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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Nov 24. 2018

Cinerama 초콜릿 팝콘

시애틀 맛집

좋아하는 팝콘은? 이미 버터로 노랗게 튀긴 팝콘에 버터 토핑을 또다시 얹은 그래서 먹기에 죄악스럽게 느껴지는 팝콘? 카니발이나 페어에 가면 종종 찾아볼 수 있는, 먹다 보면 달달함에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는 캐러멜 팝콘? 단맛과 짠맛이 오묘하게 버무려진 케를콘? 하얀 팝콘에 하얀 소금 맛만 낸 그래서 먹다 보면 염분 때문에 입술이 쪼그라들기 시작하는 짠맛 나는 팝콘?



최근에 섭렵한 기막힌 팝콘이 하나 있는데 가히 팝콘계의 킹이라 부를 만하다. 이름하여 초콜릿 팝콘. 초콜릿을 덧입은 음식 중에 맛이 없을 수 있는 게 별로 없지만, 팝콘과 초콜릿의 조화가 상상을 초월한다. 정말이다. 아직 대중적으로 되지 않은 게 신기할 뿐이다. 초콜릿 팝콘에 대한 전매특허라도 있단 말인가?


초콜릿 팝콘은 일단, 초콜릿 좋아하는 사람과 팝콘을 좋아하는 사람이 모두 좋아할 간식이다. 아니다. 팝콘을 싫어하는 사람도 좋아하게 되고, 초콜릿에 별 관심 없던 사람도 좋아할 수 있는 팝콘이 아닐까? 나처럼 팝콘도 좋아하고 초콜릿도 좋아하는 사람에겐 돌이키기 힘든 중독성이 있으니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중독성 있는 맛에 비해 시중에 널리 판매가 되고 있지 않은 이유는 조사해 보고 싶을 정도로 궁금하다.  


이 팝콘은 시애틀 시네라마 극장에서만 판매한다. 이 극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초콜릿 팝콘만 유명한 게 아니라 1개가 아닌 3개의 시네라마 패널 필름과 70 mm 필름을 상영할 수 있는 세계에서 찾아보기 드문 극장 중의 하나이다.  단 한 개의 상영관으로만 운영하는데 주로 클래식 영화나 할리우드 첫 개봉 영화를 상영한다. 지난여름 톰 크루즈가 열연한 미션 임파서블 풀 아웃을 이곳 영화관에서 봤었다. 지난주에 상영을 마친 영국의 전설적 록그룹 퀸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94피트 길이의 커브가 진 시네마라 스크린과 선명한 화질의 레이저 프로젝션을 이 극장에서 보지 못한 게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다시 초콜릿 팝콘으로 돌아가자면, 초콜릿 팝콘은 이 극장이 아니고 평범한 주변 Regal 극장이나 AMC 극장에서 초콜릿 팝콘을 구경해 본 적이 없다. 이 극장에서만 판매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적어도 시애틀에서는 시네라마 극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팝콘이다. 나도 시애틀 다운타운에 와서야 그리고 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서야, 초콜릿 팝콘이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으니까. 초콜릿 팝콘도 그렇지만, 시애틀 지역에 사는 사람들조차 1963년도 처음 문을 연 지역의 랜드마크인 이 시네라마 영화관을 잘 모른다. 그러니 그곳에서만 파는 초콜릿 팝콘 맛을 볼 수 없었으리라.


심지어 영화관 입구에는 초콜릿 팝콘에 대한 사인이 붙어 있다. 영화 티켓 구입 없이도 초콜릿 팝콘을 살 수 있으니 주저말고 팝콘 먹으러 영화관으로 들어오라고. 그래서 나도 이 극장에서 영화를 본 건 이제껏 딱 한 번뿐이었지만, 초콜릿 팝콘은 서너 번 정도 사 먹었던 것 같다. 심지어 어제는 Regal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네마라 극장에 들러 팝콘을 사 먹었다. 극장 문은 주변 안전을 위해 항상 잠겨 있는데 팝콘을 살 테니 문을 열어 달라고 박스 오피스에 가서 사정해야 하는 게 쪼금 미안하긴 하다.


