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메데진
정말 좌석번호가 없네?
그간 저가항공을 많이 타봤지만 좌석번호가 없는 것은 처음이다. 내 안의 호기심이 목구멍을 타고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빨리 앉는 사람이 임자라고 했다. 이 정도면 비행기가 아니라 버스 구만. 버스! 비행기는 50분 만에 콜롬비아 제2의 도시 ‘메데진’에 도착했다. 건물들은 반짝반짝 윤이 났고 도시 냄새가 났다. 산타마르타와 카르타헤나라는 '사막'에서 헤매다 집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산타마르타는 더웠다. 움직 일 때마다 땀구멍에서 쉴 새 없이 땀이 뿜어져 나왔고 한 식당에서 먹었던 고기는 나이프와 이빨을 순식간에 튕길 만큼 질겼다. 타이어라고 말해도 믿을 만한 탄성이었다. 반면 카르타헤나는 이쁜 도시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찜통이었다. 달달거리며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를 보며 밤마다 잠자게 해달라고 땀 흘려가며 기도했다. 그나마 에어컨이 무자비하게 나왔던 후안 발데스(콜롬비아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커피숍)가 없었다면 과연 우린 카르타헤나에서 2박 3일을 버틸 수 있었을까?
시내로 들어가 숙소에 체크인하고 직원에게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물어보고 입력하고 틀리고 계속 틀리고 나중에 ‘O’ 자가 ‘U’ 자인 것을 알고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으니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한국으로 택배를 보내기 위해 배낭에서 한동안 입지 않았던 것들을 골라냈다. 대부분 아이슬란드에서 마지막으로 입었던 두꺼운 옷들이었다. 우체국 직원에게 옷이 들어간 봉지를 보여주며 택배를 보내고 싶다고 하자 직원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박스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스? 박스는 우체국에서 파는 거 아닌가? 난 다시 영어로 천천히 이곳에서 박스를 살 수 없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박스가 필요하다고만 반복해서 말했다. 그녀의 소통은 일반통행이었다. 이해가 안가네. 우체국에서 박스를 팔지 않다니. 그나저나 박스를 어디서 구하지? 마트에서도 박스는 팔지 않는 것 같던데… 밖으로 나가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박스를 찾았다. 옷들을 가져 나올 때만 해도 아이슬란드에서 봤던 환상적인 빙하와 오로라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현실은 택배 보낼 박스 없어서 집 없는 개처럼 거리를 누비고 있다. 누가 보면 박스 줍는 중국 노숙자로 알겠네! 몇 블록을 샅샅이 뒤진 끝에 저 멀리 쓰레기 통 옆에 수북이 쌓인 박스들이 보였다. 거의 달리다시피 그곳에 갔다. 그러나 박스 대부분은 젖어있었고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박스들은 노숙자로 보이는 한 젊은이가 니어 카에 주워 담고 있었다. 저 박스들에 이름이 쓰여 있지는 않지만 왠지 저 친구가 이미 찜해 놓은 거 같아서 가져가기가 좀 그러네. 하고 옆을 봤는데 제법 멀쩡한 박스 하나가 보였다. 박스에서 약간 찌린내가 나긴 했지만 젖지 않았고 안은 깨끗했다.
그 박스를 들고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니어 카에 박스를 주워 담고 있는 젊은이가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는 나에게 그 박스는 내 거라고, 그 박스 건드리면 죽는다고 경고의 눈빛을 보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뜨끔했다. 그러나 나도 물러 설 수 없었다. 이 박스를 구하기 위해 1시간 넘게 길거리를 헤맸다. 이 박스가 있어야 옷들을 보낼 수 있다. 그 뜨겁고 강렬한 눈빛을 애써 외면하고 박스를 들고 우체국으로 돌아와 약간 찌린내 나는 박스를 흔들며 택배를 보내달라고 직원에게 웃어 보이자 그녀는 박스를 한번 스윽~ 보더니 자리 옆에서 박스 하나를 꺼냈다. 그것도 금고로 써도 될 만큼 딱딱하고 튼튼한 박스를!
