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싶은 이유, 살아가야할 이유
'중대장, 직속 행정 부사관 한 명 쓸래?'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던 내게, 대대장이 갑자기 와서 물었다.
순진했던 나는 이 말에 담긴 대대장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이는 겉으로 보기엔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내 업무를 보조해 줄 인력이 한 명 생기는 일을 마다할 이유가 있었겠는가. 나는 대대장의 제안을 곧바로 수긍하였다.
이상했던 점은, 대대장은 이미 누가 그 역할을 할지 정해놨고 면담까지 끝마친 상태였다. 사실상 모든 결정을 해둔 상태에서, 내 의사를 묻는 행위를 형식적으로 거쳤던 것이다. 그렇게 제안을 가장한 지시에 의해 내 중대장 사무실에는 책상이 하나 더 놓이게 되었다.
비교적 단순하고 루틴한 업무를 골라내었다. 나는 중대장으로서의 주요 업무들을 처리하고, 내가 그 업무에 집중하는 동안 산발적인 기타 업무들을 그에게 맡길 수 있게 업무를 나누었다.
그와의 첫 만남, 첫인상은 딱히 인상적이진 않았다. 이른 나이에 군에 입대하였음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의 얼굴엔 군데군데 여드름이 나 있었다. 교정을 하고 있는 입이 조금 튀어나와 있었고, 키가 좀 작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킬킬거리는 웃음소리가 특이했다. 나와 지내는 동안 잘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그의 웃음소리가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유도를 했기에 운동을 좋아했다. 내가 맡긴 업무들도 무리 없이 소화해 냈고 성실함을 보이며 도울 건 더 없는지 먼저 묻기도 했다.
그렇게 나와 함께 사무실을 나누어 쓰게 된 그는, 내가 중대장으로 지내는 3년 동안 항상 붙어 다니는 친구가 되었다.
대대장이 내게 선심 쓰듯 얘기했던 나의 '직속 간부'에 대해서 대대장은 아무 언급을 하지 않았다. 원래 하던 업무에서 왜 갑작스럽게 배제 하였는지, 왜 나와 붙어서 지내도록 했는지 따위의 근본적인 사유 말이다. 그가 나와 같은 사무실을 쓰게 된 연유를, 나는 '그'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대대장은 그의 보직을 바꾸기 전에, 그러니까 내게 인력 충원에 대한 제안을 하기 전에 그와 먼저 면담을 했다. 그런데 그 면담은 그의 보직, 직책에 대한 이야기를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그의 '심리상태'에 대한 면담이었다.
그는 차에서 번개탄을 피워 죽으려 했었다.
중대장 시절, 나는 꽤나 많은 '역할'을 해야 했다. 장교 인력이 부족했기에 행정계장과 중대장을 동시에 맡았다. 이때 행정계는 어떤 '둥지'같은 역할이 있었던 것 같다. '행정병' 중 한 친구는 자해를 일삼는 친구였다. 정신과 약물을 정기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병사였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의 병사까지 총 두 명의 행정병이 있었는데, 다른 한 친구는 행정계가 아닌 작전부서에 있다가 보직을 옮겨온 이력이 있었다. 그 부서에서 적응을 하지 못해 다른 대대원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소위 말하는 '왕따'에 가까운 친구였다.
대대의 궂은일과 살림살이를 이끌어가는 행정계 업무와 이 두 병사에 대한 관리까지 해야하는 곳이 바로 행정계였다. 그래도 이를 함께 헤쳐나갈 행정부사관이 하나 있었는데, 이 간부는 더더욱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는 흔히 말해 군 생활에 '잃을 게 없는', 진급이 막힌 상사였다. 그런 그에게, 이 조직에 대한 어떤 책임감이나 병력을 관리할 노력을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행정계는 보살핌이 필요한 이들이 모이게 되는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행정계의 장이었다.
이후엔 '중대장'의 직책까지 달아야 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대대장의 지시로 '직속 간부'를 얻게 되었다. 이 중대장 시절에 참 많은 이들을 돌보아야 했다. 나는 행정계장임과 동시에 중대장이었고, 행정계원들과 중대본부는 제 삶의 이야기가 아픈 인원들로 구성되었다. 게다가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면, 룸메이트 선배가 제 삶의 고통 속에 비명을 질렀다.(죽는게 꿈이라 하였다 vol_1)
이따금씩 그 행정계의 상사는 행정병들에게, 타 중대의 후배들에게 소위 말하는 '꼬장'을 부렸다. 술을 한 잔 기울일 때면 제 능력이 평가절하 되었다며 통탄했다. 자해를 하던 병사는 차라리 조용했다. 하지만 그 '조용함'에서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뚝뚝 흐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병사들은 조금씩 조금씩 더 큰 편의를 요구했다. '남의 집 자식'이었던 그들이 전역하는 날 생채기가 나지 않도록 해야 했다.