초콜릿 팝콘의 맛을 설명하기에 앞서 그 비주얼을 먼저 언급해 두는 것이 좋겠다. 이 녀석을 볼 때마다 그 번뜩이는 검은빛에 섬뜩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시커먼 짜장면 그릇이 나왔을 때 검은 짜장 소스를 대하는 기분에 견줄 수 있으리라. 짜장면과 짬뽕 사이에서의 겪게 되는 결정 장애는 초콜릿 팝콘을 구입할 때도 찾아온다. 그냥 팝콘과 초콜릿 팝콘이 섞인 반반 팝콘을 고를 것인가? 과감하게 초콜릿 팝콘만 선택할 것인가? 어제도 계산대 앞에서 이 질문을 받고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남편은 생각 없이 반반을 주문했다. 아마 초콜릿으로 떡칠을 한 팝콘 한 봉지를 다 먹어 치우게 될 심리적 부담감 때문이었으리라. 소심한 남편의 주문을 바로잡아 반반을 취소하고 당당히 초콜릿만으로 된 팝콘으로 주문을 정정했다. 지난번 비슷한 상황에서 반반을 선택했을 때 찾아왔던 그 돌이킬 수 없었던 후회를 두 번 반복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짜장면의 비유는 이어진다. 짜장면을 먹을 때 소스로 면발의 하얀 면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골고루 비벼야 온전한 짜장의 맛을 입안 가득히 느낄 수 있듯이 (짜장은 소스가 모자라면 치명적이다), 초콜릿 팝콘에도 하얀 팝콘의 몸뚱아리가 검은 초콜릿의 옷을 완벽하게 차려입은 것이야말로 진정한 초콜릿 팝콘의 맛을 자아낸다. 간혹 초콜릿 옷을 덜 입어 팝콘의 속살이 희끗희끗하게 보이는 것들은 초콜릿 팝콘의 진한 맛은 물론 그 자태에서 뿜어지는 검은빛으로 먹는 이의 시선을 압도하지 못한다. 먹기 전에 눈으로 식욕을 자극하는 것은  모든 음식에 중요하다.


캐러멜 팝콘의 브라운 색보다 훨씬 짙은 초콜릿 팝콘의 검은빛의 도도한 위풍은 당당하다 못해 위압적이며 강제적이기까지 하다. 검은빛은 먹는 이로 하여금 끊임없이 먹을 것을 강요하고 그 맛에 홀려 우리는 한순간에 스스로 노예가 되어 복종을 자초하고 만다. 팝콘으로 향하는 우리의 손은 이미 검은 세계로 깊이 빠져든 것이다. 한 봉지를 그 자리에서 다 끝내지 않고는 누구도 초콜릿 팝콘의 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어제도 그렇게 한 봉지를 완벽하게 끝냈다.


처음엔 팝콘 한 알을 손가락으로 거만하게 집어 올려 입속에 우아하게 넣고 맛을 천천히 음미한다. 초콜릿 팝콘의 욕구를 오랜동안 참고 기다려온 예의다. 그러다가 팝콘을 정확히 집어내는 데에 금세 익숙해진 손가락은 이제 하나가 아닌 두세 개를 한꺼번에 집는 실력을 거침없이 발휘해 간다. 손가락이 입에다 팝콘을 떨어뜨리고 봉지로 다시 돌아가는 속도는 점차 빨라진다. 우아하게 한 톨씩 집어먹기에 초콜릿의 유혹이 너무 감미롭다. 몇 개를 한꺼번에 털어 넣어야 초콜릿은 입안에서 최상의 달콤한 맛을 선사한다. 단숨에 녹는 초콜릿이 입안에서 다 사라지기 전에 또 몇 알을 계속 털어 넣는다. 고소한 팝콘에 녹아내린 초콜릿의 맛이 끊기지 않게 계속, 계속. 초콜릿이 부드러운 팝콘의 하얀 살갗을 충분히 적셔 내리도록 계속, 계속. 가끔은 그들이 서로를 안은 채 경쾌하게 바스러지도록 이빨로 부숴주면서. 이런 무아지경의 시간은 언제나 찰나로 끝이 난다. 어느새 비어 버린 봉지 속을 허탈하게 들어 본다. 마지막 한 톨의 검은빛이 그 속에 남아있기를 간절히 상상하면서. 그러나 한 톨도 보이지 않는다. 초콜릿 팝콘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라면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한 봉지를 다 먹어도 버터로 인해 너무 느끼하다거나, 너무 달다거나, 너무 짜다거나 하지 않고 계속, 여전히, 너무 맛있다는 거.


이제 그 풍성했던 봉지를 과감히 플랫 하게 접으며, 초콜릿 팝콘을 향한 그리움을 다시 키우기 시작한다.


다음에 영화 볼 기회가 있다면 시애틀 시네마라를 강추한다. 설령 영화가 졸리도록 재미없어도 감미로운 초콜릿 팝콘의 기억은 오래오래 남을 것을 장담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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