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이 다르다. 역대급이다!

페루, 와라즈

by 월세부부

배낭에 옷가지들을 쑤셔 넣으며 드는 생각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뭘 한 걸까? 8박 9일간 이곳에서 뭘 한 걸까? 늦잠 자고 멍 때리고 서퍼들의 천국이라는 완차코에 가서 바다 한번 보고 세비체 먹고 유적지 둘러보고 대형마트 가서 라면 사 먹고 빈둥거리다니 보니 이렇게 됐다. 헛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우리가 돈 부자들보다 무섭다는 '시간 부자들'이긴 하지만 이곳 트루히요에서 시간을 과소비했다. 매일마다 무한 리필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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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트루히요에서 트레킹 천국이라는 와라즈까지는 버스로 8시간. 버스에서 졸다가 좀 어지럽다는 기분이 들 때쯤 와라즈에 도착했다. 산 위의 도시라 작은 마을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크네~ 호스텔에 체크인을 했다. 직원은 이미 한국사람들을 많이 상대한 듯 자연스럽게 '친구', '안녕'하며 한국말로 우리를 반겼다. 짐을 풀기 위해 도미토리 방문을 열고 방안 구조를 찬찬히 살피는데 왠 낯익은 동양 남자가 이어폰을 낀 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 어... 어? 혹시 K 씨 아니에요? K는 자신의 이름을 태어나서 처음 듣는 사람처럼 깜짝 놀라며 반가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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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년 간의 코이카 생활을 끝내고 여행 중이었는데 그와는 에콰도르-바뇨스에서 만났다. 당시 숙소에서 싱싱한 송어를 사서 회를 치고 구이를 해 먹으며 저녁마다 부자처럼 먹고 끝없이 이야기를 했었다. 이후 우린 페루로 넘어왔고 그는 갈라파고스를 갔다 온 후 에콰도르-키토에서 이곳 페루-와라즈까지 40시간 넘게 차를 타고 도착해 3박 4일 트래킹을 마치고 쉬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헤어질 때 막연하게 페루로 갈 거라고만 했는데 이곳 와라즈에서 그것도 같은 숙소에서 만날 줄이야! 여행은 이래서 지루할 틈이 없다. 각본 없는 드라마인 동시에 예측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알 수 없는 강렬한 냄새는 뭐지?


저녁을 먹기 위해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K 씨가 길거리 음식 중에 1 솔(400원) 하는 닭꼬치를 추천했다. 와우! 닭을 튀기듯 구워서 전기구이 맛이 난다. 짜지도 않고. 400원에 이럴 수가!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맛이다! 우린 미슐랭 평가단 인양 길거리에서 이것저것 먹으며 배를 채운 후 다시 방으로 들었다. 그런데 설명할 수 없는 기분 나쁜 냄새가 다시 코를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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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간 여행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발 냄새, 땀 냄새, 입 냄새 등을 경험했다. 그런데 이 냄새는 차원이 다르다. 역대급이다! K 씨에게 물어보니 어제 유럽 사람 두 명이 들어오면서부터 이 냄새가 났다고 했다. 이게 사람의 냄새라고?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그 두 명이 방에 들어왔다. 윽! K 씨 말이 맞구나! 도대체 이 냄새는 뭐란 말인가? 내 침대 반대편에 있는 저 사람. 저 사람이 주범이다. 확실하다. 그 까나리 맨이 움직일 때마다 냄새가 폭죽처럼 팡팡 터졌고 그의 침대 위에 널브러진 옷들과 물건들에서도 자욱한 연기처럼 냄새가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일단 로비로 피신했다. 아내와 난 토끼눈을 하고 이게 뭐지? 만 반복해서 중얼거렸고 난 저 냄새 때문에 머리 속에서 '잘못된 연산을 수행하여 종료됩니다'라는 메시지가 계속해서 뜨다고 그래서 앞날이 무척이나 걱정되고 아내에게 말했다. 그런데 잠시 후 까나리 맨은 컴퓨터로 뭔가 할 게 있었는지 로비로 나왔다.


그를 피해 다시 방으로 돌아가는데 통로 전체가 그의 냄새로 가득했다. 어찌나 냄새가 강한 지 눈을 감고 냄새만 따라가도 우리 방을 정확하게 찾을 수 있을 정도였다. 방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 냄새 덩어리가 악마 얼굴을 하고 코에 달라붙어 이래도 안 쓰러져? 이래도? 하며 핵펀치를 마구 날렸다. 콧구멍 속에 수많은 바늘이 꽂혀 있는 것처럼 숨을 쉴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냄새 만으로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이렇게 휘저을 수 있단 말인가?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일단 흥분된 마음을 가라 앉히고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냄새 때문에 지금까지 놓치고 있었던 한 남자가 보였다.


한 남자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장독대들 중에 하나를 열어 킁킁거리며 된장 냄새를 맡는다. 그는 잘 익었군!이라고 중얼거리다 큰 주걱으로 몇 차례 된장을 떠서 커다란 대야에 담는다. 그런 후 그곳에 까나리 액젓을 사정없이 들이붓는다. 한통. 두통. 세 통. 그는 진지한 눈빛으로 냄새를 맡는다. 그는 무언가가 부족한 지 장독대 옆에 있던 멸치액젓을 뜯어 된장과 세 통의 까나리 액젓이 혼합되어 있는 그 대야에 들이 붙는다. 그는 그것들을 열심히 휘져으며 엷은 미소를 짓는다. 마지막으로 그는 그 대야를 따가운 햇빛이 내리쬐는 곳에 갖다 놓는다. 일주일 만에 돌아온 그는 그 사이 숙성된 '그것'을 꼼꼼히 살핀 후 마침내 결심한 듯 '그것'을 손으로 떠서 비누칠하듯 옷 위에 구석구석 바른다. 그가 방 안으로 들어온다. 내 앞 침대에 벌러덩 눕는다.


방에서 나는 냄새는 바로 그런 냄새였다. 기분 나쁜 냄새로 짜증이 난 적이 있다. 기분 나쁜 냄새로 화가 난 적이 있다. 그러나 기분 나쁜 냄새로 살인 충동을 느껴 본적은 머리털 나고 이번이 처음이다. 잠을 자기 위해 침대에 누웠지만 나도, K씨도, 아내도 쉽게 잠을 잘 수 없었다. 문득, 똥통에 빠져도 이 냄새보다 더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어서 입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코로 내뱉어야 하나? 생각이 쪼르르 따라왔고 그러다 입안이 썩는 것은 아닐까? 같은 황당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눈을 감고 이불을 코 위까지 끌어올린 후 잠을 자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잠은 오지 않았다. '냄새'는 내 머릿속을 빠르게 마비시켰고 이내 불면증을 소환시켰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경건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는 것뿐! 내일 그들이 체크아웃을 하게 해주세요! 그것이 안되면 샤워라도 하게 해주세요! 그것마저도 안된다면 옷들을 빨게 해주세요! 모두 다 안된다면 우리가 방을 옮기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