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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하여 #4] 죽는게 꿈이라 하였다 vol_1

읊조리던 고요한 비명과 울부짖는 날카로운 비명 사이에서

by Sylvan whisper

'죽는게 꿈이라 하였다'


힘들다거나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우리는 종종 ‘죽고싶다’ 라고 말한다. 나 스스로도 죽고싶다는 말을 쉽사리 사용해와서 이 말은 문자 그대로의 뜻으로 해석되지 못했다. 그동안의 나에게 이 말은 하느니만 못한 말이었다. 그러다 어떤 일로 인해서 이 '죽고싶다'는 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는 애석하게도 이를 대하는 우리의 일반적인 태도와는 달리 나 어둑한 사건이었다.


'죽는게 꿈이라 하였다'


나는 살면서 ‘죽고싶다’라는 말의 무게가 온전히 내 귀를, 내 가슴을 짓눌런던 경험이 두 번 있다. 각각의 경험은 서로 다른 주인공을 지녀서, 나는 두 명분의 '생'이 지르는 비명을 똑똑히 보고 들었다. 그 둘의 비명 중 하나는 차분했고 다른 하나는 울음이 섞인 웅얼거림이었다. 작은 소리가 크게 울렸다. 말의 겉모양은 던져진 조약돌처럼 작았는데, 퍼지는 물결의 파장은 넓었으며 요동치는 물결은 한 번으로 끝나지 못했다.


조금은 처절했던 하나의 울음은 내가 동고동락했던 룸메이트에게 찾아온 일이었다.




그 비명은 만취하여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벼랑 끝에 몰린 생은 고통을 뱉어내지 못해서 술을 삼켰다. 위태로운 그는 고통을 뱉어낼 요량으로 소리를 질러댔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뱉어지지 않는 듯 했다. 술을 들이켜도 그러한 고통은 마취가 되질 못한다. 술은 또 다른 독이 되어서 비명을 텅 비게 만들었다.


이러한 비명을 지르던 나의 룸메이트는 내가 대학교 생활 중에도 아주 가깝게 지내고, 내가 많이 의지하던 선배였다. 그는 내가 살면서 보아온 사람들 중 손에 꼽히게 유쾌한 사람이었고 또 그에 걸맞는 동적이고 흥미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불행은 느닷없이 찾아왔고 그 불행이 품은 어둠이 너무 짙어서 그의 앞날을 가려버렸다.


그는 어느날 갑작스럽게 송사에 휘말리게 되었다. 자세한 내막에 대해 묘사, 서술할 수는 없으나 그의 입장에서는 퍽 억울한 일이었다. 공무원, 군인에게 이 '송사'라는 것은 그 진위여부와 진실공방의 결과를 떠나서, 송사에 휘말려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많은 불이익이 따르는 일이었다. 송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진급누락, 심하게는 징계까지 인사상 불이익이 따랐다.


그에게 이러한 일은 군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이른 시기에 찾아왔다. 이 타이밍이 그에겐 아주 큰 독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임관 후 2~3년 복무를 하고 나면, 사실상 아주 질 나쁜 행위를 저지른 자가 아니라면 누구나 진급하게되는 계급까지도 그는 도달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그는 '모두에게' 주어지는 진급의 기회를 수 차례 빼앗겼다. 그의 후배도, 그 후배의 후배도 그 보다 높은 직급을 달았다. 그는 처음보는 군 동료들에게, 군 후배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매번 설명해야하는 곤욕에 시달렸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후배들에게 모욕을 당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나중에 그는 구구절절 설명하기를 포기했다. 설명을 포기하니 모욕이 늘었다. 결국 그가 받는 고통의 절대량은 줄지 못했다. 고통은 축적되어갔고, 그 축적되는 고통이 늘어날 수록 그의 입과 표정은 무거워져갔다. 푹 가라앉았다.


