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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 Dec 07. 2023

이 모임에 꼭 가야할까, 다들 이렇게 사는 걸까

결이 다른 사람들과 마주하며 사는 것

우리는 모두 사랑받고 싶어 한다. 미움을 받으려 애쓰는 사람은 없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나답지 않은 행동, 나도 알 수 없는 감정과 마음들로 뒤덮일 수도 있다. 솔직한 나를 드러내지 못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관심받고자 하는 그 마음 하나로 행동하고 집중한다면, 감정만 가득하고 올바르지 않은 관계의 중심에 서 있을 수도 있다. 


언젠가 상담 선생님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왜 매번 주변 사람들의 말을 그렇게 최선을 다해 들어주는 거예요?” 이 질문을 듣고 당황했다. 왜냐니, 당연한 거 아냐? 사람들은 나처럼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건가? 그럼 우리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거지? 관계에 대해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질문들이 내 안에 생겼다. 


민감한 사람들은 남에게 고통이나 불편을 주는 걸 극도로 싫어하고 피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덜 민감한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센서티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유달리 지인들과의 관계에서의 여러 가지 정보를 잘 기억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타인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야기처럼 세밀하고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나. 막상 그때 자신의 이야기를 했던 이야기는 기억 못 하는 친구. 친구가 많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오랜 시간을 들여 지속해서 들어주고 상담을 해주었지만, 친구는 자신이 그 정도로 많이, 오래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상황. 약속 전 날 연락해서 내일 언제 어디서 만나면 좋을지 이야기를 했더니 까맣게 잊고 있던 친구.

허탈하고 황당하기도 했다. 가끔은 서운했고 나만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상대는 나만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생각에 상처 아닌 상처를 받기도 했다. 관계에서 ‘을’의 입장인 것처럼 친구를 배려하고 소중하게 한다고 했던 행동들은 나에게 돌아와 마음의 헛헛함만 쌓이도록 했다. 그럼 내가 이상한 걸까, 친구가 이상한 걸까. 일에서도 관계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사는 게 잘못된 것인 걸까.


누군가와의 만남에서 나의 모습이 어떤지 조금 객관적인 시선을 바라보았다.(1:1 혹은 3-4인이 모이는 소수의 만남에 해당된다.)


1) 만남 전부터 기대되고 만남 후에 에너지가 채워져 오는 경우


자주 만나지 않아도 좋다. 만날 때마다 좋은 힘과 인사이트, 격려와 위로가 자동으로 따라오는 만남이다. 나와 많이 달라도 배울 점이 있고, 서로를 나무라지 않으며 진심을 다해 응원하고 조언하는 지인이다. 마라톤을 뛴다고 했을 때, 펜스 뒤에서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목이 터져라 응원해 주고 넘어져도 괜찮다 말해주는 그런 사람.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되고 응원하고 발전할 수 있는 만나면 에너지가 채워지는 사람이다. 1번과 같은 사람과 만나는 시간은 소중히, 그리고 만나고 온 후에도 받은 에너지와 좋은 자극을 어딘가에 기록하고 잘 저장해 두는 것이 좋다. 그렇게 저장된 그날의 만남은 미래의 나에게 또 다른 힘이 될 거다. 


