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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리 Sep 03. 2020

오해로 살아가는 삶

영화 <가족의 탄생>_ 오해가 해소되는 순간의 아름다움

오해로 살아가는 삶이다. 한 순간의 오해로 가슴 뛰는 사랑에 빠지고, 사소한 오해로 말미암아 이별한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삶에 한 번도 오해가 개입되지 않았던 순간들이 있었던가. 신뢰했던 사람의 이면을 알게 되고, 그동안에 좋았던 기억이 모두 나의 오해였음을 깨달았을 때의 허망함은 차디 차다. 싫은 사람과 사이가 개선되고, 내 안에 쌓인 미움이 실은 내 편견과 오해였음을 알게 되는 순간에 미안함은 낯 뜨겁다. 실낱같은 오해들이 엉키고 엉켜 관계를 만들고, 삶을 진전시킨다. 사람의 관점은 저마다로 같은 대상을 두고도 다른 해석을 내놓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우리의 삶이 서로 다른 이해에 의해 지탱된다는 사실은 어쩐지 씁쓸하다. 정말 삶은 불완전한 것인가? 오해가 주는 불안함을 지켜보는 것만큼 위태로운 일은 없다.


오해는 우리가 진실된 관계라고 생각하는 가족 사이에도 파고든다. 내 곁에 가장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것이라는 믿음부터가 크나 큰 오해다. 가족은 태어나서부터 그냥 맺어진 인연으로 애초에 관계 맺음에 있어 가슴 설레는 오해가 부재하다. 옆에 있음에 보이는 무관심과 인색함은 서로 간에 관계를 희석시킨다. 물리적 거리와 반비례하는 마음에 거리는 가족 간에 몰이해를 불러온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해한다. 가족은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라고. 가족 안에 피어오르는 오해는 오로지 믿음이 깨지며 찾아올 배신감과 상처만을 품고 있는데도 말이다.


영화 <가족의 탄생>의 '선경'(공효진 분)이 엄마 '매자'(김혜옥 분)를 향해 품었던 오해가 그러한 모양일까? 오랜만에 불쑥 캐리어를 들고 자신의 집에 나타난 매자를 본 선경의 얼굴이 상처뿐인 오해의 파장을 잘 설명해준다. 화장실 좀 쓰자고 막무가내로 집에 들어온 매자를 질린 눈으로 바라보는 선경은 이내 독한말로 밀어낸다.   


난 엄마만 보면.. 그냥 확 올라와!
   

선경의 입장에서 충분히 그럴만했다. 선경에게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이 남자 저 남자 만나고 다니느라 늘 집에 소홀했고, 자신에게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지금도 어느 유부남과 동복동생을 낳아 살아가고 있고, 그런 엄마에게서 독립해 남처럼 살아온 것은 선경으로서는 당연했다. 외려 가족을 더 미워하지 않으려는 선경이만의 마지막 안간힘이었을 수도 있다. 차라리 남한테는 나를 봐달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으니까, 선경에게 독립은 더 깊은 오해로부터의 탈출, 해방이었을 터다. 


"왜 내가 궁굼해졌을까?"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서야 자신을 찾아온 엄마를 마주하고도 선경은 담담했다. 엄마에 대한 동정이나 이해보다도 또 다른 오해와 불신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동생이 차고 있는 시계를 두고도 선경과 엄마는 다른 해석을 했다. 선경의 입장에서는 분명 아빠가 준 자신의 것인데, 엄마는 우기지 좀 말라고 동생 편을 들었다. 엄마는 늘 선경에 대해서 몰랐다. 선경이 집을 나간 이유조차도 엄마는 달리 기억했다. 다시 만난 모녀는 그렇게 서로를 오해하며, 그들에게 얼마 주어지지 않은 아까운 시간을 허비한다.          

