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싶기 때문에
올해 2월부터 갑자기 영화를 보는 취미가 생겼습니다.
갑자기라는 세 글자를 구태여 붙인 이유는, 그동안 영화와 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려웠거든요. 보고 나서 무언가 멋진 감상평을 남겨야 할 것 같은데 떠오르는 말은 없고. 따지고 보면 열등감 때문이죠.
누구는 영화를 보며 미장센이 어떻고, 감독의 의도가 어떻고, 인물의 대사가 어떻고 등등 멋진 말을 늘어놓는데,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아름다웠다' '재미있었다' '이해가 안 간다' 뿐이라서요.
시작은 슈퍼배드 시리즈였어요. 귀여운 미니언들이 나오는 영화요. 날짜도 정확히 기억나요. 2025년 2월 8일. 우울한 날이었습니다. 뭘 해야 기분이 좋아질까 궁리하다가 '귀여운 걸 보자!' 생각했죠. 그렇게 슈퍼배드를 보고, 미니언즈를 보고, 미니언즈 2를 보고, 슈퍼배드 2, 슈퍼배드 3, 슈퍼배드 4까지.. 이틀에 걸쳐서 다 봤습니다.
그다음으론 해리포터 시리즈를 봤어요.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다는 걸 알고, 굳이 따지면 저도 해리포터 세대(?)이지만, 이상하게도 손이 안 가더라고요.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 편을 다 보게 됐죠. 재밌데요?
점점 영화에 재미가 붙어서 2월 한 달 동안만 약 서른다섯 편 정도를 봤고 3월은 지금까지 스무 편 정도 봤어요.
사람들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저는 단편소설을 보는 느낌이라 좋아하게 됐습니다. 단편은 밀도가 높잖아요. 짧은 시간 동안 주인공이 겪는 단절과 연결, 기쁨과 좌절을 나도 함께 겪을 수 있으니까 그 시간 동안은 다른 걸 생각할 틈이 없더라고요. 우울과 슬픔이 비집고 들어올 수 없었죠.
우리 모두는 마냥 좋은 사람도, 마냥 나쁜 사람도 아닙니다. 그게 제가 소설을 쓰는 이유이기도 해요. 사람을 단편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빙 둘러보는 것. 실제 생활에서는 좀 어려울지 몰라도 소설을 쓰거나 읽을 땐 그게 상대적으로 쉽거든요.
저는 주인공이 괴로워하는 걸 좋아해요. 물리적으로 고초를 겪는 것도 포함될 수 있겠지만, 그보단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면서도 결국은 타인을 위해, 세계를 위해, 혹은 자신을 위해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요. 그래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 감독 혹은 작가가 이 인물에게 어떤 시련을 주는지 주의 깊게 살펴봅니다. 그 인물이 시련으로부터 얻은 게 무엇인지도요. 원래부터 이랬던 건 아니고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생긴 버릇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도 좋아해요. 특히 나를 미워해도 남은 미워하지 않는 인물을 좋아합니다. 열등감이 심한 인물일수록 더욱 좋습니다. 스스로를 미워하는 인물이 수많은 갈등을 겪다가 결국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고, 그 끝엔 '난 이런 사람이야. 그렇지만 괜찮아' 하고 본인을 수용하는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소설 습작을 시작한 지 이제 8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한 것도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서였어요. 그 속에는 나도 타인에게 이해받고 싶다는 마음이 숨어있었겠죠.
자고로 창작자란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 등장하는 인물을 독자 혹은 관람객이 포용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걸 가장 우선순위로 둔 채 글을 쓰지만, 제 수준에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왜 제가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까 고민을 몇 번 해봤어요. 결론은 사랑이랑 관련돼 있더라고요. 사랑받고 싶어서 그래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누군가 사랑해 주길 원해요. 그러기 위해선 나도 다른 사람을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야겠죠. 그래서 그런 이야기에 자꾸 마음이 끌리나 봐요.
당신을 좋아하고 싶어요. 당신이 날 좋아했으면 싶어요.
그런 마음으로 우울한 날엔 영화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