아니! 아까 전에 두 번이나 물어봤을 때는 박스가 없다고 하더니만 지금 뭐하는 거지? 아주머니! 이 박스 현지 노숙자에게 미안함과 굴욕감을 동시에 느끼면서 가져온 박스란 말이에요! 약간 찌린내 나는 박스를 그 젊은 노숙자에게 돌려주고 우체국에서 박스 하나를 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국제 택배를 보내기 위해 직원이 준 문서를 봤는데 검은 건 글씨고 하얀 건 종이! 였다. 이 수많은 스페인어 문장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리고 이 수많은 공백에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할까? 2주간 쿠바에서 배운 서바이벌 스페인어는 고작 감사합니다, 하나, 둘, 셋, 비싸요, 얼마예요 정도가 전부인데… 문서들을 보며 눈만 껌벅 버리며 있는데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콜롬비아 부부가 우리 쪽으로 다가와 ‘영어’로 문서 작성법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아~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무차스 그라시아스!(정말 감사합니다) 여기는 보내는 사람, 여기는 받는 사람, 여기는 보내는 물품 정보, 여기에 지장을 찍으면 돼요.
중년부부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말한 뒤 우체국을 나오는데 시원섭섭했다. 아이슬란드에서 밤낮으로 추위를 막아준 장본인들이었는데 남미에서는 애물단지가 됐네. 나중에 한국 가서 다시 만나자. 저녁에 뚱뚱하고 귀여운 동상들이 많은 보테로 광장의 한 현지 식당에 갔다. 메뉴판 그림을 보며 대충 주문을 하고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있는 아저씨가 자꾸 우리를 힐끔거렸다. 아. 이 아저씨 중국인 처음 보나 보네. 네 맞아요. 우리 치노 맞아요. 그러니 관심 끄고 그냥 하던 일 하세요!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는 노골적으로 우리를 빤히 쳐다봤다. 이제는 실실 웃기까지 하네? 이 아저씨 맥주 먹고 취했나?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대뜸 우리를 보며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그는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일본어로 1부터 10까지 센 후, 한국어로 같은 방식으로 숫자를 셌다. 그것도 정확하게.
이 로봇 같은 느닷없는 반응은 뭐지? 그는 내 생각을 다 안다는 듯 힙합 하는 사람이나 할법한 주먹치기를 요청했고 난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그 아저씨의 주먹에 내 주먹을 맞췄다. 난 그 행위가 대화의 시작이라는 것을 몰랐다. 옆 테이블에 있는 그와 한 서른 번 남짓 주먹치기를 했을까? 그는 우리 테이블로 넘어와 본격적으로 스페인어로 끊임없이 뭔가를 이야기했다. 손짓 발짓 눈짓을 하며 대충 이해하기에는 10년 이상 일본에서 일을 했는데 그곳에서 한국사람들과도 많이 어울렸다는 내용 같았다. 그는 한국인을 무척이나 반가워했고 내 옆에 앉아 수시로 주먹치기와 뜨겁고 힘찬 악수를 했다. 간혹 눈이 마주치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수다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스페인어를 이해하건 못하건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그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해 거의 울상이 되어 있을 무렵, 보다 못한 그의 아내가 우리 테이블로 넘어와 어떻게든 통역을 해주려고 노력했으나 아내도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스페인어를 조금만 했어도 이 아저씨와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텐데…5살 꼬마 정도의 스페인어만 구사했다면 벌써 이 아저씨와 친구가 되어 그의 집에서 술 한잔을 더 했을 텐데... 스페인어를 못하는 우리가 답답했고 속상했고 미안했다.
그의 이야기는 옆 테이블에 앉아 조용히 치킨을 뜯고 있는 아들 자랑으로 넘어갔다. 그는 축구를 잘해. 나중에 유명한 축구 선수가 될 거라고 말하면서 연신 엄지를 추켜올렸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방언처럼 튀어나온 질문! “우노썬노딸?” 내 질문에 그의 눈빛은 잠시 허공을 배회하고 있었고 잠시 후 아내는 자지러졌다. 오빠 ‘우노썬노딸’이 뭐야! 다섯 글자 안에 3개 국어 압축되어 있는데 저 아저씨가 알겠어? 그랬다. 난 사실 그의 아들 자랑 이야기를 듣고 “아들은 하나고 딸은 없어요?라고 차근차근 물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 나오자 마음이 급해져 우노(스페인어로 하나), 썬(영어 Son), 노(영어 No), 딸(한국어)이라고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해버린 것이다. 참. 저렴하게 대화한다. 우노썬노딸이라니!
우리가 정신없이 웃자 큰소리로 함께 따라 웃는 아저씨. 그는 우리와 헤어지는 것이 무척이나 아쉬웠는지 냅킨에다 자신의 이름과 적어준 후 아내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값싼 귀걸이를 선물로 줬다. 아저씨! 우리가 스페인어를 전혀 못해서 많이 미안해요. 나중에 다시 만나면 그때는 꼭 스페인어로 대화할게요! 그리고 처음 보는 우리에게 친절하게 대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차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