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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오는 AI와 경쟁의 물결 속에서

무스타파 슐레이만의 <THE COMING WAVE>를 읽고 쓰다

by 한관 Jan 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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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강 한 달 전에 나는 인턴(요즘은 금턴) 자리를, 그것도 AI 서비스에 필요한 데이터를 다루는 인턴 자리를 얻어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해당 업계의 기초적인 지식이나 이슈를 필요 이상으로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말마다 도서관에서 관련 내용을 다루는 책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출근길마다 이 책을 통해 LLM, 파인 튜닝, API, 데이터 모델링 등 낯선 단어들과 친숙해지기 위해서 시간과 체력을 쏟아부었고, 덕분에 조금이나마 일자무식한 '문송' 모드에서 벗어나 회의 혹은 커피챗에서 TL님과 다른 팀 컴공 인턴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사실 일을 시작하기 전에도 AI에 관한 궁금증은 내 머릿속에 파편처럼 산재했다. 이를테면 왜 힘들게 개발한 기술을 공개된 장소에 무료로 두는 건지, AI를 규제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AI와 다른 분야가 합쳐져서 어떤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등 아주 단순한 질문들이었다. 또, 내가 생각했던 진로와도 연관 짓고 싶었다. 경영학과 영문학을 전공한 성골 문과생으로서, AI를 어떻게 활용하여 채용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회사에서 점심시간마다 인턴들끼리 나누는 대화 주제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에 더욱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의 저자인 무스타파 슐레이만은 알파고를 만든 구글 딥마인드의 공동 설립자로서 현재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코파일럿이나 빙처럼 B2C 인공지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딥마인드 설립부터 지금까지 사람과 인공지능 간의 인터랙션을 구축하는 일의 선두주자로서 많은 고민을 했고, 그만큼 AI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팀 역시 HCI 분야를 기반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기에 더욱 재밌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아침잠이 더 소중한 순간이 많았기에 다 읽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단 대강 눈길이 갔던 파트만 정리해 보자면, 번째는 '생명의 기술'이다. 저자는 유전공학, 생명공학 분야에 있어서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단백질 구조를 분석하고 다루는 방법의 변화는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지금까지 실험을 통해 얻어낸 단백질 구조 19만 개가 딥마인드의 머신 러닝 도구인 '알파폴드 2'의 등장 이후로 2억 개로 늘어난 사례나, 생화학 데이터 기반의 LLM이 DNA RNA 서열에 관한 수많은 후보군을 생성해 냈다는 점이 그것이다. 과거에는 사람이 일일이 실험에 나서서 얻어내야 했던 결과가 이제는 딸깍 몇 번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미 작년 노벨상의 결과가 이를 증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두 번째는 '투자, 돈, 경쟁'이다. 냉전 시대의 스푸트니크 발사 성공은 곧 미국에 '기술적 진주만 공격'과 같은 위기로 느껴졌고, 이는 곧 나사나 방위고등연구계획국 같은 새로운 기관을 앞세운 대대적인 투자로 이어져 미국의 초강대국화를 가속화했다. 그 이전에는 맨해튼 프로젝트가 있었다. 독일 나치의 위협에 맞서 미국은 맨해튼에 온갖 과학자를 가둬놓고 핵폭탄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문제는 이 현상이 오늘날의 미국과 중국에게 그대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얼마 전 중국의 어느 기업이 발표한 'DeepSeek'의 V3와 R1은 과거 우주 공간을 향해 날아가는 스푸트니크처럼, 오늘날의 미국에게도 큰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동인이 됐다. 