그 모든 인원들에게 항상 웃음으로 그들을 대해야 했다. 그들에게 난 항상 '당신네들의 편'이어야 했다. 절대적 지지를 보여주기란 퍽 어려운 일임을 나는 그때 알게 되었다.
이시절의 나는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들어주어야 했던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공통적으로, 어떤 '비명'이나 '절규'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들의 비명과 절규를 기만이라 치부하는 사람이 항상 존재했다. 혹자는 그 상사가 술을 마시고 내뱉는 말들을 단순한 투덜거림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 또한 제 삶에 대한 '한'이 담긴 농도 짙은 울음이었다. 행정병들에 대해서도, 조금이라도 군생활을 편하게 하기 위한 일종의 '꾀병' 혹은 '술수'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저마다 그들의 고통에 대해서 평가, 혹은 판단을 해댔다.
그렇지만 나에겐 그들을 돌봐야 한다는 역할이 있었다. 이러한 역할에도 여러 방식이 있겠지만,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곧 그들을 지지해 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방식에는 많은 에너지와 감정 소모가 필요했다. 여러 사람의, 여러 종류의 고통을 어루만져주는 것은 꽤나 위태로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내 직속 간부로 오게 된 그는 조금 달랐다. 오히려 밝은 모습을 보여주던 그와 나는 빠르게 가까워졌다.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항상 같이 식사를 하고, 조금 우정을 쌓게 된 뒤에는 체육관에도 같이 가서 함께 땀을 흘리기도 했다. 그는 결국 전역을 해서 다른 길로 나아가고 있지만 나는 지금도 그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10년이 다 되어가는 우정을 나누고 있다.
그가 내 옆으로 오게 된 이유, 그러니까 그가 죽음을 시도했던 사유와 그 시도 자체에 대한 묘사를 그로부터 듣게 되었다. 그의 '설명'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고통을 서술하는데, 감정이 없었다.
어느 날 그는 일을 마친 뒤 자차를 끌고 인적이 드문 공터로 갔다. 거기서 미리 사두었던 번개탄에 불을 붙였다. 차량에 연기가 채워져 갔다. 그는 좌석을 뒤로 젖혀 누웠다. 눈을 감지는 않았다고 했다. 모종의 이유로 인해 결국 그의 시도는 실패하였고, 내 옆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그는 참 덤덤하게도 말했다. 마치 관심없는 제 3자의 이야기를 그저 전달만 하는 것 같았다. 때문에 그의 이야기에 어떠한 반응을 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힘들었겠구나' 따위의 말을 꺼내기엔 영 분위기가 맞지 않았다.
그 시절 내 주변엔 이상하리만치 '죽음'을 울부짖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의 외침이 조금 달랐던 것은 여기서 온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서만큼은 서늘한 공포를 느꼈다. 그가 울지 않아서이다. 나는 무덤덤한 그의 표정과 말에서, 진짜로 이 사람이 언젠가 갑작스럽게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울음들이 가식적으로 느껴졌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릴 때, 내게 지배적으로 들었던 감정과 생각은 그들에 대한 연민과 행복에 대한 기원이었다. 깊은 회한을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울지 않던 그를 대면했을 때의 경우는 소름 끼치는 '불안'이었다.
나는 한동안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 불안이 그림자처럼 나를 계속 따라왔기 때문이다. 그는 때때로 다시 '시도'에 대해서 언급했다. 남들과는 죽음에 대한 시각이 달랐다. 다른 이들은 어떤 특정한 이유로 인해서 죽고 싶다고 했다. 그는 죽고 싶은 이유가 아니라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항상 무표정하고 높낮이가 없는 목소리로 말이다.
지금도 나는 그와 가끔 연락을 주고 받는다. 최근에는 만남을 약속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예전 일은 잊은 듯이 밝은 모습으로 이야기를 하고, 미래의 일들과 목표에 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덕분에 이제는 그와 대화를 나눌 때 예전과 같은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던 그때의 그를 종종 떠올린다. 그를 떠올리는 일이 이제는 불안감을 동반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조금은 특별했던 경험을 통한 작은 깨달음, 그정도의 기억의 편린이 되었다.
나는 때때로 그를 떠올리고, 그에 대한 회상을 마치고 나서는, 이 기억이 그리고 그가 앞으로도 평생 내 어떠한 감정도 건드리지 않는 조각으로 남아주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