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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하여 #2] 추락(墜落) 上

가장 시끄러운 고요함

by Sylvan whisper


18년 4월,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

F-15K가 추락했다.

두 생명이 산화하였고, 많은 인생이 변했다.

나는 그 비행부대의 관제중대장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었던 일상적인 오후가 지나고 있었다. 그저 조금은 축축하고 흐릿한 날씨가 흘렀다. 그러던 중에 오후의 고요함을 깨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사무실 문을 걷어차며 같이 근무하던 선배가 뛰어 들어왔다.


‘XX, 큰일 났다. OO야 너 당장 관제실로 튀어가’


선배는 욕설이 담긴 다급한 문장을 내던져버리고는, 본인 또한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어딘가로 도망치듯 급한 발걸음을 옮겼다. '항공기 사고'가 발생했다는 전달이었다. 사건의 긴박함으로 인해서 그가 내게 이 사실을 알리는 순간은 채 10초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이런 단 몇초는, 실제 대규모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실체화 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선배의 다급함과 사고의 긴박성은 욕설이 섞인 그의 표현과 단말마의 발길질에 담겨 전달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주변에 흐르던 나의 오늘은 너무나 ‘일상적’이었던 것이다. 창밖을 보니 대구기지 활주로가 보였다. 기이한 고요함이 흘렀다. 이날의 사고는 그때 내가 보았던 활주로의 기이함처럼 가까우면서 아주 먼 일이었다.


실체화되지 않은 긴박함과 모종의 두려움을 안은채 나는 관제실을 향해 뛰었다.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지 5분이 채 되지 않은 시간, 내 휴대전화는 이미 전화벨이 끊이지 않는 먹통이 되어 있었다. 수많은 전화를 받았으나 나 또한 그저 항공기가 추락했다는 사실만을 전해 들었기에, 이것 외에는 전해줄 말이 없었다. 수화기 양측의 모두는 답답함과 조급함을 느끼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니깐 알고 있는 건 다 얘기해 보라니까 이 새끼야!’


나는 그저 상황파악이 필요하다는 말밖엔 할 수 없었다. 작전사령부, 공군본부 혹은 또 다른 주요 상위 기관으로부터의 다급함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대게 이런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수많은 부서의 수많은 인물들에게 연락이 와서는 다그침을 당하기 마련이다. 이런 연락은 사실상 높은 확률로 소통의 오류와 허둥거림이 덕지덕지 묻게 되어, 꽉 막힌 억울함이 발생한다. 그러나 그때 그 순간의 나는 어떠한 생각도 나지 않았다.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관제실 입구에 도착한 순간 관제사가 상기된 표정을 지은 채 나오고 있었다. 추락한 항공기를 관제하고 있던 관제사였다. 이미 경험이 많은 관제사들은 바로 필요한 절차를 밟고 있었다. 관제사는 심리상태 검증을 받아야 했기에 군의관에게 가는 길이었다. 나는 그런 절차가 있다는 것도 모르는 새파란, 이제 막 감투만 썼을 뿐인 허울뿐인 중대장이었다.


관제실에 도착해서도 전화는 끊이지 않았다. 중대장이었던 나뿐만 아니라, 관제실 전체가 온통 전화를 받고 있었다. 일부 인원은 사고 당시의 교신상황을 기록, 분석하느라 분주하였다. 또 다른 인원은 신속히 보고되어야 할 기본적인 정황이 담긴 자료를 작성하고 있었다.

경험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1분 1초가 빠르게 흘러가는 그 공간 안에서 나는 각각의 일이 방해가 되지 않도록, 어깨너머로 상황을 듣는 것이 전부였다. 곧이어 대대장도 관제실에 도착하였다. 대대장은 도착과 함께 모두를 지휘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나도 비로소 상관의 지시가 떨어지자 곧바로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조종사와 관제사 간의 녹취록을 작성하고 레이더 영상을 녹화하였다. 자료 준비를 마친 뒤 대대장과 관제반장, 그리고 나는 서둘러 종합상황실로 향했다.