서방은 아마 외면하고 싶을테지만, 이미 기술의 노골적인 도용, 강제 이전, 리버스 엔지니어링, 스파이 활동을 필두로 한 중국 정부 주도의 기술우선주의 정책 기조는 미국을 앞세운 서방 국가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냈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생성형 AI 서비스가 어느덧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이 시점에서 딥시크의 등장은 중국을 적대하는 국가들의 위기 의식을 증폭시켰다. 기술의 수준이 어느 정도 비슷한 상황에서 가격이 큰 폭으로 차이가 난다면, 어차피 개인 데이터를 제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개개인이 어떤 서비스를 선택할지는 굳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런 점을 근거로 각국이 AI 발전을 위시한 군비 경쟁 체제에 돌입하는 이 시점에, 그 체제에 직접적으로 공헌하는 과학자들이 중요시하는 과학 기술의 공유와 상호 발전 의식은 얼마나 존중받을 수 있을까? 과학 연구의 수많은 동기 중에서도 타인의 인정과 상호 존중이 분명 존재할 텐데, 미국과 중국의 파워 게임 속에서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과학의 토대와 미래의 모습은 그다지 낙관할 수 없었다.


마지막은 '억제를 위한 10가지 단계'이다. 저자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21세기 인류의 핵심 과제는 정당한 정치적 영향력과 지혜 함양, 숙련된 기술의 전문 지식 습득, 기술을 규제할 수 있는 강력한 규범을 통해 기술이 계속해서 해악보다 훨씬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하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억제할 수 없을 것 같은 기술을 어떻게 하면 억제할 수 있을지 알아내는 것이다.


작가는 '규제'가 아닌 '억제'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여기서 억제는 단순하게 기술의 악용을 막기 위한 법안 그 자체가 아닌, '기술적/문화적/규제적 측면에 걸쳐 기술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한 토대'로 소개되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규제'는 상충하는 이해관계 사이에서 크고 작은 소음을 낼 수밖에 없다. 일례로 2021년 EU의 AI 법안을 두고 어떤 사람은 정부가 대기업에게 면죄부를 준 셈이라며 항의했고, 다른 누군가는 법안이 지나치게 광범위해서 연구와 혁신을 위축시키고 고용과 세수에 타격을 줄 것이라며 우려했다. 물론 그러한 입법 논쟁 와중에도 다른 국가는 AI 기술 개발을 위한 전략적 경쟁에 나서고 있다. 중국의 AI 정책은 암호화폐나 탈중앙화 금융 이니셔티브 같은 민간 분야는 규제하되 군수 산업은 자유롭게 풀어두는 두 가지 트랙을 전개함으로써 앞서나가고 있다. 


억제는 '다가오는 물결을 억제하려는 욕구와 그 물결을 형성해 지배하려는 욕구, 기술의 위협에 대한 보호와 외부 위협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간극'을 채워야 하는 일이다. 이건 한 정부나 여러 정부의 연합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에 저자는 다가오는 물결을 작금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해결하고자 10가지 단계를 제시한다. 그는 안전, 감사(audit), 초크 포인트, 제작자, 기업, 정부, 동맹, 문화, 운동, 좁은 길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억제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이를 통해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열렬한 러다이트들까지 수용할 수 있는 비전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다양한 사례는 지금의 내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비록 인턴이지만 짧은 기간에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이미 이 분야에서 다양한 실무 경험을 쌓아온 멋진 리더님들과 대화하며 이전에는 몰랐던 세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요즘은 데이터 편향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혹은 먼저 말을 꺼내는 누군가에게 더욱 호감을 가진다. 이는 비단 사람뿐만이 아니라 서비스, 콘텐츠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언론이 그러했고, 요즘은 유튜브가 그 자리를 점점 꿰차고 있다. 


미래에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편향된 데이터를 학습한 LLM과 그에 따른 AI 서비스가 등장한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본 적도 있다.기업이 개인화에 초점을 맞춘 AI 에이전트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실무진들은 잠깐이라도 이런 측면을 진지하게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서비스든 꾸준히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로지 수익만을 위해서 편향된 데이터를 잔뜩 집어넣은 서비스를 사회에 그대로 내놓을 수도 없는 일이다. 이들은 이미 이러한 목적을 가진 서비스가 사회에 끼친 해악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고민해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앞서 언급한 '억제'를 이뤄내는 과정을 오롯이 기업의 양심에만 의지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갈지도 역시 의문이다. 이제 전 세계의 리더들이 AI 경쟁을 천명한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세우는데 필요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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