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주차, 첫 초음파
늦게 알게 된 만큼, 우린 갑작스럽게 산부인과 병원을 찾아 방문하게 되었다. 아내는 전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느슨한 마음으로 잠들지 못하는 밤, 아내는 여러 산부인과 병원에 대한 검색으로 보냈다. 어느 의사 선생님이 친절한지, 경력이 오랜지, 인기가 많은지. 유경험자들이 남겨둔 소중한 기록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을 것이다.
아무리 철저하게 사전조사를 하고 준비를 한다고 해도, 긴장되는 마음의 템포를 낮출 수 있는걸까? 한껏 고개를 쳐든 감정이 조금이라도 가라앉아서 무게중심을 잡을 수 있었을까? 우리는 긴장되는 마음을 지닌 채 병원으로 향했다. 주차를 하고 입구에 들어섰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표정으로 대기 중이었다. 아기를 안은 채 앉아있는 사람도 있고, 당연하지만 이미 배가 많이 불러온 임산부들도 많았다.
산부인과라면 자연스러운 풍경이, 우리에겐 조금 낯설고 묘한 기분이 들도록 만들었다. 복도를 지날수록 마음이 더욱 상기되어 갔다. 이러한 '초진' 방문객들이 흔하다는 듯, 접수처의 응대는 따듯함이 묻어있었다.
‘A 선생님은 1시간 정도 대기 하셔야 해요’
아내가 간밤에 알아본 선생님은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으로 유명하신 분이었다. 덕분에 인기가 많았고 대기가 필요했다. 우린 대기실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 대화의 대부분은 이 소중한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의 우리의 감정상태에 대하여, 그리고 지금도 이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대화였다.
‘믿겨져? 어떻게 된 거지?’ 사실은 이 한 문장을 반복하기만 해도 대화가 지속될 정도로 단순한 대화 내용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만큼 우린 한 문장으로 서로의 많은 감정상태를 여러 단계에 걸쳐 나누었던 것이다.
1시간가량이 지나고, 간호사분이 다가오셨다.
‘A 선생님께서 수술에 들어가셔야 해서 1시간을 더 기다리셔야 해요’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객관적인 사실여부, 임신이 맞는지에 대한 공식적인 ‘선언’을 듣고 싶었던 아내와, 아내의 조급함과 김장감이 느껴지던 나에겐 퍽 불편한 말이었다. 그 덕에 우리의 초조함도 같이 늘어갔다. 간호사분께서는 빨리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다른 선생님을 연결해 주시어, 다음 순서로 진료를 받을 수 있게 조치해 주신다고 하였다. 기분 탓이었겠지만, 바뀐 선생님께도 진료 순서가 계속 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불편함과 조급함 때문에 1분 1초가 더더욱 길게 느껴졌던 듯 했다.
아기를 만나기 위해 처음으로 산부인과를 방문한 이 순간이 불편함으로 시작한다는 것이 불현듯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이 중요한 순간에 나쁜 감정이 뒤섞여 우리가 원한 색감이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 말이다. 설렘과 벅참 따위의 감정으로만 채우고 싶었다.
잠시 후 아내의 이름이 호명되었고, 드디어 진료실에 들어갔다. 아내의 건강상태에 대한 간단한 질의가 끝나고 곧바로 아내는 초음파실에 들어갔다. 나는 아주 잠시간의 대기를 했다. 어색한 적막이 흘렀고, 연륜이 묻어나는 선생님의 말이 들려왔다.
‘아유, 아기가 많이 컸네. 아빠도 들어오셔야겠어요’
9주 5일, 2.95cm, 2월 말의 예정일. 아기의 머리, 그리고 팔과 다리. 아기의 '형체'를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아기의 심장박동이 우렁차게 울렸다. 첫 진료의 순간이니, 나는 사실 아직 아기의 모습을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왜냐면 나는 첫 진료 때는 사람의 형체를 하지 않은 무언가를 볼 거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처음 마주한 우리의 소중한 비밀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버린 것이다.
내 표정은 어땠을까? 이 순간을 회상하는 아내는 그 초음파영상을 보는 순간도, 실감이 나지 않아서 자신의 뱃속이 아닌 남의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나는 아마 반쯤은 넋이 나갔던 것 같고, 반쯤은 신기함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던 듯하다. 얌전하지만 힘찬 심장박동 소리가 신기하면서도 고마웠다. 내가 아빠가 된다는, 내 아내가 엄마가 된다는 증거의 실체를 마주했다. 이 실체는 앞으로 우리의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될 것이다. 널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겠지.
처음으로 아이를 마주했던 순간은 사실 벅찬 환희라고 부를 순 없겠다. 기다려오고 기대했던 순간이라기보다는 '예상치 못한' 시기에 찾아온 아이였던지라 우리는 당장에 마음이 너무 급해졌다. 알아야 할 것과 준비해야 할 것, 당장 예약해야 할 것들, 신청해야 할 것들, 눈앞에 성큼 다가와버린 이 '과제'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벅찬 환희는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다가왔다. 그러니까, 당장에 느껴지는 감정은 놀람이나 급박함이나 긴장감이나 두려움이 될 수도 있지만, 감동스러운 감회와 벅찬 환희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과제를 마음속에, 머릿속에 안은 채로 병원을 나왔다. 그렇지만 한 손에는 우리 아기의 초음파사진을 쥔 채로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분명히 존재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말이다.
한줄정보 (임신 9주차)
1. 임신후 2달정도 지난 뒤면 태아는 이미 머리, 팔, 다리가 인식 가능한 수준으로 자라있다. 아기집부터 볼 수 있는 시기는 4~5주
2. 초음파검사를 통해서 태아의 크기로 임신 몇일차인지 계산된다. (9주 5일차였던 첫 진료 태아는 2.95cm 였다)
3. 산부인과 병원을 처음 방문하면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들을 수 있다. 병원측 상담 및 병원 내에서 근무하고 있는 보험사 직원을 통해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기본적인 정책들에 대한 안내를 들을 수 있다.
4. 병원의 첫 진료는 미리 예약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추후 진료부터는 예약을 해두어야 산모가 1~2시간 대기하는 불상사를 예방할 수 있다.
5. 첫 진료부터 아이를 출산할 병원에서 진료를 보면 연속성이 보장 되겠지만 꼭 그럴필요는 없다. 큰 병원일 경우 진료비가 조금 더 비싼 경우도 있기 때문. 소형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다가 출산병원은 옮기는 경우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