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익캠프 생활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창업에 대한 마음이 커져갔다. 얼마 전 부산에서 만난 동민이 형과 태석이 형이 원인인듯하였다. 창업은 멀리 있는 것인 줄만 알았는데 호주에서 동거 동락하던 형들이 창업으로 장사를 하고 있으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울산 청년 ceo를 모집합니다”라고 적혀있는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울산 청년 CEO 창업 5기 지원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주말에 은영이와 창업에 대한 아이디어 회의를 하곤 했다. 은영이는 ULET모임에서 만났는데 브라우니 창업에 관심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3개월간 필리핀에 갔던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친구랑은 20살 때부터 사업에 대한 얘기를 나누곤 했기에 이 기회에 같이 준비하여 신청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사업에 대해서 정리해야만 했다. 스케치북을 꺼냈다. 그리고 UCS라고 적었다. Ulsan Culture Shock의 약자였다. 문화의 불모지인 울산에서 다양한 문화 발전으로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 아이디어는 ‘I♥NY’에서 발전됐는데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아이 러브 뉴욕’에 대한 일화를 읽다가 디자이너 밀턴 글레이저가 로고를 만든 것뿐만 아니라 뉴욕을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게 됐다는 생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태어나서 살고 있는 고향 울산이라는 도시가 세계적인 도시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복합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안에서 판매가 되어야 할 것 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가진 돈으로 매장을 얻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다. 호주에서 벌어서 엄마에게 줬던 돈 1500만 원을 사업을 명목으로 빌렸다.
“포터를 먼저 사고 그걸 일단 개조부터 하자. 한 3월까지만 맞춰서 하면 안 되겠나?.”
“되겠나?”
“되든 안되든 함해보자 언제는 돼서 했나? 경험이지 뭐.”
매장은 안되니깐 푸드트럭을 생각했다. 커피, 브라우니를 파는 푸드트럭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울산과 관련된 기념품을 팔고 싶었다. 푸드트럭에서 어느 정도 돈을 벌면 매장을 알아보면 될 것 같았다. 알아보니 해병대 동기인 종선이가 인천에서 중고차 딜러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친구와 함께 인천으로 향했다. 인천에서 포터를 구입하고 울산까지 운전해서 왔다. 이제부터는 포터를 멋있는 푸드트럭으로 변신시켜야만 했다. 부산에 특장차 업체를 알아보고 보내줄 시안을 그렸다. 어떻게 만들 것인지 하나부터 열까지 병구랑 아이디어 회의를 하며 시안을 만들었다. 윙바디식으로 열리게 만들기로 결정하고 콘셉트는 검은색과 노란색 베트맨 콘셉트로 하기로 하였다.
창업, 그리고 외국인 도우미로서의 활동, 그리고 푸드트럭 제작 프로젝트까지 많은 것을 동시에 하며 3학년을 맞이 하게 되었다. 푸드트럭 제작은 생각대로 잘 되었다. 경산에 가서 도색까지 끝냈다. 하지만 인테리어에서 한계에 부딪혔다. 결국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했다. 아버지께 말하자 청도에 한번 가보라 하셨다. 청도에 가자 목공일을 하시는 정용이 아저씨가 반갑게 맞아주셨다.
“아저씨 이 차로 푸드트럭을 하려고 하는데요. 여기서 선반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위에도 적재할 수 있는 선반이 좀 있으면 좋겠고요.”
아저씨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드렸고 아저씨는 다 만들어지면 연락을 준다고 하셨다. 2주가 흘렀다. 아저씨께 인사를 드렸다.
“어떻게 돼있을 거 같니?”
“멋있게 변신해있을 거 같은데요?”
“함 열어봐라.”
우리는 윙바디를 열었고 푸드트럭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와 진짜 멋진데요. 고맙습니다.”
“진짜 너무 멋져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외관에 베트맨에 나오는 명대사를 스티커 작업하였다.
“Why do we fall? So that we learn to pick ourselves up.”
(왜 우리가 넘어지는지 아니? 다시 일어날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란다.)
모든 게 다 갖춰졌다. 이제는 장사만 하면 됐다. 처음에는 이동식 카페를 만들려고 했지만 커피머신과 집기들이 너무 비쌌다. 재정상황에 맞고 울산에는 없는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러다 예전 동남아 여행을 하면서 봤던 봉지 음료수가 생각났다.
‘봉지칵테일!’
그리고 자료조사에 들어갔다. 봉지칵테일은 이미 시중에 나와있었다. 바닷가 근처에서도 판매되고 있었고 서울에서도 판매되고 있었다. 칵테일 메뉴를 조사했고 직접 만들어보며 레시피를 완성시켰다. 그리고 드디어 가오픈 첫날. 마지막 인테리어를 손보려고 했는데 차 배터리가 나가서 작업 못하고 한참을 있었다. 전화기가 꺼져서 또 한참을 헤매고 또 마지막엔 발전기 시동까지 안 켜진다.
“오늘 장사하기 전 액땜 다 치르는 건가?”
친구랑 말하고 있는데 다행히 가까스로 발전기 시동이 켜졌다. 드디어 진짜 가오픈을 하게 된 것이다. 역사적인 순간. 더블이를 타고 출동.(우리의 푸드트럭을 더블이라 불렀다.) 아무도 없는 대학로 길거리에 차를 대고 윙바디 한쪽을 열고 장사 준비를 했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는다. 한참 손님을 기다리다 조금 더 메인 거리로 이동했다. 오픈하고 장사를 하고 있는데 한 외국인이 지나간다.
“Try this. we gonna give u free drink.”
관심을 보이더니 와서 얘기를 시작한다. 뉴욕에서 왔고 푸드트럭 멋있다고. 오늘 가오픈이라고 봉지칵테일을 공짜로 주겠다고 친구들에게 많이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어진 손님들 덕에 시간 가는지 모르고 장사를 했다. 첫 장사 그래도 12만 원을 벌었다. 다음날 아침. 아침에 일어났더니 신기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후배 쏘야가 우리가 판매하는 칵테일을 사진 찍어 페이스북의 한 페이지에 제보를 했는데 좋아요가 1200여 개가 눌러진 것. 기적이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 먹기 시작했다. UCS의 첫 번째 프로젝트인 이 푸드트럭 프로젝트에도 이름을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밤에 나와 장사를 했고 베트맨처럼 힘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아주 간단하게 검은색을 상징하는 블랙 그리고 힘을 상징하는 파워를 붙여 블랙 파워(BLACKPOWER)로 이름 지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블랙 파워는 흑인 민주화운동을 총칭해서 부르는 말이었다.
블랙 파워 장사는 재밌었다. 그리고 UCS를 위한 발판이 되었다. 그러던 중 신고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차에서 술을 팔아요’,‘미성년자한테 술을 팔아요’ 등 갖가지 신고가 들어와 장사를 못하게 되었다. 울산대에서 삼산 삼산에서 일산지로 이동하면서 장사를 이어 나갔지만 이렇게 까지 장사를 해야 되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