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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Sep 25. 2019

SPL

시애틀 도서관 카드를 다시 만들며

직업병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연구년 시작하고 처음으로 시작한 일이 동네 도서관 카드를 재발급받는 일이라니...  시애틀 공공도서관은 아이들 3살 때 (무려 17년 전!) 이용자 카드를 발급받아 유용하게 사용했었더랬다. 하지만, 지난 3년간 이 카드를 쓸 일이 없었던지라 (주 이용자였던 아이들은 시애틀을 떠났고, 난 유덥 도서관 카드로 만사형통이었기에) 내 카드는 이용자 기록에서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다운타운에서 카드를 재발급받는 기분이 처음 도서관 고객이 된 마냥 설렜다. 여기 직원들의 친절함과 신속함에 감탄하면서. 시애틀 주민을 증명해야 하는 서류로 아마존 앱에 들어간 주소 정보 만으로도 가능하다고 하니, 역시 시애틀은 친 아마존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도서관 입구에서 셀카도 찍고, 발급받은 이용자카드를 손에 쥐고 또 찍고, 야광색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도 또 찍었다. 차마 사진을 공개하기는 쑥스럽지만 그런대로 재미가 있다. 시애틀로 이주해 온지 정확히 17년 하고도 수개월이 지냈는데도 이렇게 시애틀 다운타운 도서관을 가볍게 드나들어 보기는 처음이다. 한 며칠 구경 온 관광객도 구경했을만한 시애틀을 속속들이 누리고 경험하지 못하고 살았다니.. 나를 부르는 신간 코너, 각종 북토크와 도서관 행사, 이제 깨알같이 다 누려주리라.


베스트셀러 신간 코너에서 책 두 권을 골랐다. 말컴 글래드웰의 Talking to Strangers 와 패티 스미스의 Year of the Monkey. 도서관으로 오길 잘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반스 앤 노블로 갈까 했었는데, 일단 책값이 안 들어서 좋다. 책값을 지불하는 건 괜찮지만 생각보다 책값 때문에 한 권 이상 책을 고르기가 죄스럽고, 마침 고른 책이 별로인 경우 본전 생각이 나는 게 두고두고 싫은데, 도서관 책은 그런 부담이 없다. 맘껏 골라도 무료이니 얼마나 좋은가. 그래도 과식은 금물. 읽지 못할 책을 집에 쌓아두는 것도  무척 신경 쓰이는 일이다. 그래서 딱 두 권만 골랐다. 둘 중에 하나는 성공하리라 믿으며.


한층을 더 올라가니 3층 리빙룸이다. 기웃거리다가  금서였던 책을 진열해 둔 서가에 나도 모르게 발길이 멈췄다. 기본적으로 난 음흉한 사람인가 싶어 혼자 시크하게 책을 노려보다가 진열된 책 중에 해리포터가 있는 걸 보고 잠시 두근거렸던 마음이 편안해진다. 흥미 상실이 될 즈음, 도리스 레싱의 The Fifth Child가 있는 걸 보고, 다시 진열대 주변을 서성였다. 우연히 코믹서 한 권을 집어 들었다. Alison Bechdel 의 Fun Home. Fun Home에서 fun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챕터 2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는... 아하~. 두 챕터를 앉은자리에서 읽고 나오면서 이 책도 빌렸다. 대박을 만난 느낌. 코믹서를 좋아하진 않지만 이런 류?(죽음이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하거나 가족의 은밀한 치부가 치장 없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야기)의 이야기에 자석처럼 끌리는 독서 성향이 있기에. 마치 예전에 읽었던 셔먼 알렉시의 The Absolutely True Diary of a Part-Time Indian과 비슷한 느낌, 되게 웃긴데 슬프기도 한, 그런 느낌이다. 가족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고, 웃기면서 슬프다.


책 3권을 백팩에 넣고 무거워진 가방을 등에 기분 좋게 느끼며 5가를 걸어 내려왔다. 나른한 오후에 걸맞을 커피와 함께 앉아서 몇 자 적을 기회를 찾고자.. 마침 오늘 Seattle Times뉴스에 의하면 WalletHub에서 미국 내 커피 10대 도시를 발표했는데 시애틀이 당당히 1위의 영예를 되찾았다는 소식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소이 라떼 한 잔을 주문해야겠다. 어느 커피숍으로 향할까? 그것이 고민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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