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aste of Things, 2024
어떤 이의 직업관에선 그의 인생관을 볼 수 있기도 하다. 영화가 시작하고,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새벽녘 밭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직접 기른 채소를 한 아름 안고 들어와 긴 호흡으로 재료를 손질하고, 한 음식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거듭 맛과 향을 정성스레 입히는 외제니(줄리엣 비노쉬)와 도댕(브누아 마지멜)의 모습에서 그것이 보였다. 요리를 업으로 하는 둘은 자신들이 먹기도 하겠지만, 누군가에게 대접하기 위해, 심지어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상관없이 정성스레 마법을 부린다. 맛에 고집을 부리며 먹는 이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꽉꽉 채운 코스란 있을 수 없다. 좋은 사람들이 곁에 많이 있다는 것이 그들의 긴 세월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일 테다.
20년이 넘는 세월 한 주방 안에서 함께 메뉴를 연구하고 요리를 했던 둘의 마음속엔 어느새 사랑이란 감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리로 만난 둘에게 첫 번째는 다름 아닌 요리였다. 그렇기에 침실보다 주방에서, 서로에게 조심하며 여태까지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슬픔보다 슬픈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영화가 그것을 담아낸 방식이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세련됐다. 자칫 바쁜 주방의 모습을 떠올리면 빠르게 전환되는 컷과 긴박한 상황을 스포츠처럼 역동적으로 표현하기 마련인데, <프렌치 수프>는 그런 와중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와 옷깃이 스치는 소리, 요리를 대하는 그들의 진심 어린 시선을 관객이 충분히 보고, 느끼고, 공감할 수 있을 여유와 공간을 롱테이크로써 마련한다. 요리를 대하는 정성이 느껴지게끔, 그것을 담은 카메라에서도 정성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요리를 대하는 시선만큼이나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둘의 감정일 것인데, 줄리엣 비노쉬와 브누와 마지멜은 20년 전 부부였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키스>(1999)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사랑을 표현했던 이들이 긴 시간 후에 다시 영화 안에서 만나 선보이는 호흡은 화면 밖에서도 많은 것들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영화의 오프닝부터 대규모의 코스 요리를 선보였던 둘의 호흡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스스로 “인생의 가을”이라 표현했던 도댕의 말처럼, 뜨겁게 타올랐던 주방의 불꽃은 꺼지기 마련이다. 열렬히 그것에 몰두했던 시간은 값지지만 끝나기 마련이고, 지나간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바로 어제까지도 마법을 부리던 주방에서 이제 겨우 밑그림 정도의 수준이 나올 수 있는 것일 테다. 하지만 도댕은, 그리고 <프렌치 수프>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겨울이 오면 다음에 봄이 다시 오기 마련이고, 다시 그것이 끝날 것임을 알면서도 그 시간에 자신을 던질 줄 아는 이들의 열정, 그리고 그런 삶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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