2) 엄청난 집중을 해서 시간을 보내지만 집에 돌아오면 몸이 아플 정도로 힘들어지는 경우


이 경우에는 그 사람이 자체가 힘든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하는 섬세한 내향인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친구들이 여럿 있을 수 있다. 그런 친구들의 힘듦과 어려움의 이야기, 혹은 많이 어려운 상황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감정에 젖어있다. 같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나도 울어버리면 안 될 것 같아서 애써 눈물을 삼키기도 하고, 같이 쌍욕을 내뱉어 보기도 하며 마구 화를 내어보기도 한다. 그렇게 들어주고 함께 감정을 나누며 상대와 많이 가까워지기도 하지만 문제는 헤어지고 나서다. 물론 기쁘고 즐거운 감정에 젖어있는 경우도 있어서 내 일도 아님에도 지인의 일에 나의 이벤트처럼 한껏 행복하고 기쁠 때도 있다. 좋은 감정이 무엇이 문제일까. 문제는 부정적인 감정들이다. 앞서 말한 부정적인 감정을 흠뻑 나눈 시간은 고스란히 헤어져도 나를 감싸고 있다. 보이지 않는 보호막처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감정들이 신체에 묻어있음을 알게 된다. 온갖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듯이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신체 증상이 나타난다. 같이 5-6 시간은 울고 온 것과 같은 깨질 것 같은 두통이 오고 뒷목이 뻗뻗하고 몸살기운도 있는 것 같은 신체의 변화를 느낀다. 그제야 아차, 싶다. 오늘도 나는 상대의 감정과 마음에 매우 동화되어 있었구나. 


3) 뭔가 시간을 보냈지만 그냥 맛있는 것을 먹고 잘 놀다 왔구나 하는 경우


3번은 무난한 경우다. 특별히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 서로 어떻게 살았는지, 잘 지내고 있는지, 큰 이벤트는 없었는지 조곤조곤 안부를 묻고 이거 맛있다 저거 맛있다, 꺄르륵하기도 하고 너무 무겁지 않은 답 없는 고민들도 나누며 서로 그래도 잘 살고 있는 것 같으니 힘내자며 다독이며 다음에 또 만나자는 만남. 


4) 내가 여기에 왜 앉아 있는 걸까,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경우


4번은 정말 쉽지 않다. 대체로 이 경우는 오래된 친구 혹은 그룹으로 만남을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모여서 함께 보내는 시간은 모임의 분위기나 주제를 이끄는 친구에 따라 정해진다. 그 분위기나 주제가 나와 친밀한 경우도 있고 정말 먼 거리에 있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리로 지정된 그곳에 자리를 지키며 앉아 있는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여온, 묶어진 시간을 버리지도 못하고, 조금 불편한 옷을 입고 우리의 결은 시간이 흐르며 많이 달라져 있음을 계속 계속 확인하면서.


사람이 살면서 늘 1번에 해당하는 사람들만 만나면서 살 수는 없다. 1번 사람들이 2번이 되기도 하고 3번 사람들이 2번이나 4번으로 바뀔 수도 있고 시간이 흐르면 1번이 4번으로 갈 수도 있다. 나와 결이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는 법은 에너지를 잘 분할하는 것이다. 매번 모든 사람들에게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만남을 가지지 않아도 괜찮다. 아무도 모른다. 나만 안다. 그래도 되는 이유는 덜 민감하고 덜 내향적인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우리만큼 신경 쓰지 않기에, 기억하자. 모두가 우리처럼 모든 만남과 장소에서 마음과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을 만나서 에너지와 감정을 조정하는 게 가능하냐고?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다면, 엄청나고 대단한 팁은 없다. 1번과 4번 사이의 어떤 사람인지 잘 생각해 보고, 에너지와 마음을 쏟는 것이 너무 큰 소모가 될 것 같다면 만남 중에 잠시 시선을 돌려보는 거다. 테이블에 무늬가 어떤지,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의 맛은 어떤지, 앉아 있는 의자는 딱딱한지 편한지. 상대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잠시 시선을 돌려 대화에 집중된 에너지를 환기한다. 때로는 테이블에 기대앉던 자세를 의자에 등을 붙여보며 자세를 바꿔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테이블보다 의자에 몸을 더 밀착시키고 나면 상대에게 집중되었던 자세가 조금 편해지면서 에너지가 집중되던 것들이 흐트러진다. 집중하고 있는 시간을 계속 잘라내어 에너지를 아끼는 거다. 괜찮다. 아무도 모른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꽤 많이 해보고 있고, 그렇게 아낀 에너지를 나에게 쓰거나 1번 사람들과의 대화에 더 쓰고 있다. 왜 진작 이렇게 하지 못했나 싶을 정도니 꼭 해보기를 바란다. 




