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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한 여행자 May 26. 2023

자전거의 속도

자전거를 타는 정도의 속도로 살아가고 싶다

시작 한지 한 달 남짓된 새로운 취미가 있다. 바로 아침에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이다.


5~6년 전에 자전거를 타보려고 비앙키(Bianchi) 자전거를 하나 구입해 놨었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처박아 두다가 한 달 전 즈음에 날씨가 너무 좋아 문득 자전거를 한 번 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강으로 자전거를 끌고 나가 타 본 이후로 미세먼지 농도가 높거나 비가 오는 날이 아니면 매일 출근 전에 30분 정도 자전거를 타고 있다.


지금 사는 곳은 아파트 후문으로 나와 나들목만 건너면 바로 한강공원이어서 자전거를 타기에는 최적의 환경이었는데 이사 온 지 1년 6개월이 되고서야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주로 아침 7시 40분에서 8시 사이에  자전거를 타러 나가는데 평일 그 시간에도 한강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 달리기를 하는 사람, 걷는 사람이 무척 많다. 다들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  


자전거를 타면서 제일 좋은 것은 자전거를 타면서 느껴지는 바람이다. 너무 강하지 않게 온몸을 감싸듯 지나가는 딱 적당하게 기분 좋은 그 바람. 아마 이 느낌 때문에 자전거를 계속 타게 되는 것 같다.




아주 오래전에 봤던 영화 중에 멕 라이언(Meg Ryan)과 니콜라스 케이지(Nicholas Cage)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시티 오브 엔젤(City of Angels)>라는 영화가 있다. 빔 벤더스 감독의 <베를린 천사의 시>를 리메이크한 작품인데 죽은 자의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는 천사인 니콜라스 케이지가 심장외과 의사인 멕 라이언을 사랑하게 되어 영원의 삶을 포기하고 인간이 된다는 그런 내용의 영화이다.


그 영화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멕 라이언이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고 오던 길에 두 팔을 벌리고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면서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다. 그러다가 트럭에 치여 죽게 되지만 자전거를 타면서 짓던 멕라이언의 표정만큼은 자전거를 타면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보여준다.   




자전거를 타면서 느껴지는 이런 기분 좋음 때문에 여행을 가서 기회가 되면 자전거를 한 번씩 타고 온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12년 9월에 캐나다 밴프(Banff)에서 아침에 선선한 공기를 가르면서 로키산맥 자락에서 자전거를 탔던 순간과 2016년 9월에 미국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에서 자전거를 타고 피어39(Pier39)에서 금문교(Golden Gate Bridge)를 지나 소살리토(Sausalito)까지 갔던 순간이다. 금문교에서 소살리토로 이어지는 내리막에서의 느꼈던 기분 좋은 속도와 바람은 아직도 생생하다.  시티 오브 엔젤에서 멕 라이언이 했던 것처럼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리고 타고 싶었지만 그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참았던 기억도 난다.


이렇게 자전거를 탔던 곳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 아마 자전거를 타면 오감(五感) 모두를 통해 기분 좋음을 느낄 수 있어서 보다 더 강렬하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일 것이다.    




자전거를 타면서 문득 내 인생도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든다.


비행기나 자동차를 타고 가듯 너무 목표지점까지 쉽게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온 힘을 다해 걷거나 달리는 것처럼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내 스스로의 힘만으로 너무 애쓰면서 살지도 않는 그런 삶 말이다.


페달을 돌리는 것은 오롯이 내 힘으로 해내지만 자전거라는 도구의 도움으로 내 두 다리의 힘만 가지고 달리는 것보다는 조금 수월하게 갈 수 있고, 오르막을 오를 때는 조금 힘들고 어떤 때는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가게 될 수도 있겠지만 내리막을 갈 때는 이에 대한 보상으로 페달을 멈추고도 기분 좋게 빨리 갈 수 있는, 그러면서도 지나가는 길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지 않는 그런 삶이었으면 좋겠다.


2020년 10월에 갔던 양평 두물머리. 언젠가 자전거를 타고 두물머리까지 한 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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