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에 대하여, 나는 작심삼일러이자 프로월요일시작러이다
퇴사 전까지 나는 오랫동안 꾸준히 하는 것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생이 되고 집에 있던 아마도 아버지가 쓰셨던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필름카메라는 뒷전이 되었다. 물론 잊을만하면 한 번씩 토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다가 흥미를 잃었다가, 필름카메라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중고 필름 카메라 사용기와 리뷰만 몇 날 며칠을 읽어보다가 결국 스마트폰으로 찍는 사진만 내 손에 남아있게 되었다. 그래도 사진을 좋아해서일까, 그렇게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거나 엽서로 만들어보기도 했다. 이렇게 글을 보면 꾸준히 한 듯 하지만 이 모든 일은 대략 3-4년에 한 번씩 드문드문 일어났던 일이다.
책을 읽거나 어딘가에서 인상 깊은 문장을 만나면 사진을 찍어두거나 노트에 적었다. 거기까지다. 노트는 금세 다른 내용들과 뒤섞이거나 어디 갔는지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여행가방에서 발견하고 오- 내가 이런 문장을 적었었네? 하고 신기해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스마트폰 앨범에는 스크린샷으로 꽤 많은 문장들이 모여있고 인스타그램 저장함에도 문장과 맛집과 기억하고 싶은 무언가들이 마구 혼재되어 저장되어 있다. 다시 보지 않으니 대충 저장하고 꾸준히 하는 듯 안 하는 듯 (꾸준히라는 단어를 붙이기 부끄러울 정도로) 수집해 왔다.
그러다가 만난 책이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였다. 이 책을 읽고 바로 샀던 것이 3년 일기장이었다. 3년 일기장을 시작하고 한동안 3년 일기장을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좋다고 광고하며 살았다. 일단 3-4줄만 쓸 수 있게 되어있어 부담 없이 끄적거렸고 중간중간 빼먹어도 다시 써보면서 기록에 대한 나름의 습관을 잡아보려 애썼다. 신기하게도 이전과 다르게 일반 노트에 이것저것을 적었을 때에는 금방 그만두었고 노트를 어디에 두었는지 잊기도 하고 흥미를 잃어 다른 내용으로 채우기도 하고 했는데 3년 일기장은 한동안 꽂혀서 꾸준히 쓰다가 생활이 바쁘고 지칠 때에는 잊었다가 오늘은 일기 써야 할 이벤트가 있어!라고 하면서 다시 일기장을 꺼내어 쓰다가 말다가 그렇게 일 년을 보냈다. 3년 일기장을 쓰면서 좋은 점은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는 것과 어딘가 기록한 그것을 다음 해에 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일 년이 지나서 작년에 쓴 일기를 보면서 쓰는 올해의 일기는 내용이 너무 달라져서 신기하기도 하고 작년의 시간이 생각나서 아련해지기도 했다.
자신 있게 꾸준히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루 한 줄 문장메모’ 리추얼이다. 좋아하는 편집자님이 밑미(Meet Me)에서 리추얼을 시작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고 첫 시작부터 지금까지 1년 5개월 동안 계속하고 있다. 이 리추얼 전에는 애정하는 서점에서 ‘곰곰묵묵’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내가 매일의 목표(20분 책 읽고 기억에 남는 문장 쓰기)를 쓰고 인증하는 것으로 책을 가까이하는 습관을 길렀다. 책을 가까이하는 습관을 기르고 싶어서 시작했던 서점의 프로그램과 리추얼이 이제는 진짜 나의 리추얼이 되었다. 1년 5개월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했느냐고 물어보면 아니다. 절대 아니다. 나는 빽빽하게 계획을 세워두면 답답해하고 목표가 주는 부담감에 시작도 잘 못하는 사람이고, 매일매일 비슷한 것을 하다 보면 금세 흥미를 잃기도 하는 사람이다. 다행히 책을 읽고 문장을 하나씩 수집하는 것은 매일 다른 책을 읽고 다른 문장을 만나는 것이라 질릴 틈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히 하기 싫은 날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하루를 빠지면 신기하게도 다음 날도 하기 싫어진다. 이틀을 빠지면 그 다음 날도, 다음 날도 자꾸 하기 싫어진다. 왜 그럴까. 좋아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한 번 루틴이 깨지면 계속 게으름을 피우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그때부터 하루를 빠지면, 오늘만 하자. 3일만 하자. 3일씩 10번을 하면 30번이야. 그럼 한 달 동안 하는 거야. 오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해볼 만하다.라는 생각이 하면서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월요일이나 매달 1일이 되면 괜히 무언가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만 그런 걸까? 미루고 미루고 미루던 일이 있으면 오, 오늘 월요일이다! 오늘부터 해야지.(대체로 운동이 그러하다) 오늘부터 딱 3일만 해야지.라고 하다 보면 일주일 꽉 채워 운동하게 된다.
1월 1일에 우리가 많은 계획을 세우듯이 매월 1일에 이번 달엔 무언가를 해볼까 하는 거다. 작은 성취는 잠시 몇 번 빠져도 다시 시작하는데 좋은 동력이 된다. 일주일에 3-4일을 무언가 실천했다면 일주일에 절반이나 나를 위해 무언가 해보는 데 성공한 것이고, 매주 3-4일씩 했다면 한 달이면 12-16일씩을 한 것이 되니 절반 가까이 혹은 절반 이상의 무언가를 성공한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와 비교하면 꽤 많은 것을 해낸 사람이 되는 거다. 그것도 누가 억지로 시킨 일이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나를 위해 하고 싶은 것들을.
