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리 Oct 13. 2020

다시없을 진정성에 대하여

영화 <낮은 목소리>_ 낮지만 강력한 연대

변영주 감독의 영화 <낮은 목소리>는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가치가 상당하다. 영화평론가 김소영은 이 영화를 가리켜 "위안부 할머니들의 투쟁과 삶의 역사화 작업”이라고 평가한다.  <낮은 목소리>는 위안부 문제를 도외시했던 당시의 국내에서 진지한 문제제기를 던지고, 사회적·정치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의 형편과 생생한 증언을 담은 영화는 그 자체로 투쟁의 역사를 담은 기록물이 된다. 대단한 용기이며 위대한 여정인데, 그 이면에는 영화를 둘러싼 사람들의 강력한 진정성이 자리한다.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캐릭터만큼 관객을 사로잡는 영화적 인물은 없다.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에는 목적이 분명한 능동적인 캐릭터와 갈등 요소가 내재한 상황이 필수적이다. 영화 시작에서부터 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하는 위안부 할머니들만큼 갈망과 갈등이 분명한 캐릭터가 또 있을까? 일본의 사과와 배상이라는 선명한 목적의식과 대사관을 지키고 서 있는 경찰의 방패처럼 견고한 일본 정부라는 존재는 할머니들을 더욱 영화적 인물로 만든다. 거짓에 덥힌 진실을 알리고, 피해에 사과를 받으려는 할머니들의 진심은 더할 나위 없고, 그들의 낮은 목소리를 목청껏 내지르는 투쟁은 추운 날씨도 데필만큼 뜨겁다. 할머니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진심은 한데 모여 산을 이루고, 이 거대한 진정성은 영화 안에 온전하게 담긴다.     



이러한 영화에 내재된 진정성은 영화 밖 사람들의 노고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한다. <낮은 목소리>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진실하게 담기 위한 노력의 흔적이 여기저기 발견된다. 감독 변영주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위해, 실제로 나눔의 집에 기거하며 할머니들과 일상을 공유한다. 변영주의 노력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상처를 터놓는 낯섦과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에 기여한다. 이 과정은 영화 안에 고스란히 담기는데, 변영주는 할머니들의 일상을 관찰하며 그들의 취미, 취향, 꿈과 같은 지극히 평범한 질문을 던진다. 감독과 할머니들이 서로 친밀해지고, 이해의 단계에 돌입하려는 세밀한 작업인 것이다.


감독과 대상 간의 신뢰가 두터워지고 카메라에 대한 경계가 허물어지자, 위안부 할머니들은 일상의 얘기를 넘어서 내면 깊숙이 자리한 상처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자신의 기억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터뷰 내용은 관객에게 사실적으로 전해진다. 내러티브의 동력이 되는 인터뷰 내용은 영화 전체의 사실성을 높이면서도, 역사적 증언으로서의 가치를 획득하게 한다.

 


또한 영화 서사의 전개에 있어서 감독은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내레이션을 통해 제작 배경을 설명하거나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할머니들과 함께 사건 현장에 방문하여 인터뷰어(interviewer)로서 그들의 기억을 회고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감독은 같은 여성으로서의 경험과 기억을 나누고, 할머니들과 상호작용하며 투쟁의 주체성을 선명화한다. 감독과 대상 간의 연대를 통해 주체성을 강화하고, 강력한 메시지를 발산하는 것이다. 두 주체는 동지가 되어, 이제 영화 밖 동지를 향해 나아간다.


이들의 연대가 더욱 아름답고 힘이 있는 것은, 연대의 목적이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한 데서 있다. 변영주는 취재를 하면서 할머니들의 진정한 집회 동기를 깨닫고는, 단순한 관심을 넘어서 경애의 마음으로 발전하게 된다. 사실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집회를 하고, 용기 내어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도 자신들과 같은 전쟁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이타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자신의 불행에 대해 복수하기보다는 그 불행이 타인에게 전이되지 않도록 애쓰는 할머니들의 진정이, 소수자들의 비인간화의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와 맞아떨어진 것이다. 양측 모두 타인들, 약자들을 위한 마음이다. 전쟁의 참혹함과 약자들의 희생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이해했던 그들의 마음이 모여 강력한 진정성을 형성하였으리라.


영화 안팎의 사람들이 동일한 목적의식과 가치관을 공유하며 형성한 진정성은 꽤나 묵직한 울림을 준다. 더구나 그 진정성의 발휘가 타인을 향해 있을 때는 세상 그 어떤 진정성보다 찬란하다. 영화 에필로그 장면에서 어느 위안부 할머니는 나체로 카메라 앞에 선다. 카메라는 난자 당해 이곳저곳 상처가 난 할머니의 몸 구석구석을 비춘다. 과거의 참혹한 실상을 온전히 품은 몸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움을 내뿜는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혹여 생길 또 다른 피해자를 위해, 제 몸을 기꺼이 내놓는 할머니의 진심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영화 마지막까지도 할머니들은 낮지만 강력한 진심을 꺼내 놓은 것이다. 부디 이들의 진정성이 세상의 끝까지 도달하길 간절히 바란다.







이전 03화 참고 참다가 내쉬는 죽음의 숨, 물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