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이에서 잘 있을 수 있는 내향인은 무엇이 힘든지를 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가 있다. MBTI가 뭐예요?라고 했을 때 저는 IOOO이에요.라고 말하면 아, 이런 모임 어렵지 않으세요? 사람들 안 만나고 집에만 있겠네요.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니다. 말 그대로 선호하는 성향이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은 것이고 남들보다 조금 민감하게 느끼는 부분이 있을 뿐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종종 MBTI가 I라는 이유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사회생활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 바라보아 아쉬울 때가 있다.
내향형인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공모사업에 프리젠터 역할을 하기도 했고, 간담회나 모임 등의 진행자 역할, 15명-20명 규모의 강의를 진행해 본 적도 있다. 내향형이라고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절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남 들 앞에서 해내야 하는 어떤 역할의 ‘페르소나’를 장착하면 어려울 것이 없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 전달해야 하는, 설득해야 하는 내용이 있고 그것을 전달하는 것은 전혀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 고민하고 열심히 자신감 있게 준비한 것을 그저 펼쳐 놓으면 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앞에 서기 전, 심호흡을 하며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힌다)
하지만 예닐곱 명 이상이 모이는 모임에 가면 조금 달라진다. 모임이라는 것이 특별한 목적이 있는 자리가 아닌 이상(글쓰기 모임, 리추얼 모임 등등) 개인적인 관계가 모여있는 곳이기에 각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집중해서 듣다 보면 점점 기가 빨린다. 보통 예닐곱 명이 모이면 한 사람만 이야기하지 않고 두세 명이 동시에 이야기를 끌고 가며 덧붙이고 반응하고 보채고 놀리고의 과정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기도 하고 가장 뜨거워지기 쉬운 남욕하기의 시간도 자주 찾아오기에 그저 듣고만 있어도 정신이 없고 점점 나의 배터리가 줄어드는 것이 느껴진다. 그럴 때 화장실에 가고 싶지 않아도 일어나서 한 번쯤은 다녀온다. 모임 장소가 유난히 천장도 낮고 답답한 구조라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우리 테이블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오는지 알아채기 어려운 장소일 때가 있다. 모든 테이블의 데시벨은 다른 때보다 상향되어 있어서 시끄러움의 소용돌이 중간에 서 있는 기분이다. 화장실에 멍하니 앉아 나의 귀와 집중 에너지가 쉴 틈을 마련해 주고 그마저도 부족하면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비슷한 느낌으로 일행에게 들키지 않게 바깥바람을 쐬는 것도 방법이다. 아니면 솔직하게 너무 시끄러워서 두통이 오니 잠시 바람을 쐬고 오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말하면 나도 여기 시끄러운 것 같다고 같이 나가고 싶은 친구 한두 명이 있기도 하고 자연스레 자리를 옮겨 2차나 3차를 가자고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전에는 같이 있는 친구들에게 미안해서 되도록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기억하고 집중하려 노력했는데, 어느 날 그 친구가 진지하게 털어놓았던 이야기를 그다지 진지하게 기억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모든 관계에서 모든 사람에게 늘 열과 성을 다해 집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더욱 1:1의 자리가 아닌 다수가 모이는 자리라면 미안함보다는 나도 그 자리를 즐길 수 있도록 잠시 떨어져 환기하고 충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조금 더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남들보다 냄새와 소리에 민감한 나는 소리가 많이 울려서 조금만 떠들어도 금세 시끄러워지거나 옆 테이블이 하는 이야기가 귀 기울이지 않아도 다 들릴 정도로 거리가 가까운 곳은 선호하지 않는다.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고 조금 조용하고 테이블이 널널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상대방과 내가 함께 있는 시간을 편히 잘 즐기기 위함이다. 가끔 반지하나 오래된 건물에 가면 먼지 냄새나 곰팡이 냄새가 나는 곳들이 종종 있는데, 그러한 곳도 오래 있는 것을 어려워한다. 이 부분도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옮기거나 되도록 만나는 장소를 해가 잘 들거나 구석진 건물을 선택하지 않도록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시간은 서로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이야기, 들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만나는 것인데 힘듦을 참고 고 생스레 만나는 것을 굳이 선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처음 지인들에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어렵지, 내가 민감하게 느끼는 부분을 공유하고 나면 괜스레 비밀을 공유한 것 같기도 한 친밀감이 들기도 하고, 상대방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을 살포시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서로가 좋고 즐거운 시간을 위해 각자가 싫어하는 것을 제하고 만나는 것은 상대를 귀찮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간을 질 좋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모임에서 에너지를 잘 지니면서 힘들지 않게 있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사람들이랑 어울리고 놀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에너지를 채우는 외향형 친구 곁에 앉아 있는 것이다. 외향형 친구가 가까이 앉아있다면, 나는 어두운 등잔 밑이 되어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그저 옆에서 손뼉 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모임에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을 덜어낼 수 있다. 물론 외향형 친구로 인해 기가 빨리는 것이 두렵다면 좋은 방법은 아닐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은 같지 않다. 지구에 70억 명이 있다면 70억 개의 성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성향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내가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알면, 피해 갈 수 있고, 덜 영향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내향형 나는 1:1의 만남을 다수의 만남보다 선호하고, 이왕이면 조용하고 어떤 냄새도 없는 곳이 좋다. 상대와 만나 공원이나 산책을 함께하는 것도 좋아하고, 소수의 만남은 2차, 3차도 좋다. 상대적으로 다수의 만남보다는 깊은 대화가 가능하기에 그것이 흥미롭고 즐겁고 관계의 풍성함을 느끼기에 그런 자리를 선호한다. 다수가 모이는 곳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를 채우고 있을 때는, 외향형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즐겨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스스로가 선택한 다수의 모임이기에 억지로 나가는 것은 아니기에, 내향형을 향한 단호한 시선을 거두어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선호하는 방향성이 다를 뿐이다.
[오늘의 응원]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이 나를 살펴보자. 무엇이 불편하고 어려운지, 어떤 상황에서 에너지가 빨리 닳는지 알아주자. 타인을 배려하듯이 나에게도 배려해주자. 나를 살펴보고 어려운 부분을 알아차렸다면, 불편함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냄새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좋아하는 향이 있는 작은 향수나 요즘 많이 나오는 휴대용 아로마 오일도 있으니 가방에 챙겨두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부분이 불편하고 어려운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나도 상대방도 함께 즐거운 시간을 오래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