피아노 연습도 마찬가지다. 피아노 연습을 하고 싶어서 혹은 피아노를 치고 싶어서 피아노 앞에 앉는 경우가 다수이긴 하지만 하기 싫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딱 5번만 쳐야지. 딱 20분만 해야지라고 건반 앞에 앉는다. 실제로 5번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치다 보니 재미가 붙어서 더 오랫동안 연습하는 경우도 있다. 매일 조금씩 연습했더니 레슨 시간에 피아노 연주가 더 잘 된다는 이야기를 피아노 선생님과 나눴는데 좋은 연습법이라고 알려주셨다. 피아노 연주는 운동이랑 비슷해서 손이 기억하고, 손이 연습이 되어 있어야 연주가 잘 된다고 했다. 2-3일에 한 번씩 한 시간 연습을 하면 연습을 시작한 앞의 1-20분은 피아노를 치는 감을 찾는 시간이라서 제대로 된 연습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뒤 시간이 연습하는 시간인데 오랜만에 연습을 하니 곡의 처음부터 연주하게 되고 그렇게 연습을 하면 뒷부분은 늘 잘하지 못하는 상태로 연습이 마무리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매일 30분씩 연습을 하면 어제 연습했던 손의 기억이 연결되기 때문에 적응시간이 필요하지 않고 바로 ‘찐 연습의 시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그 ‘찐 연습의 시간’에는 급한 마음이 없으니 잘 안 되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여러 번 반복해서 치게 되고, 마지막에 한두 번을 앞뒤를 연결하거나 처음부터 연주하게 되니 긴 시간을 일주일에 1-2번 하는 것보다 손이 피아노 연주를 잘 기억해서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여기서의 핵심은 조금씩이라도 매일 치는 것이 근육을 키워준다는 것이다.
작심삼일러는 피아노 앞에서 작심5번만이 된다. 5번만 해보자. 실제 이렇게 30분씩 4-5일을 연습하고 레슨에 갔을 때 칭찬을 받았고 길게 일주일에 한두 번씩 연습했을 때는 버벅거린 적이 더 많았다. 일주일에 1-2번 연습하는 날은 더 자주 연습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더 길게 연습하게 되는데 그러면 어느새 어깨나 등이 아파온다. 욕심을 부리다 보니 잘 치고 싶어서 몸이 긴장하는 것이다. 몸소 경험을 한 뒤에는 가능한 매일 짧게 연습하려 노력한다. 이렇게 자잘하게 쌓인 피아노 연주는 피아노 학원 인스타그램에 올라가게 되었다. 뛰어난 실력이 아니어도 선생님이 보시기에 업로드 할 만한 것이 어디인가. 재즈 피아노를 배운 지 9개월 차에 일어난 일이다.
작심삼일은 매일 책을 읽고 메모지에 문장을 손으로 기록하게 해 주었고, 그렇게 손으로 눌러쓴 문장들은 기억 속 어딘가에서 헤엄치다가 글을 쓰는데 주제로 쓰이기도 하고, 나의 표현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설명해 주는 문장이 된다. 그리고 수집한 문장으로 쓰는 에세이를 쓴 지도 11개월 차가 되었다. 두꺼운 노트 한 권이 끝났다. (노트 한 권에 총 126개의 문장일기를 썼다, 지금 세어보고 깜짝 놀랐다) 매일 써 내려간 문장일기가 글쓰기를 지속하는데 좋은 훈련과 연습이 되었다. 산책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만 잠깐 나가볼까, 어제는 쉬었으니 오늘 나가볼까 하다 보니 자연스레 매일 산책을 하는 내가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시작할 때는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꾸준히 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꾸준함과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 그냥 오늘만, 3일 만을 반복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다.
균형을 잡기 위해 기우뚱대는 과정은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잖아요.<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다른 사람들이 이루어 놓은 결과만 보고 부러워말자. 그들도 작심삼일을 거쳤을지도 모른다. 물론 계획을 세우면 무조건 실천하는 사람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겠지만. 무언가를 꾸준히 못하는 사람이라고 시작도 전에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처럼 작심삼일러로 살자고. 작심삼일로 쌓다 보면 그게 무언가가 되기도 한다고. 나는 여전히 작심삼일러로 살고 있다.
[오늘의 응원]
멀리 있는 일정(3개월 후, 1년 후)의 목표는 버리자. 이번 주, 이번 달만 생각하자. 해보고 싶은 것, 나에게 꾸준함으로 남아있으면 좋을 것을 딱 하루만 하자고 스스로에게 말하자. 다음 날에도 오늘만 하자고 말하자. 그 다음 날에도 오늘만 하자고 말하자. 그리고 3일만 해보자고 또 말하자. 꾸준히 못한 나는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못한 나보다 오늘부터 시작할 나를 스스로가 응원하자. 오늘의 분량을 해냈다면, 스스로를 한껏 칭찬해주자. 잘했다, 너 생각보다 할 줄 아는 사람이었네! 기특해, 멋있다!! 일기를 쓴다면 참 잘했어요 도장이든 스티커든 꾹꾹 눌러 붙여주자. 나의 잘함은 스스로부터 알아줘야 한다! 그리고 곁에서 나와 같은 당신에게 작심삼일러 동료가 되었음을 한껏 환영하는 내가 함께 응원할거다. “오늘 작심삼일 시작했어요? 반가워요, 저도 시작했어요. 오늘 해낸 우리 제법 기특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