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레저왕스토리

by 레저왕

나라는 사람을 알기 위해 어렸을때의 난 어떤 사람일까 부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유치원시절의 기억들 부터 떠올리고 싶었다. 어렸을 때의 난 위인전을 많이 읽었다. 어쩌면 위인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위인들은 죽고 나서도 후대에도 이름이 기억되니깐 그게 참 부러웠다. 죽음이 무서웠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에 대한 어릴적 나의 고민은 꽤나 진중했다.


내가 다니는 유치원은 천주교 유치원이었다. 내 인생에 있어 처음으로 믿었던 종교가 천주교였다. 그 당시 난 종교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유치원의 문화를 받아들였다. 기도를 하고는 했다. 난 모두가 이런 유치원을 다니는 지 알았고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사는지 알았다. 유치원에 계신 신부님들과 선생님은 너무 좋았다. 부활절이 되면 이스터에그를 집에 들고가곤 했다. 유치원에서 오늘 뭘 배웠는지 엄마에게 말하고 아빠에게 말하고 누나들에게 말을 하곤 했다. 가족들은 막내인 나를 그저 귀엽게 바라봤던 것 같다. 가족 중 나를 제외하고는 종교를 믿는 사람이 없었고 내가 유치원에서 배워 온 이야기를 하거나 밥 먹기 전 기도를 하면 누나들이 웃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가 되면서 어째서인지 부처님 오신 날이 되거나 여행을 가곤하면 자연스레 절에 나를 데리고 가곤 하셨다. 불교 신자였던 할머니의 영향이 있었던 건지 절을 가게 되고 자연스레 불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했다. 염라대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시기도 하고 부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기도 했다. 내가 유치원에서 배운 다른 형태의 이야기였지만 불교도 좋았다. 특유의 조용한 분위기도 절의 냄새도 목탁을 치는 스님의 모습도 좋았다. 절을 하며 내가 아는 사람 모두가 오래오래 같이 살아달라고 기도했다. 내 기도는 ‘내가 아는 사람 아니 지구에 있는 사람 모두 아니 세계에 있는 사람 모두모두 행복하고 오래 살게 해주세요.’ 라는 기도였다. 7살 어린 생각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멋진 기도란게 그런게 아니였을까?


어느 초등학생들과 같이 빵을 먹으로 일요일이면 친구를 따라 교회를 가기도 하고 성당을 가기도 하였고 가족들과 함께 절을 가기도 했다. 이런 생활이 지속되자 종교들이 부딪히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종교를 떠나 철학적인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인생은 무엇인지 삶은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이 당시 죽음은 내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죽으면 천국으로 가는지 지옥으로 가는지 환생을 하게 되는지 아니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인지 죽음을 생각하면 무서워서 잠을 못자곤 했다. 불교도, 천주교도, 기독교도 다 믿어보았지만 내가 내린 죽음에 대한 해답은 결국 '알 수 없다' 였다. 혹시 '죽음이란게 남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거라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미치게 되자 나도, 사람들도 죽음을 무서워 하는 이유가 이해가 되었다. 그때부터 난 어떻게 내가 죽어도 오랫동안 세상에 기억이 될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나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장영실처럼 많은 발명품을 만들어낸다면 그 발명품을 보고 사용할 때 마다 사람들은 나를 기억하게 될테니깐 그리고 재밌어 보였다. 아마 초등학교 2학년 때 까지만 해도 내 꿈은 과학자 또는 발명가가 아니였을까. 이 후 고학년이 되면서 빌게이츠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꼭 발명가가 아니더라도 역사에 흔적을 남기는 방법으로 부자가 되는 것도 있구나란걸 알게 되었다. 이 후 난 부자, 사업가를 동경하게 되었다. 부자가 되면 친구네 삼촌처럼 세계 여러군데 출장이나 여행을 갔다와서 쵸콜릿이나 기념품을 사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 할 수도 있고 친구네 아빠가 타는 근사한 에쿠스라는 것도 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다. 꿈은 이루기 위해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품고 있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내 꿈은 크고 원대했으니깐 꿈을 말하기만 해도 그걸로 만족했다. 누구에게나 멋있는 꿈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원대하니깐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다. 꿈은 꿈이고 현재의 내 삶은 다른거였다. 그냥 친구들과 어울리는게 재밌었고 친구들하고 같이 다니면 어느 하나 무서울게 없었다. 친구들과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부모님이 갔으면 하는 중학교 1지망 2지망을 내 멋대로 수정해서 제출했다. 부모님이 보내고 싶은 중학교는 공부를 하고 따분한 학생들이 가는 곳이었고 친구들이 가자고 하는 학교는 대부분의 내 친구들이 지망하고 있었기에 그 중학교로 가고 싶었다.


중학교에 가서도 공부는 딱히 잘하진 못했다. 그냥 궁금한게 있으면 공부하는 스타일이었고 친구들이 학원을 다니게 되고 바쁜 친구들이 생기게 되면 학원을 가지 않는 친구들과 놀았다. 부모님도 그걸 잘 알고 계셨는지 내가 학원을 보내달라고 하기 전까지 딱히 억지로 학원을 보내진 않았다. 그 대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학원들은 보내주셨는데 그 경험들이 지금 나를 만드는데 참 많은 영향을 미쳤다.


태권도, 검도, 합기도, 라켓볼, 바둑, 서예, 미술, 속독, 영어회화 학원을 보냈고 내가 배우고 싶어하는 것은 언제든지 배우게 해주셨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서 찾게 만드려고 하신 것 같다. 아빠가 쉬는 날이면 아빠는 나를 데리고 낚시를 가고 가족들과 캠핑을 하고 전국팔도를 돌아다닌 것 같다. 스키캠프를 보내고 스키를 배우게 한 것도 방학이면 스포츠센터에서 수영을 배운 것도 다 부모님 덕분이었고 이러한 경험들로부터 내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 같다.


지금 쓰려하는 글은 나의 10대의 이야기도 20대의 이야기도 아니다. 많은 가치관이 변하고 많은 일을 겪은 최근 3년의 내용이다. 현재 나는 34살이 되었고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내 가치관의 일부는 어릴 때 그대로이지만 몇몇 가치관은 변했다. 누군가는 나에게 한결같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내가 많이 변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