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8.양혜왕 하梁惠王 下 2.8
문장 8
제선왕이 물었다.
“탕왕이 하 나라 걸왕을 추방하여 상 나라를 세우고, 무왕이 상나라 주왕을 정벌하여 주 나라를 세웠다는데, 정말로 그런 일이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그런 일이 있습니다.”
왕이 언짢은 기분으로 말했다.
“신하가 되어 자기 군주를 시해(弑)하는 모반이 가능합니까?”
맹자가 옷매무새를 고치며 대답했다.
“인을 해치는 자를 일컬어 적(賊)이라 하고, 의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고 합니다. 잔적(殘賊)한 사람은 왕이라도 일개 필부(匹夫)에도 못 미칩니다. 저는 무왕이 도적보다 못한 주를 주살(誅殺)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군주를 시해했다고는 듣지 못했습니다.”
제선왕이 물었다. “탕왕이 걸왕을 추방하고, 무왕이 주왕을 정벌하였다는데, (정말) 그런 일이 있습니까?”
齊宣王問曰: “湯放桀, 武王伐紂1, 有諸?” 제선왕문왈: 탕방걸, 무왕벌주, 유저?
맹자가 대답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그런 일이 있습니다.”
孟子對曰: “於傳有之.” 맹자대왈: 어전유지.
(왕이) 말했다. “신하가 그 군주를 시해(弑)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曰: “臣弑2其君, 可乎?” 왈: 신시기군, 가호?
(맹자가) 대답했다. “인을 해치는 자를 일컬어 적(賊)이라 하고, 의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고 합니다. 잔적(殘賊)한 사람은 일개 필부[夫]라 합니다.
曰: “賊仁者謂之賊, 賊義者謂之殘, 殘賊之人謂之一夫. 왈: 적인자위지적, 적의자위지잔, 잔적지인위지일부.
일개 필부인 주를 주살(誅殺)했다고는 들었지만, 군주를 시해했다고는 듣지 못했습니다.
聞誅2一夫紂矣, 未聞弑君也. 문주일부주의, 미문시군야.
중국 고대 국가는 하나라 → 상나라 → 주나라로 이어졌다. 하나라는 전설적인 국가에 가깝다도 학계에서 보고 있지만, 상나라부터는 완연한 국가체제를 갖추고 있던 실제 국가로 인정한다. 상나라의 수도 은에서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상나라는 나라의 큰 일이 있을 때마다 거북 등에 글을 새긴 후 태우면서 그 갈라짐을 보면서 점을 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때 거북 등에 남겨진 문자가 바로 ‘갑골문’이다.
하나라의 마지막 왕이 걸왕이다. 언제나 그렇듯 역사에 기록된 한 왕조의 마지막 왕은 폭군으로 묘사된다. 민심을 잃은 걸왕을 치고 새로운 상나라를 세운 사람이 탕왕이다. 앞서 ‘여민락(與民樂)’ 문장에서 나왔던 ‘탕서(湯誓)’를 작성한 주인공이다. 폭군을 쳐 세워진 나라 상나라도 마지막에는 폭군이 등장한다. 주왕이다. 주왕은 못을 파서 술로 채운 후 그 위에 배를 띄우고, 못 가의 나무에 고기 안주를 주렁주렁 달아놓았다는 주지육림(酒池肉林)으로 유명하다. 역사가 언제나 망한 나라의 마지막 왕에게는 가혹한 평가를 남긴다는 것을 고려하면 꽤 과장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 주왕을 치고 주나라를 세운 사람이 무왕이다.
탕왕이나 무왕이나 왕에게 분봉받은 제후들이었으나 왕의 폭정을 물리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역성혁명(易姓革命, 왕조의 성을 바꾸어 천명(天命)을 혁파하는 일)을 했으니, 한 편으로는 백성을 위해 새로운 왕조를 세운 공이 있고, 한 편으로는 모반을 꾀한 죄가 있을 수 있다. 이 문장에서 제선왕은 모반에 비중을 두고 질문을 하고 있다. 반면, 맹자는 걸주를 잔적(殘賊)이라 명명하며 역성혁명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맹자가 이렇게 역성혁명을 옹호했기 때문에 후에 강력한 왕권을 강조했던 명나라 주원장 같은 황제는 <맹자>를 금서로 삼고 맹자에 대한 제향도 금했던 일이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 말 조선을 건국하는 이념적 당위를 제공하여, 정도전 같은 조선의 건국자들이 사랑하는 책이 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맹자의 역성혁명 지지는 왕과 같은 권력자에게 비판적인 우리나라의 저항정신과 긴밀히 결합되어 왔다.
짧은 문장이지만 이 문장이 동아시아 정신에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게다가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은 더 크다. 오늘날 우리 민족이 불의한 권력에 대해 강한 저항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여기서 비롯되었다면 과장일까. 아무튼 조선조 이래 맹자의 혁명 정신이 우리 디엔에이에 녹아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제선왕은 모반이라는 관점에서 역성혁명을 보면서 걸주를 죽인 것에 시(弑)라는 단어를 썼다. 시(弑)는 아랫사람이 부모나 왕 등 윗사람을 살해할 때 쓰는 단어이다. 반면, 맹자는 걸주는 잔적에 불과하다면 그들을 죽인 것에 주(誅)라는 단어를 썼다. 주(誅)는 범죄자 등 마땅히 죽어야 하는 자를 죽일 때 쓰는 단어이다. 이미 단어의 선택에서부터 제선왕과 맹자의 시각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이처럼 같은 뜻이라도 어떤 글자를 쓰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이 한문의 묘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