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발음 이야기
우리나라 사림처럼 커피를 좋아하는 민족도 없을 것 같다. 성인 1인당 커피 소비량이 하루 한 잔보다 더 많은 405잔으로 프랑스에 이어 세계 2위이다. (2023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통계) 오늘은 커피에 대한 이야기이다.
커피는 고종 황제 당시 서구 열강의 영향으로 들어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 당시 이름은 커피가 아니라 가배(咖啡)였다. 왜 커피가 아니고, 가배인가? 커피라는 외국어를 음차한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음을 빌렸다면 발음이 비슷해야 하지 않나?
결론은 중국어로 음차한 것을 그대로 들여다 썼기 때문이다. 중국 발음으로 가배(咖啡)라는 한자를 읽으면 ‘카페이’가 된다. 커피하고 발음이 비슷하다. 먼저 서구 문물을 받아들인 중국에서 쓰던 한자를 그대로 들여왔는데, 우리식 한자 발음으로 읽으니 가배가 된 것이다.
우리 외래어 중 한자로 음차한 단어는 이런 식으로 발음이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그중에 다소 복잡한 사례가 그리스를 뜻하는 희랍(希臘)이라는 단어이다. 요새는 거의 쓰지 않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그리스인을 꼭 희랍인이라고 했더랬다. 왜 그리스가 희랍인가? 그리스의 옛 지칭이 헬라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어를 헬라어라고 한다. 헬라를 중국에서 한자로 음역한 단어가 희랍이다. 현재 중국어 발음으로는 ‘실라’이지만 더 옛날에는 ‘힐라’에 가까웠다. 중국에서 힐라로 읽히던 단어를 그대로 들여오니 헬라하고는 거리가 먼 희랍이 된 것이다.
정리하자. 가배는 중국어 발음으로 카페이라고 읽히는 가배(咖啡)라는 한자를 그대로 들여와 쓴 단어이다. 한글로 음차해 커피라고 했으면 될 것을, 한자를 주로 쓰던 구한말 엘리트 사이에 커피가 들어오면서 생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