의무복무 기간에 의해 퇴직을 할 수도 없었다. 낮은 직급은 낮은 봉급을 의미했다. 또 낮은 봉급은 불투명하고 불안정한 미래를 의미했다. 어둠은 순식간에 유쾌했던 그의 삶을 뒤덮어 버렸다. 이는 끈덕지게 그의 운명을 옥죄었다.




‘죽고싶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목 매달아 죽으면 너에게 평생 트라우마겠지?’


어느날 그는 만취하여 방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와서는 이런 말을 뱉어댔다. 그르렁 가래침을 뱉어버리듯이. 끈적한 눈물을 흘리듯이. 뱉어낼 수 없는 공허한 고통을 토악질 하듯이.


그는 같은 말을 계속해서 읊조렸다. 만취한 ‘말’은 점점 소리가 작아졌다. 그러다 그는 내 침대 위에서 움츠러 쓰러졌다. 술기운에 빠져 잠에 들기 직전에는 미안하다고 했다. 그게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그의 처량한 마음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했다. 나는 그저 그의 침잠을 바라보았다.

읊조리던 비명의 무게만큼 늘어진 그의 몸은 푹 가라앉았다. 나는 그 조용한 비명의 무게를 가늠해보았다. 그가 겪고있는 고통과 앞날을 덮고있는 어둠의 무게를 생각했다. 공감할 수 없는 고통은 희뿌옇다. 나는 그것이 서글펐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옆에 있어주는 것 뿐이었다. 그의 '죽고싶다'는 말이 진실이 아닐거라 믿었지만, '만에하나' 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저 그의 생명이 정말로 사라지지 않도록 어쩌면 감시 정도의 역할이 전부였다.


술에 젖어 어둑하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도 그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못했다. 나는 지난 밤의 그의 비명을 모르는 척 했다. 그가 그날 밤의 일을 기억하는지는 모르지만, 다만 나는 없던 일처럼 지낼 뿐이었다. 퇴근 후 방에 돌아오면 어둔 표정의 그에게 평소처럼 운동을 하러 가자고 했다.

가끔 그가 다시 술을 찾을 때면 옆에 앉아 술잔을 하나 더했다. 한동안은 그날 밤과 같은 일이 반복 되었다. 그리고 나의 모르는 척도 반복되었다. 내가 바랄 수 있는 것은 그러한 반복 중에 그에게 가해지는 고통의 칼날이 무뎌지는 것 뿐이었다. 내가 그 칼날을 손댈 수가 없어서 기다림은 또 다른 고통이었다. 그의 고통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조용한 비명, 읊조림은 실체를 갖게 되었다. 어둑한 잠에 빠진 그가 어느날 부터는 잠꼬대로 날카로운 진짜 육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로인해 나의 공포 또한 실체화 되었다. 그날 이후였을 것이다. 내가 정말로 이 남자가 내 옆에서 사라지지 않게 해달라며 하늘이던 절대자이건 그 누군가에게 빌게 된 것은.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자를 찾았던 것이다. 내가, 내가 무조건 그의 옆을 지킬테니 그가 엉뚱한 선택을 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는 죽는게 꿈이라고 했다. 내가 눈에 밟혔던 걸까? 그래서 그는 이루고 싶은 꿈이 아니라, 잠자리에서 만나는 다른 꿈에서 계속 죽는 경험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지독히도 끔찍한 장면을 본게 아니라면 그렇게 날카롭고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는 잠꼬대가 가능하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다행히도 그는 수년이 지난 지금,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당사자에게도 말못할 그와의 이러한 경험은 내가 종종 '삶의 고통'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때의 나는 그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을까? 그저 존재하고, 그저 기도했던 나였다. 몇 년이 지나야 그와 이날의 일을 이야기해볼 수 있을까?


'죽는게 꿈이라 하였다.'


그는 죽는게 꿈이라 하였다. 나는 그가 죽지 않는게 꿈이었고.


살아간다는 것의 고통은, 찢어지는 비명과 같은 꿈을 갖게 만들 수도 있다.


나는 이따금씩 그의 비명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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