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은 갈고 갈아도 둥글지 못하다
친구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가깝게 정을 나누던 친구를 잃고, 나는 알게 되었다. '하늘나라로 갔다'라는 말에 담긴 뉘앙스를.
아끼던 삶이 사라졌을 때, 우린 '죽었다'라는 말을 입에 담기 어렵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입에 담기엔 고통스럽고 역하다. 알 수 없는 비릿한 악취가 올라오고, 흙모래를 집어삼킨 듯 기분 나쁜 이물감이 입안과 목구멍을 잠식한다.
죽음이라는 것은 나와 관련이 적을 땐 단순한 사라짐과 같다. 그러나 그 대상과 나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죽음은 개념에서 실체로 점점 자라난다. 실체로 자라나는 과정에서 악의라도 갖는 것인지, 어떤 질병이 되어간다.
'죽었다'라고 말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우린 '하늘나라로 갔다'라고 말한다. 그래도 어딘가에는 존재해 주길 원하는 마음, 상실의 완곡한 표현, 당신의 죽음이라는 표현이 주는 고통, 현실부정과 같은 것들이 모여 죽음이라는 말을 다시 정의했다.
그래서 나도 내 마음대로 말했다. 어디에 있을지 모를 친구를 하늘나라로 보냈다.
어느 주말의 아침, 한 통의 전화로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의 감정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목소리의 파장을 수화기가 다 담아내질 못해서 목소리가 이리저리 끊겨버렸다. 높은 톤의 목소리가 일정치 못했고, 울음소리인지 웃음소리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단순한 구별이 문제였던 게 아니라, 도무지 어떤 감정인지 종잡을 수 없는 파열음에 가까웠을 정도로 그 목소리는 무너져 있었다. 그만큼 상대의 말은 어떤 강력한 감정에 의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치고 있었다.
나는 겨우 두 단어를 들을 수 있었다. '뇌출혈'이라는 단어와 내 친구의 이름이었다. 나는 바로 내 친구의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교적 차분하게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는데, 이번엔 내가 온전치 못한 감정으로 요동치게 되었다.
그날은 오랜만에 볕이 잘 드는 날이었다. 나는 창밖의 햇빛을 보며 잠시 생각했다. 새들의 우는 소리도 들렸다. 산뜻하게 가벼운 지저귐이었다. 얕은 바람이 불어서 창 밖으로 보이는 나뭇잎에 햇빛이 바스러졌다. 이런 진부한 단어들로밖에 표현이 되질 않는 그런 평화로운 날씨였다. 요 근래 주말만 되면 날씨가 흐리다며 불평을 하곤 했는데, 오랜만에 찾아온 맑은 주말이었던 것이다.
동생과 했던 통화의 내용을 곰곰이 되짚어 보아도 단편적인 단어만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그 단어의 조각을 짜 맞추어 상황을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동생의 설명이 믿어지지 않았기에, 전해지는 사실들이 허공을 부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들이 실체화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단어들의 존재감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다. '뇌동맥', '병원', '가망이 없다' 따위의 단어들이었다. 지독한 존재감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소식을 들은 이후부터 머릿속이 온통 하얗다. 전화를 받은 그날은 허공을 바라보기만 했고 어떠한 말도 입에 담지 못했다. 내 시선이 머물었던 배경과 사물들이 여럿 있었는데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동생과의 통화를 끝내고 집에 함께 있었던 연인에게 어떤 말들을 내뱉었는데, 이 또한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만큼 그날의 내 기억은 공하다. 주말만 되면 날씨가 안 좋아 불평하던 내게 오랜만에 찾아와 준 맑은 날, 그런 날에 내 친구는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내 친구는 전조증상도 없이 갑작스레 쓰러졌다. 그 뒤로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이전에도 이모를 비슷하게 하늘나라로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오버랩되어 친구의 모습이 그려졌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쓰러진 친구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는데, 이모가 누워있던 응급실의 풍경과 사그라져가는 생명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 전화기 너머로 전해져 온 소식은 ‘죽음’이 아닌 '쓰러짐'이었는데, 나는 이미 알았다. 