내 생에 가장 시끄러운 고요함이었다.


대구기지의 전 지휘관 참모들은 이미 상황실에 모여 모든 것을 모니터링 및 통제하고 있었다. 수많은 화면이 저마다의 정보들을 비추고 있었다. 가운데의 부대장을 중심으로 대대장, 참모들이 각 분야의 조치사항 및 계획사항들을 브리핑하기 위해 줄을 섰다. 그리고 각 대대의 실무자들은 필요한 자료들을 나르느라 상황실을 들락거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우린 추락 당시 상황에 대한 관제자료 브리핑을 실시했다. 브리핑을 마친 후, 나는 종합상황실을 나와 대기했다. 투명한 통유리창으로 상황실을 지켜보며 대대장의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도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실무자들의 수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관제’는 사고가 발생한 직후에 해야 할 것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우선은 ‘사고의 수습’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항공기 및 조종사 수색, 사고현장 통제, 언론대응 등 당장에 처리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은 이미 충분히 많았다. 때문에 그곳에서 나는 그저 멀뚱히 서서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다. 지휘관의 상황통제에 대한 우리 분야의 참모 역할은 대대장으로 충분했고, 당장에 발로 뛰어야 하는 일은 없었기 때문에 모두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기되어 있는 그곳에서 나는 홀로 고요했다.


내 생에 가장 시끄러운 고요함이었다. 또한 동시에, 가장 기이했던.




잠시 후, 대대장은 관제실에 가서 대대원들의 상태를 체크해봐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어수선할 수밖에 없는 '현장의 분위기'를 수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때문에 대대장은 중대장인 나를 상황실에 대리인으로 두고 관제실로 향했다.


그 종합상황실에 들어간다는 것은 내겐 사고의 또 다른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오고 가는 수많은 말들과 자료들을 직접 보고 듣기 전엔 느끼지 못할,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어떤 괴리를 느꼈다. 그곳에서 펼쳐지는 광경들이 나와 같은 공간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입체적인 화면을 보고 있는 듯 했다. 이러한 한 단계 벗어난 감정이입은 내가 감정의 폭풍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게 했다.

때문에 나는 그곳에서 어떤 관망, 혹은 관찰자처럼 작용했다. 슬픔과 처음 사고소식을 접했을 때 느꼈던 모종의 공포감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알 수 없는 감각이었다. 그것의 정체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단지 그때의 기억, 내 앞에서 펼쳐진 장면들과 여러 감정들이 담긴 음성들을 생생하게 보존할 뿐이다. 그 감정의 소용돌이에 직접 뛰어들지 못하여 관망하게 만들었던 그날의 내 위치는 역설적이게도 그날의 모든 것들을 더욱 날카롭게 내 안에 박힐 수 있도록 만들었다.




종합상활실 한쪽 구석 상단에 설치되어 있던 한 모니터 화면에서는 실시간 뉴스보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대대장의 대리자격으로 상황실에 있었기 때문에 각 대대장들 사이에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정확히 내 왼쪽으로는 추락한 항공기 소속의 비행대대장이, 오른쪽에는 인사행정처장이 있었다. 비행대대장은 고개를 파묻고 주저앉아 있었다. 인사행정처장은 단정하게 정복을 차려입고 지휘관에서 보고를 하고 있었다.

종합상황실에서 그가 홀로 정복을 입고 있었던 까닭은 추락한 항공기 조종사의 가족과 직접 대면해야 할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조종사가 생존했을 경우, 사망했을 경우 각각의 상황에 해당하는 절차를 보고하고 있었다. 조종사의 생존여부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 내용의 대부분은 조종사 사망 시 장례 절차와 유족과의 소통 절차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창 그의 차분한 보고가 이어지고 있던 순간, 혼잣말 같기도 하고 비명 같기도 했던 누군가의 말이 터져나왔다.


‘젠장할, 저거 뉴스 속보! 저거 아니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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