고, 영원하다. 어떻게든 살아내서 자연의 섭리를 완주하는 한. 모든 인생은 훌륭하고 존중받아 마땅하다.”
<인생의 해석, 헤르만헤세>


문장메모 리추얼을 사람들과 같이하면서 한 달 동안 내가 모았던 문장의 방향성을 살펴보면서 나를 긍정하는 문장들을 메모지에 꾹꾹 눌러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쌓이면서 내 안에 차곡히 쌓인 문장들은 스스로를 평가하고 비난하며 옭아매고 옥죄고 있던 생각들에서 벗어나 나를 아껴주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지, 작게나마 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생각들로 방향이 바뀌어가고 있다. 

이전 02화 나는 나를 잘 알고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