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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준 Feb 23. 2018

물건 다르게 보기: 로무알드 하주메

저는 현대미술을 좋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르네상스나 바로크, 인상주의의 작품들보다 현대미술을 더 좋아하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현대 예술 작품들은 제게 인사이트를 주기 때문이죠. 물론, 어째서 현대 예술이 인사이트를 주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대 예술이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부터 설명을 자세히 해야죠. 하지만 그건 너무 길고 학술적인 정의가 많이 필요한 부분이라, 간단히 프랑스 아방가르드 이후부터 2018년 동시대 미술까지를 현대미술이라고 정의하고 가겠습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말을 합니다. 

물론, 다른 시기의 작품들이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모든 시대의 모든 작품이 말을 하죠. 다만, 이 시기의 작품들은 제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합니다. 예술가들이란 결국 시대를 사는 사람이고, 그러므로 자기 시대의 자기에게 당면한 문제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고, 그래서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 시대의 문제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표현했던 사람입니다. 춤이 편했던 사람은 댄서가 되고, 음악이 좋았던 사람은 작곡가가 되고, 그리고 색과 형이 익숙했던 사람들은 화가가 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저와 비슷한 시대에 살았고, 그 시대를 고민했던 사람들의 작품이기 때문에 제게 더 큰 인사이트를 주는 것입니다. 


아, 철학자라고 다를 건 없습니다. 다만 그들은 예술가들과는 다르게, 감각보다는 정리된 언어가 쉬웠던 사람들이죠. 그래서 그들은 글을 씁니다. 그런데 그들은 너무 정밀하고 엄밀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하나 꼬치꼬치 캐묻고 설명하려다 보니 글이 많아지고, 그냥 글로만은 부족하니 그것이 모여 책이 되죠. 엄청나게 두꺼워지는 것입니다. 게다가 자세하고 엄밀하다 보니 어려워지기까지 하죠. 


그런데 예술은 직관적입니다. 철학자들이 수 백, 수 천 페이지를 통해 해야 할 말들을 예술가들은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해내죠. 그래서 가끔은 한 권의 철학책이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줄 수 있는 감동과 충격을 단 한 장의 사진이나 그림이 한순간에 선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로무알드 하주메(Romuald Hazoume)의 작품이 그러하죠.  

그의 작품은 사회학 책 수십 권이 말해주는 사실뿐만 아니라 말해주지 못했던 사실까지도 한 장의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바로 서구 유럽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아프리카 대륙의 곳곳에 남기고 간 상처를 말이죠. 


<Rat Singer-Second to God>(로무알드 하주메, 출처: www.christies.com


로무알드 하주메의 작업 방식은 조금 독특합니다. 보통 예술작품이라 함은, 좋은 재료로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죠. 하지만 그의 작품은 정 반대로, 아주 보잘것없는 것으로 만들어집니다. 


바로 쓰레기죠.


마치 뒤샹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의 작품은 쓰레기를 다시 보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주변에 널려 있어 무시하고 지나갔던 물건들, 즉 쓰레기들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것이 그의 작품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것이 그들의 삶을 가장 잘 말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물건”이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우리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이죠. 


가령, 예를 들어봅시다.

우리의 친구 중 한 명이 스마트폰을 쓰지 않고 아직도 옛날 폴더폰을 쓰고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다면, 아마 그 친구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볼 수도 있고, 신념이 강한 사람으로 볼 수도 있고, 아니면 음모론자로 볼 수도 있겠죠. 뭐, 스마트폰이 세상을 지배하여 인간을 기계에 종속시킬 것이라고 믿는 음모론자 말이죠. 


