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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하여 #3] 추락(墜落) 下

나는 편안하지 않은 안도를 느꼈다

by Sylvan whisper


‘젠장할, 저거 뉴스 속보! 저거 아니란 말이야!’


TV 화면으로 뉴스 속보가 나왔다. 2명의 조종사가 모두 사망했다고 알렸다. 이는 공식적으론 확인되지 않은 사항이었다. 고개를 파묻고 있던 비행대대장은 벌떡 일어나 마치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듯 탄식을 질렀다. 하지만 그의 비명은 짧았고 이내 다시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묻었다. 파르한 몸의 미세한 떨림은 감출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얼굴 표정은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주위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아마 모두가 느꼈을 것이다. 그는 말하지도, 얼굴을 보이지도 않았지만 강력한 감정을 뿜어내고 있었다.


정확한 사실이 밝혀지기 전이었기에, 뉴스의 헤드라인은 수 차례의 수정을 거쳤다. 그렇다고 해서 ‘사망’이라는 단어가 비행대대장에게 박혀버린 것을 다시 뽑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뉴스의 헤드라인은 수정되기를 반복했지만 '진실'은 점점 일정한 방향으로 수렴해갔다. 야속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공식적으로 우리 공군에서는 조종사 2명 모두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비행대대장은 이후 아무 말이 없었다. 인사행정처장과 단장은 사망 후의 수습 절차를 밟아갔다. 가만히 앉아 이를 듣던 나는 우울감이 전해주는 무기력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두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두 죽음은 이미 수많은 타인의 생에 꽤나 큰 파급력을 전하고 있었다. 우리의 두 동료가 생을 마감했다. 산화한 조종사들의 핏줄은 아마 절망에 휩싸였을 것이다. 다른 누군가는 책임감에 짓뭉개졌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혼란스러운 모두를 휘어잡아 지휘를 해야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무기력함을 배웠다.


운명 앞에 ‘생’은 무기력하다. 죽음은 이미 일어났고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무기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날 알 수 있었다. 공포를 동반하고, 슬픔을 머금은 감정으로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게 하는 것이었다. 내지를 수 없는 비명은 밖이 아닌 내 안으로 향했고, 이는 곧 응어리로 만들어져 스스로를 가라앉게 만들었다.




모두가 무언가에 열중하고 떠들어댔다. 상황실의 그러한 열기는 줄어들 기미가 보여지 않았다. 나는 홀로 고요함 속에 모든 것을 관망하게 만들었던 그곳을 빠져나왔다. 다시 관제실로 향하여 사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관제사들을 보았다. 사고기를 직접 통제하던 관제사에게도, 바로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았던 관제사들에게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과연 내가 무슨 말을 한들 그들의 귀에 담길까 의문이었다. 무거운 공기는 모두를 짓눌렀다.


시간이 지나고 밤이 내렸다. 사실 시간은 느껴지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흘렀다. 정신을 차려보니 황혼이 지고, 어둠이 깔려와 있었다. 달빛이 밝았고 귀뚜라미가 울었다. 바람이 불지 않아서 작은 소리들이 잘 들렸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기다렸다. 무엇을 기다렸는지는 우리 자신도 모른채. 묘한 고요속에 침체되어있던 우리와는 달리, 야산의 항공기 추락 현장엔 수습 요원들이 바삐 움직였다.


그날 밤 나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서 항적이 기록된 레이더 영상을 계속해서 돌려 보았다. 항공기가 고도를 잃고 레이더 화면에서 사라지기까지는 몇 초가 걸리지 않았다. 아마 내 생에 가장 영향력이 큰 ‘몇 초’ 중 하나였으리라. 영상의 재생 버튼을 계속해서 누르던 손가락의 무의미한 반복을 멈추었다. 나는 허무함에 사로잡혔다. 오늘 내 행동들의 무의미함, 그리고 정지된 화면 앞에 앉아 내쉬던 한숨의 무의미함을 생각했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실소를 터트렸다. 운명 앞에 ‘생’은 무기력했다. 다시 한 번.




당시 4대의 전투기, 8명의 조종사가 기지로 귀환하고 있었다. 그날 우리는 두 명의 조종사를 잃었다. 그 중 가장 후미에서 비행 중이던 항공기가 추락한 것이었다. 그 전투기 편대의 명단을 확인하게 되었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말문이 막혔다. 사고를 면한 6명의 조종사들은 모두 내가 평소 알고 지내던 선후배들이었다. 학교 생활을 같이 했고, 불과 얼마 전에 술잔을 기울였던 선배도 있었다. 사고를 당해 생을 마감한 두 명의 조종사는 8명의 조종사들 중 내가 유일하게 일면식이 없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편안하지 않은 안도를 느꼈다.

그리고 그런 안도를 느낀 내가 불쾌했다.


그러나 나와 같은 방을 쓰고 있는 룸메이트 선배는 달랐다. 그는 조종사였고, 운명을 달리한 조종사와 같은 비행대대 동기였다. 그들은 '전우'였다. 그는 손을 벌벌 떨며 울었다. ‘운명’에 대한 분노를 쌓았다. 운명은 실체가 없어서 분노의 표적이 될 수 없었다. 표적 없는 분노는 필연적으로 제 스스로에게만 쌓이기 마련이다. 그러한 분노를 쌓게된 존재는 분노를 제 몸 안에서 태운다.


그들을 위한 장례는 부대장으로, 대구기지 안의 체육관에 마련되었다. 나는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장례식에 찾아가지 못했다. 영정 사진 앞에서 눈물과 함께 분노, 비탄 따위의 격한 감정들을 쏟아낼 사람들의 모습을 볼 자신이 없었다. 하여 나는, 홀로 그들을 생각하는 것으로 추모를 대신하였다.


룸메이트 선배는 늦은 밤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돌아왔다. 방에서 나갈때는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던 정복은 넥타이와 단추가 풀어 해쳐져 있었다. 낯빛이 붉었다. 그 붉은 낯빛이 술기운 때문인지, 온 몸에 붉은 슬픔이 차오른 탓인지 모를 일이었다. 다녀오셨냐는 물음에 그는 눈물로 대답했다.

우린 방 바닥에 주저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보다는 욕지거리가 섞인 곡소리에 가까웠다. 살면서 들어본 말 중 가장 끈적했다. 철퍼덕 하고 떨어지는 말들이 쌓여 방바닥이 늪처럼 변해갔다. 우정을 나눈 동기를 잃은 그의 지리멸렬한 감정에 대해서, 운명은 눈길을 주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사실에 다시 슬펐다.


두 생명이 추락했고, 두 생명의 죽음으로 인해 많은 인생에 파편이 튀었다.


사건을 관찰자적 입장에서 지켜보던 나는 무기력감에, 관제사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괴로움에 빠졌다. 비행대대장은 부하를 잃은 통탄에, 룸메이트 선배는 동료를 잃은 억울함에, 꺼져버린 ‘생’을 낳은 부모들은 제 살이 파먹히는 고통 속으로, 모두가 추락했다. 두 생명의 죽음으로 많은 인생이 추락했다. 모두가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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