 

선경과 매자 사이에 켜켜이 쌓인 오해를 하나도 풀지 못한 채 매자는 떠난다. 혼자 남은 선경의 옆엔 매자가 놓고 간 캐리어 가방만이 덩그러니 남는다. 선경은 가방을 풀어보려 비밀번호를 이리저리 돌려보는데, 어느 순간 우연히 번호가 맞춰지고 가방이 탁 열린다.    


S#48. 선경 방

가방 속, 선경과 매자와 선경의 친아빠가 함께 찍은 가족사진, 선경의 어릴 적 옷들, 매자의 장신구들, 매자와 선경이 찍은 사진, 선경의 자기 것이라고 우겼던 경석의 시계도 있다.   

시계를 들며 훌쩍거리는 선경. 하나씩 하나씩 물건들을 꺼내보는 선경.

마술처럼 작은 가방 안에서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나온다.

매자가 뜨던, 앙증맞은 빨간 앙고라 스웨터도 나온다.

결국 수많은 잡동사니로 가득가득 차 버린 방. 물건들이 둥둥 떠다니는 듯…

꽃잎들도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하며 피어나, 방 안 가득 날아다닌다.

선경, 목 놓아 꺼이꺼이 운다.

엄마, 엄마… 라고 부르는 선경의 소리가 꽃들 사이로 날아다니듯 들려온다.

- 영화 <가족의 탄생> 시나리오 중에서..              


정말 우연히 비밀번호가 풀려 가방이 열리듯, 오해가 풀리는 순간도 우연찮게 찾아온다. 선경은 매자의 관심과 사랑이 온전히 담긴 가방을 확인하고서,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미움의 근원이 모두 제 오해였음을 깨닫는다. 엄마는 누구보다 선경을 이해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사랑했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설레는 오해는 자식에게만 없을 뿐 부모에게는 존재한다. 자식이 태어나는 순간에서부터 시작된 태산같은 설렘이다. 나는 또 오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생은 냉소적인지라, 관계 사이에 오해와 함께 엇갈림을 심어 놓는다. 딱 일주일만 일찍 선경의 오해가 풀렸다면, 여행을 가자던 매자의 부탁을 외면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지 말라고 매달리던 동생의 팔을 매몰차게 뿌리치지도 않았겠지. 오해의 대가는 후회와 환멸이 되어 선경의 가슴을 헤집고, 선경은 목 놓아 운다.

꺼이꺼이 우는 선경의 가냘픈 몸뚱이 위로 가방 속 물건들이 둥둥 떠오른다. 매자의 손 때가 묻은, 선경의 오해 때문에 가방 속에 숨어지내야 했던 물건들이다. 매자의 마음을 온전히 담고 있던 잡동사니들은 선경의 오해가 해소되자 봄의 태동기에 자유를 얻은 꽃잎들처럼 선경의 방 이곳저곳을 누빈다. 그동안 선경의 오해로 속박되어 있던 매자의 진심이 이제야 마음껏 표출된다. 잡동사니들은 이제 선경을 위로한다.


괜찮아.. 울지 마..


삶의 순간순간마다 매자가 선경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말들이다. 이 장면이 아름다운 까닭은 오해의 벽을 넘어서는 사랑의 포용이 프레임 가득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백건대 스스로 오해의 덫을 놓으며 살아가고 있다. 밤늦게 오는 엄마의 전화에 괜한 신경질을 낸다. 관심인 줄 알면서도 잔소리로 치부해버리는 것이다. 아프신 아버지가 걱정되면서도 멋쩍음에 퉁명스럽게 말이 나간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사랑보다는 오해가 앞선다. 얼마나 많은 사소한 오해들을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그게 편해서인지, 아니면 확인받고 싶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감당하지도 못할 오해의 산을 쌓고 있다. 언젠가 우연찮게 오해의 고리가 풀려버리면, 어떻게 다 감수하려고 그러는 걸까? 나의 삶은 현실이라, 저런 영화적인 장면도 없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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