기적이 아닌 이상 이것은 죽음 아니면 죽음만도 못한 생이라는 것을. 볕이 사그라지고 날이 어두워진 후 나는 술잔을 들었다. 두병을 비워갈 즈음, 같이 어울리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그 친구는 밖을 걷고 있다고 했다. 나는 방에 홀로 앉아 술잔을 비우면서, 친구는 하염없이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럼에도 우린 모두 그 녀석이 '죽는다'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비록 나는 이 사건의 결말이 이미 죽음으로 거의 수렴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쓰러진 친구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니 점점 상실이 실체화되었다. 실체화된 상실은 울음이 되어 흘러나왔다. 술을 삼키면서 눈물을 몇 방울 흘렸다. 평소와는 달리, 소주 2병을 다 비워도 취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독을 마시면서 어느 즈음에 눈물이 멈췄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언제 한숨을 멈추었는지, 언제 술잔을 내려놓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맑았던 주말이 끝나고 다음날 나는 병이 났다. 숙취의 메스꺼움은 몇 번의 토악질로 뱉어낼 수 있었는데, 상실은 토해낼 수 없었다. 휴가를 냈고 창문과 커튼을 모두 닫았다. 그렇게 잠을 청했다. 날이 따듯해지는 계절이었는데, 나는 한기를 느꼈다. 요동치는 울렁거림이 쉽사리 가시질 않았다. 술기운인지 상실인지 그 원인이 모호했다. 간헐적으로 친구가 떠올랐다. 쓰라림이 머리를 긁어댔다. 특정할 수 없는 울림이 머릿속에 계속해서 이어졌다.
다음날엔 출근을 하였다. 아끼던 사람을 잃은 자에게 일상은 가혹한 것이었다. 가느다란 시선은 복잡한 세상 속의 실재하는 사물을 응시하면서도 그 속에서 허공을 보았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다시 술을 찾았다. 술기운이 아니라면 잠에 들 수 없을 것을 알았다. 간간히 친구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다. 숨만 붙어있던 친구는 점점 죽음으로 향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던 내게도 친구의 죽음이 점점 실체화되어가니 텅 비어버렸던 나는 축축하게 젖어갔다. 술기운을 빌리지 않은 밤엔 잠에 들 수 없었다. 아끼던 사람을 잃은 자에게 일상은 가혹한 것이고, 죽음이라는 말을 속으로 삼켜본들 진실은 냉혹했다.
친구는 결국 하늘나라로 떠났다. 이모와는 달리 비교적 짧은 기간에 공식적인 죽음이 선고되었다. 28살의 일이었다. 친구가 죽었다.
며칠 사이 몸이 급격히 나빠졌다. 술에 취해 잠들거나 그렇지 않은 날은 잠에 들지 못했으니, 무너진 정신에 몸까지 금이 간 것이었다. 다음 주말까지 남은 이틀, 나는 다시 휴가를 냈다. 친구의 비보를 전해 듣고 난 후의 1주일, 술과 울음, 무너진 몸과 마음으로 1주일을 채웠다.
친구는 생전 본인의 의지대로 장기기증을 한 뒤 화장되어 가루가 되었다. 작은 유골함에 담긴 친구를 보기 위해 장례식이 끝나고 겨우 납골당을 찾았다. 그 속에 놓인 사진들 속 친구의 모습은 한결같이 해맑았다. 친구가 사진 속에서 웃는데 그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나는 울었다. 멍하니 유골함과 사진들을 바라보다 반나절이 흘렀다. 조용하게 흘러가는 그 시간 속에서, 가만 생각해 보니 친구는 내 삶의 중요한 순간들에 꼭 함께 해주었다. 그런 녀석의 가는 길을 함께 해주지 못했다. 이 한스러움은 이제 내가 평생 지고 갈 짐이 되었다.
몇 주동안 여럿 울었다. 이 장마 같은 울음으로 나는 무너져 내렸다. 이번의 죽음은 견고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이 장마는 내 응어리는 씻겨내지도 못했으면서, 응어리를 담고 있던 나는 무너지게 했다. 상실은 아무리 갈고 갈아도 둥글지 못하다. 네덕에 나는 원치 않던 깨달음을 얻었다. '하늘나라로 갔다'라고 말한들 너는 돌아오지 않고, 내 무너짐도 바로 서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린 떠나간 누군가를 떠올릴 때면 하늘나라를 생각한다. 아무리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거짓을 내뱉어봐야 '죽음'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더라도 말이다. 이건 어떤 발버둥일 수도 있고, 그저 사라져 버린 누군가를 상상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일지도 모른다.
나도 다른 누군가에 의해 하늘나라로 보내졌을 때, 너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