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 바, 명도와 채도
우린 항상 셋이 어울렸었다. '나머지'가 되어버린 우린, 둘이서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하긴, 한 잔만 마셔도 취해버리던 너는 그때도 술은 입에 대지 않았기에 둘이서 먹는 술, 그때와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처음엔 너와 함께 셋이서 만날때와 같은 이야길 나누었다. 요즘의 우리가 무얼 하고 사는지 따위의 이야기들. 그때와 다를 바 없는 술자리였으니까. 그렇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니 한숨을 섞어가며 네가 있을 때 우린 어땠는지에 대해 떠들어댔다.
아주 조금 취한 채로 우린 평소 즐겨 찾던 LP바로 향했다. 원래도 입담이 좋은 친구 녀석은 LP 바 사장님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다시 예전과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네가 있을때와 같은 분위기를 찾듯 네가 아닌 이야기거릴 찾았다. 정치인 누가 무슨짓을 했고, 또 다른 누군가의 업적이 어떻다 따위의 이야기였다. '오늘 꼭 그딴 얘기를 해야겠어?'라고 생각했다가, '그래 너도 잊고 싶겠지'라며 튀어 오르려는 마음을 잡아두었다.
'사장님 사실은 얼마 전에 우리 친구가 떠났어요'
LP 바에는 우리 둘, 그리고 사장님 뿐이었다. 덕분에 See you again, Knocking on Heaven's door 등 신청곡을 마음껏 틀 수 있었다. 우리가 듣고 싶은 음악들이 적힌 쪽지를 사장님께 드리고, 친구는 다시 사장님과의 토론을 시작했다.
가만 듣고만 있던 나는, 너의 소식을 듣고 난 후 며칠 동안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취할 셈이었다. 옛 추억을 떠올리기에도 시간이 부족했으므로 내일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사장님이 추천해 준 위스키를 맛도 모르고 계속, 홀짝거렸다. 친구의 대화가 뒷배경 소음처럼 아득히 멀어져 갔다. 점점 취해갈수록 이 느낌만은 분명해져 갔고, 흘러나오는 음악의 볼륨이 커져갔다.
그동안 한숨 같았던 내 눈물은, 그날 음악을 타고 절규처럼 터져 나왔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무용한 손짓이었다. 터지는 절규의 파열음은 보이지도 않는 사이에 사방으로 퍼졌다. 친구와 사장님의 아득했던 대화소리가 이내 멈추었다. 들썩이는 어깨와 양손이 전염이라도 된 듯, 친구도 제눈에 흐르는 눈물을 막으려 했다. 우리의 그런 손짓들의 노력이 무색한 밤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우정이 셋에서 둘로 줄었으니, 우린 나머지 한 명 몫의 목소리까지 대변해야 한다는 듯 더 크게 흐느꼈다.
사장님은 아무말 없이 위스키잔 옆에 티슈를 올려놓으시고는 볼륨을 올렸다. 음악의 멜로디에 파열음이 충분히 묻힐 수 있을 만큼 커졌다. 덩달아 우리의 곡소리도 자신감을 얻어 더욱더 크게 울려퍼졌다. 지하의 LP 바에서 울려 퍼지는 선율을 이불 삼아 제 몸을 꽁꽁 싸맸다. 어린아이가 무서운 꿈이라도 꾼 듯 말이다.
한동안 우린, 만나기만 하면 너의 이야기를 했다. 계절이 바뀌고 몇 번의 해가 지나가도 네 이야기는 계속 나왔다. 너의 이야기를 할 때면 우린 항상 우리의 감정으로 네 이야기를 장식했다. 눈물로 뒤덮었다가, 억울함이나 분노의 격변을 덕지덕지 붙이기도 했고, 나중엔 한숨들로 네 이미지를 데웠다. 그러다 결국엔, 새로운 소식이 갱신되지 않는 안부인사가 쌓여가는 것으로 네 이야기에 대한 장식은 마무리되어갔다.
1년, 그리고 2년, 점점 햇수가 쌓여갔다. 이제는 조금씩 '시간'을 '세월'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어색함이 사라져 갔다. 그 변화의 과정 중 어느 한 4월의 오후, 따듯한 날씨 속에서 너를 떠올렸다.
보통은 어떤 매개체로 인해 회상의 대상이 떠오르지만, 너는 그 반대였다. 불현듯 네가 떠오르면 나는 주변을 관찰하게되는 것이었다. '이 음악을 들으면 네가 생각나'가 아니라, '네가 떠올랐던 그날, 그 순간에 나는, 봄날 오후의 풍경을 보았어'와 같은 흐름이었다. 4월의 어느 한 오후, 거리의 사람들은 이제 벚꽃이 피는 시기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시간이 세월로 변해가듯, 불현듯 너와의 우정이 떠오르면 관찰하게 되는 것들이 쌓여갔다. 네가 떠올라서, 네가 떠오른 순간에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이 점점 쌓여갔다. 너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평범한 일상들에 녹아들어 갔다. 그리고 어찌나 많은 장면들이 쌓였는지, 네가 생각나는 빈도가 점점 줄어갔다. 기억 속 너의 명도나 채도까지도 점점 약해져 갔다.
이제 네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조금은 무덤덤해졌고, 울지 않을 수 있게 된 지 오래되었다. 상실이란 건 그런 거다. 그땐 슬펐고, 지금은 아프다. 아무것도 잃지 않은 지금은, 슬프지 않아 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