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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두콩 May 31. 2023

멍을 찾아서

우리는 너무도 분주한 하루를 보낸다.

지난가을 토종앉은뱅이밀을 심었다. 계획은 300평 정도로 소굽장난하듯 하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2,000평 규모의 농지를 임대했다.


내가 가진 돈으로는 토지를 구입하는 것도 어렵고 집 근처에 땅을 구입하고 싶어 이리저리 찾아봤지만 동네에 개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누구는 보상을 얼마 받았다더라. 갑자기 땅값이 두세 배 올랐다며 사람들은 모이면 땅 값에 대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시에서 명석 삼거리 논을 매입하고 꽤 큰 규모로 야구장을 만든다고 했다. 나같이 운동경기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진주엔 프로구단도 없는데 난데없이 웬 야구장이지? 싶지만 사람들은 하던 일을 접고, 대형 카페를 오픈하고 이제 새로운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렇게 논과 논 안에 담긴 흙과 달팽이들. 이곳에서 먹이활동을 하던 쇠백로는 어쩌지 생각하며 하루해가 또 저문다. 사진가들은 이 시간대를 매직 아워라 하던가. 아름답다는 단어로도 부족한 찰나이다.


이래저래 수소문 끝에 밀 종자를 급히 구해 오고. 농민회 선배가 오셔서 트랙터 사용법을 알려주셨다. 흙더미에 파묻힌 농사용 폐비닐 몇 톤을 걷어 내고 땅에 밀씨를 뿌린다. 한 차례 비가 오긴 했는데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죽은 것처럼 엎드려 있는 이 밀알들이 과연 생명을 품고 있는 걸까? 일주일이 지나고 드디어 정체를 드러 낸 새싹. 푸르고 여린 것이 대지를 뚫고 나온다.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푸른 융단. 한참을 보고 있노라면 푸른 물결이 이내 생겼다 곧 사그라진다.


언제 이렇게 꽃 피우고 열매를 맺었을까? 여태 눈길을 주지 않았던 한 구석의 왕보리수나무. 알알이 붉은 심장처럼 춤추는구나. 나를 부르는 왕보리수, 한 마리 곰처럼 다가가 우적우적 왕보리수 열매를 마구 따먹는다. 씁쓸하고도 달콤한 이 오묘한 맛. 밀밭은 언제나 신비롭다.


이제 거둘일만 남았다 생각했는데 이웃 어르신께 밀 수확에 대해 여쭤보니 앞으로의 날씨가 관건이라고 하셨다. 밀알이 한창 영글어야 하는데. 햇빛이 짱짱하게 받쳐 주면 일부는 가능할 거고 이렇게 연일 내리면 차라리 갈아엎는 게 나을 거라고. 나흘 연속 비가 내리고 있으니 수확은 어려울 것 같다. 밀이 익어 가는 게 아니라 뿌리기 썩어서 누렇게 뜨고 있는 거였다니 ㅠㅠ조급해지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고성 오두산숲멍축제를 한다고 해서 잠시 다녀왔다. 기대한 ‘멍’ 보다는 거의 인간문화재급 저글링 장인을 만나고 올 수 있었다. 부산에서 활동하시는 오제욱. 다시 그의 공연을 보고 싶다. 피나는 연습이란 말이 떠오르는 시간이었다. 어찌나 박수를 많이 쳤는지 손바닥이 화끈 거린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멍을 빈집의 순간 구경하고 나오며 발견했다. 어느 가게 앞에서 히피 스타일 흰둥이의 진정한 멍 촬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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