여하튼, 어느 쪽이든, 이 조그만 물건 하나가 우리의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기도 하고,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결정적으로 좌우하기도 합니다. 이것만이 아니죠. 우리는 매일 아침 집 밖을 나설 때마다 안경은 어떤 걸 써야 하고, 귀걸이는 어떤 걸 걸어야 할지, 정장을 입을지 청바지를 입을지 고민합니다. 그 모든 것들이 우리를 말해주기 때문이죠. 비즈니스 미팅에 정장을 입고 갈지, 아니면 그저 캐주얼한 차림으로 나갈지를 고민하는 이유도 상대방에게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길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쓰는 물건들은 항상 우리를 말해 줍니다.


로무알드 하주메도 같은 생각을 했죠. 대신 그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남겨진 쓰레기로 자신들을 말했습니다. 


로무알드 하주메 출처: www.thisislime.net


베냉 공화국(République de Bénin)의 포르토노보(Porto-Novo)에서 태어난 로무알드 하주메(Romuald Hazoume)는 서아프리카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그들에게 가장 친근한 사물, 즉 그들의 삶 속에서 발견되는 쓰레기들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서구 유럽의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침입으로 인해 발생한 사회문제들, 즉 폭증한 실업자와 거기에서 당연히 귀결될 수밖에 없는 사기꾼, 협잡꾼, 밀매업자, 노예 문제 등을 쓰레기가 잘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들의 땅을 휩쓸고 지나간 유럽이 남겨둔 쓰레기가 말입니다. 

예컨대 지금 보는 작품이 대표적이죠. 


<Bidon Armé>, (로무알드 하주메, 출처: www.christies.com) 


이 작품은 그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베냉 공화국도 아프리카 대륙의 다른 나라들처럼 서구의 자본주의가 밀려들어왔고, 그에 따른 반작용으로 무수히 많은 실업자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불법적인 일에 종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사람들이 석유 암거래상이었죠. 


그런데 암거래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로 나를 수 있는 석유의 양이라 봐야 무척 한정적이었고, 그마저도 제대로 된 값을 받지 못했죠. 그래서 그들은 나이지리아에서 들여오는 석유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담기 위해 석유통에 열을 가해 통을 더 크게 늘이기 시작했습니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석유통이다 보니 열을 가하면 두께가 얇아지며 부피가 늘어날 수 있었죠. 


<TransumEnts>, (로무알드 하주메, 출처: www.magnin-a.com)


그들은 이렇게 한껏 늘어난 석유통을 자전거나 오토바이 뒷 자석에 위태롭게 묶어 운반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은 얼핏 보기에도 무척 위험한 방법입니다. 얇아질 대로 얇아진 석유통이 자칫 잘못하여 깨지기라도 한다면 대형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살얼음판을 걷는 일이었고, 

살얼음판을 걷는 삶이죠.


로무알드 하주메는 그들의 삶을 보여주기 위해 그들이 사용한 물건을 그대로 가지고 와서 작품으로 만듭니다. 

하지만 로무알드 하주메가 생각하기에 서구가 훔쳐간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유럽은 그들의 정신적 문화인 가면까지 싹쓸이해갔죠.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날의 유럽인들은 우리의 전통가면을 싹쓸이해갔다. 그들이 우리에게 남긴 거라고는 우리가 만들지조차 않은 쓰레기들뿐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석유통과 쓰레기를 통해 서구가 훔쳐갔던 자신들의 정신문화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런 쓰레기들로 아프리카 가면을 만든 것이었죠. 유럽이 석유와 가면을 훔쳐갈 때 남기고 갔던 쓰레기들로 그는 새로운 정신문화를 표현했던 것입니다. 역설적인 작품이죠. 

출처: www.penccil.com
출처: www.penccil.com


그런데 더 역설적인 것은 아프리카를 수탈했던 가장 대표적인 나라인 프랑스의 큐레이터이자 컬렉터인 앙드레 마냉(André Magnin)이 바로 그 가면을 유명하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1992년 <아웃 오브 아프리카> 전에서 앙드레 마냉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로무알드 하주메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을 곤경에 빠트린 바로 그 나라를 통해 아프리카가 오늘날 당면한 문제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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