<곁에 두어야 할 결 맞는 사람을 찾는 것>


내향인 광고카피 크리에이터인 김민철 작가는 회사에 마음을 열고 나누는 동료가 딱 한 명이라고 했다. 


단 한 명의 동료만으로도 나는 수십 명의 동료에게서 얻을 용기를 모두 얻고 있다.<내 일로 건너가는 법> 


내 마음을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야만 하고, 꼭 많은 사람들에게 어여쁨을 받고 사랑을 받아야만 잘 사는 게 아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입맛도 변하고, 생각도 변하고, 삶의 방식과 지향점도 변하는데 왜 내 곁의 사람들은 그때의 그대로 두어야 할까.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잊히면 우리의 인연은 거기까지다. 나에게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들을 아끼자.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모든 관계를 너무 정성스럽게 가져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인다. 내 안에 중요한 것들이 쌓이는 자리를 넓혀가며 나를 건강히 길러가는 과정이다. 나를 위해. 

아무리 생각해도 1번 같은 친구들이 없는 느낌이라면, 결이 맞는 친구들을 찾아보자. 우리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친해지는 과정이 남들보다 조금 더 오래 걸리거나 덜 적극적인 내향러이지 새로운 친구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결이 다른 친구랑 재미있는 척 노는 게 더 힘들다. 


책을 좋아하지만 책 친구가 없어서 읽은 문장을 정리하고 인증하는 프로그램에 참석했다.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나처럼 오랜 기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한두 명의 친구들의 닉네임이 익숙해지면서 서로의 글에 댓글을 달아주면서 우리는 친구들도 모르는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얼굴도, 이름도, 사는 곳도, 직업도 모르는 친구는 책과 문장이라는 매개체로 1번에 가까운 친구가 되어간다. 그렇게 알게 된 친구들로 내가 절대 열어보지 않을 분야의 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몰랐던 작가를 알게 되기도 하고, 친구들의 문장에 여러 인사이트를 얻거나 위로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친구들을 통해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작은 우물이었는지 깊이 깨닫는다. 내가 우물 안에서 갇혀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1번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와 기대되는 시간이 더 큰 의미가 된다. 


나를 재단하고 평가하는 사람들보다는 그대로 인정하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을 곁에 두자.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 아닌 것에 비난과 비판보다는 정성스럽고 배려있는 피드백을 해주는 사람들. 부정적인 이야기보다는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이야기를 함께할 수 사람들. 김민철 작가처럼 단 한 명이어도 수십 명의 동료를 통해 얻을 용기를 모두 받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오늘의 응원]

뚜렷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전처럼 만남이나 대화가 즐겁지 않은 관계를 찾아보자. 혹은 만나고 오면 온갖 진이 빠져 허무하거나 허탈하거나 괜히 서운한 관계가 있는지 찾아보자. 그 관계가 나에게 주고 있는 영향력이나 의미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지 한 발 떨어져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자. 생각만으로 어렵다면 글로 써보자. 

‘그때 ㅇㅇ모임에 나갔다가 돌아오면서 앞으로 3일은 약속을 잡지 말자고 생각했다. 이게 맞나?’ 

반대로 기운이 나고 다음에 또 만나고 싶은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거나 글로 써보자. 

‘오늘 이 시간이 뿌듯하다. 내가 잘된 것도 아니고 친구가 잘 되는 것인데 이런 친구를 마음 한가득 축하할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 이 친구가 잘 되는 것이 내 기쁨처럼 좋은 이유는 무엇이지?’

친구들을 그룹으로 나누거나 평가한다고 죄책감을 가지지 말자. 우리는 그들이 나한테 이로운지 해로운지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조금 더 편안하고 즐겁게 관계를 가지기 위해서 살펴보고 알아채고 에너지를 재분배하는 것뿐이다. 나를 위해서.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친구들에게 말도 못 하는 서운함을 갖지 않고 그 마음을 더 좋은 친구들에게 쏟아 정리하는 것으로 나를 보살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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